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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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3

2019.8
#봄내를 품다
춘천의 향토문화유산 8
추곡리 효순공주묘
춘천에 진짜 공주 묘가 있었다

공주묘에서 바라본 추곡마을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공주를 꿈꾼다. 설사 왕의 딸이 아니어도 귀하게 자라거나 외모가 예쁜 여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뭇 사람들의 시선과 사랑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우아한 삶을 즐기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공주라고 불린다. 하지만 상상 속의 공주가 아닌 진짜 왕의 딸인 공주가 있다기에 찾아 나섰다.



묘 이장 시 발견된 효순공주 지석



등선폭포를 지나치고 남산면 강촌과 창촌 농공단지를 지나 소주 고개와 추곡고개의 분기점에서 왼쪽 방향의 추곡령을 택한다. 구불구불 고개를 넘어서니 작은 분지에 형성된 작은 농촌마을이 나타난다. 포근하고 아늑하다는 첫인상의 마을, 바로 남면 추곡리이다.


예전에는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울로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획 통폐합 때 추곡리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지명총람, 춘주지 등 춘천의 옛 기록물에 중종의 열 번째 부인(후궁)인 숙원 김 씨의 5녀 숙정옹주 묘가 이 마을에 있다고 했지만 오류였다. 이곳엔 옹주가 아닌 진짜 공주 묘가 있었다.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에게는 왕후 3명 후궁 7명 등 10명의 부인과 9남 11녀의 자녀가 있었다. 이곳에 잠든 분은 중종의 세 번째 부인인 문정왕후 윤씨의 1남 4녀 중 둘째 딸 효순공주(1522~1538)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옥련이다. 중종의 딸이자 명종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왕의 딸 중에 정실로 태어난 적녀는 공주公主라 하고, 후궁에게서 태어나면 옹주翁主라고 호칭한다. 이들은 보통 13살을 전후하여 결혼을 했다. 일반 왕자들의 혼례와 같이 금혼령을 내린 뒤 부마 후보를 간택하여 왕과 왕비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대개 부마(사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통해 내정되곤 했다. 공주의 신분이라도 출가한 뒤에는 남편 집안의 정치적 입지가 그들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지었다.



효순공주와 남편 구사안 묘비


효순 공주는 12살 때 한 살 연하인 증 영의정 구순具淳의 아들 구사안具思顔(1523~1562)과 결혼한다. 공주의 남자, 임금의 사위, 그리고 벼슬이 보장되는 모자랄 것 없는 최고의 결합인 듯했지만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였다.


남성주의 시대라 공주는 생각만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었다. 임금의 사위가 되면 정1품의 관직이 주어지지만 정치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첩을 두어서도 안 되고, 행여 공주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재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소녀들이 꿈꾸는 진짜 공주였지만 그의 인생은 비운悲運의 삶이었다. 결혼 5년째 이제 사랑에 눈 뜰 나이인 17세 때 아기를 낳던 중 그만 난산難産으로 사망한다. 죽음 앞에서는 공주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 금곡동에 조성되었다. 그러나 조선 26대 고종이 승하하자 장지로 점지되었던 군장리가 금곡으로 변경되면서 부득이 공주의 묘를 이장해야 했다.


1919년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대한민국 원년의 해로 이미 정국이 매우 혼란해 400여 년 전에 조성한 공주의 무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시댁의 선산이 있는 춘천시 남면 추곡리로 이전하였다가 역마살이 끼었는지 2010년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개설공사로 다시 현재의 자리로 또 한 번 이장을 하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472년 만에 따로 묻혀 있던 남편과 비로소 합장되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추곡마을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 풍수상으로 거북목 형으로 불린다고 했다. 묘소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비석 하나 옮겨오지 못해 초라하던 공주 묘는 이제 병풍석, 둘레석, 상석, 장명등, 망주석 등을 제대로 갖추었다.


남편과 함께한 합장묘 묘비에는 광덕대부 능원위 능성구공사안지묘光德大夫綾原尉 綾城具公思顔之墓 중종대왕 3녀 효순공주 전주이씨부中宗大王三女孝順公主全州李氏祔라고 오목새김陰刻하였다. 이제라도 남편과 함께 오순도순 못다 한 사랑을 나누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글·사진 심창섭(본지 편집위원 · 전 춘천문인협회장)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춘천시청에서 문화재 업무를 전담하다 2006년 정년퇴직 후 수필가 및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사라져 가는 춘천의 풍경과 민속 문화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기록 중이다. 저서로 포토에세이 <때론 그리움이 그립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