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호를 끼고 걷는 여름, 새벽
고요한 호수가 한눈에 담긴다
번잡한 시간을 피하니 그제야 보이는 춘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닿은 고산(孤山)이다
봄내길 4코스, 의암호 나들길에서 바라본 풍경
이불 속 아직 덜 깬 몸. 겨우 마음을 먹고 일어나니 이미 해는 떠 있다. 걷기 채비 뒤 서면 금산행 82번 시내버스 첫차에 오른 시각은 6시 15분. 승객이 없어 지나치는 정류장이 많다보니 걷기 시작점인 서면 문학공원(금산2리)까지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른 아침, 의암호 나들길은 고요하다. 걷는 사람도 자전거 타는 사람도 내리쬐는 여름의 태양빛도 모두 적은 시간. 온전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다.
서면문학공원을 시작으로 의암호를 끼고 걷는 이 길은 춘천의 상징인 의암호와 소양2교, 소양강처녀상과 공지천을 만나는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코스이다. 시작점부터 마지막 지점 삼천동 봉황대까지의 거리는 15.4㎞.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30분이니 아무리 빨리 걸어도 완주는 어렵겠고, 호수 풍경에 기대며 느릿느릿 걸어보는 게 오늘의 목표!
춘천인형극장 뒷편에서 상중도로 향하는 길
봄내길 4코스 의암호 나들길의 시작점인 춘천 문학공원 맞은편 금산2리는 안정효의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갈쌈)>의 배경지이다. 소설은 ‘호란 왜란을 다 겪어도 별일이 없었던’‘서로 눈에 핏발서리고 잡아 죽이려는 원한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없고, 강 건너 읍내나 타향에서 살러 들어오는 사람도 없이, 그냥 세월이 멈춘 고장이었다.’는 이곳에 6·25전쟁 중 미군문화가 들어오며 마을의 전통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는 비극을 담았다. 작가가 1963년 금산리에 머물며 쓴 장편으로, 1991년 개봉한 동명 영화의 세트장이 되면서 더욱더 알려진 곳이다.
‘강 건너 읍내’를 바라보며 신매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나룻배로 통통배로 강얼음 위로 시내를 부지런히 오갔던 서면 주민들. 그래서 의암호 곳곳에는 나룻터 또는 배터가 여럿 된다. 걷는 길 중에도 금산초교 아래의 눈늪나루, 중도배터, 강원경찰충혼탑 앞의 오미나루가 이제는 흔적만 남아 걷는 이들을 반긴다.
눈늪나루는 의암댐이 생기기 전까지 금산리 마을 주민들이 시내를 왕래하던 나루터. 늪지대가 있던 곳이라 그렇게 불렀단다. 중도에서 한번 갈아타야 소양로배터까지 나갈 수 있었다. 1967년 의암댐이 생기면서 배터가 금산우체국 아래로 이동하면서 눈늪나루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신매리의 오미나루는 6세기부터 있어왔다는데 강원도청소년수련원 부근의 옥산포까지 뱃길이 닿았고 사람들은 우두로 향했다.
어느새 도착한 신매대교. 660m길이의 다리 중간에 서서 시내 쪽을 바라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상중도의 고산이다. 춘천 8경으로 손꼽혀 온 고산은 의암호로 인해 아래가 잠긴 작은 산이다. 금성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로 인해 부래산으로도 불렸는데 금성 관리로부터 세금 독촉을 받는 아버지의 고민을 어린 아들이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김시습, 이항복, 정약용 등 유명한 묵객들의 시가 전해오는 곳이기도 하다.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길을 약간 틀어 상중도 고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형극장 뒤편 야구장으로 쓰이는 고구마섬에 이르자 이른 아침부터 낚시를 즐기는 조사들과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울려 있다. 걷는 내내 바라보이는 고산이 수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시절에는 운치가 더욱더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아차, 출근시간이 가까워졌구나. 하는 깨달음이 문득!
봄내길 걷기 여행
문의 251-9363 / www.bomne.co.kr
(사)문화커뮤니티 금토가 2009년 답사팀을 꾸려 2010년부터 선보였다. 1코스 실레이야기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7코스, 9개 루트가 개발되었다.
시민을 대상으로 매년 봄·가을 걷기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고도서 <봄내길 따라가는 느릿느릿 춘천여행>(문화통신, 2016)
<봄내길 걷기 4코스 TIP>
코스경로
서면문학공원(서면도서관) - 눈늪나루 - 둑길 - 성재봉 - 마을길 - 오미나루(경찰충혼탑 앞) - 신매대교 - 호반산책로 - 소양2교 - 근화동배터 - 공지천 - 어린이회관 – 봉황대(삼천동)
소요시간 및 거리 약 5시간 14.2㎞
도심과 가까운 코스이므로 중간중간 선택해 걸어도 좋다. 코스 시작점으로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가장 편리하다. 서면문학공원 방면 시내버스는 후평동 종점을 출발하는 81번(첫차 05:50 종점 서상리)과 82번(첫차 06:00 종점 방동리)이다. 중앙로에서 약 15분~20분 소요.
난이도 ●●○○○
새벽이나 노을 녘에 걷기를 추천한다. 평지이나 그늘이 거의 없어 여름 한낮에 걷기에는 매우 힘들다. 그래도 걷고자 하면 양산을 준비하자. 자전거도로 겸용이라 걸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