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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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2

2019.7
#봄내를 즐기다
봄내인터뷰
유병훈 강원대 명예교수
"점은 획이자 호흡"

숲. 바람-묵(默)

The Forest The Wind-Silence

영은미술관에서 개인전 여는 유병훈 강원대 명예교수




춘천이 아름다운 첫 번째 이유가 자연이라면 두 번째 이유는 춘천의 예술가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랜만에 비가 내리던 유월 어느 날. 팔호광장 근처 갤러리 ‘정원’에서 유병훈 작가를 만났다.






유병훈 강원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흡사 그의 전시 제목과 같았다. 작가 생활 50년, 어느새 그의 작품 세계는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 숲이 빚어내는 바람에 저절로 영혼이 정화되는 시간.


6월 22일부터 9월 16일까지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 중인 일흔의 그는 청년보다 더 청년 같았다. 홍익대 서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강원대 미술학과 교수,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강원미술상, MBC 문화대상 수상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퇴직한 지 4년.


“솔직히 교수님 작품이 느낌은 좋은데 뭘 표현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작품을 점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모르겠고요. 말씀해줄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어릴 적 물고기를 잡던 공지천의 물이 얼마나 맑았던가에 대한 회상, 행복했던 대학 시절과 그 시절 인연과의 재회, 가족 이야기.


“그 모든 것들이 제 그림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제 작품을 보면서 자연의 순리와 본성에 대한 경외감이 녹아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사계절은 소리로 치면 엄청난 교향악입니다. 그 소리가 저에게는 소재가 되고 호흡이 됩니다.”


언뜻 보아선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기 힘든 그의 작품 속 작은 점들은 1980년대부터 시작해서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무수히 많은 점들은 주로 붓과 손으로 작업하는데, 물감을 손으로 찍어 질감을 내기도 하고 붓으로 찍어 스미는 맛을 내기도 한다.


“제가 처음부터 점만 찍고 살았겠습니까? 저도 젊었을 때 꽃도 그리고 사람도 그렸죠. 그러다가 서양미술 사조를 따라서 붓으로 물감을 튀기기도 하고 뿌리기도 했죠.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점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매료되었고 그 작업들은 보이지 않게 계속 변천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점은 획이자 호흡입니다. 정신의 울림을 받아들이는 저의 호흡이 이해되길 바랍니다.”



2018 개인전 <숲. 바람-묵(默)> 강원대 미술관



그의 작품은 3m가 넘는 대작이 많다. 스케일이 큰 작품을 한두 점도 아니고 이렇게 다작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기량과 역량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반증이다. 작은 도화지 한 장을 점으로 다 채우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그 큰 캔버스를 다 채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처음에는 그저 몇 개의 점을 찍습니다. 그렇게 캔버스를 채워 가다 어느 지점에 가면 너무 힘들고 쓰릴 때가 있습니다. 그 고통을 견디고 나면 어느 순간 묘하게 쿵 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 과정으로 나를 몰고 가다 보면 몇 개의 점이 수십 개가 되고 어느 순간 그 점들과 한 몸이 되어 회화의 끝으로 가게 됩니다. 마치 피아니시모처럼요.”


그는 피아노를 칠 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여운을 남기는 소리 ‘피아니시모’를 사랑한다. 그가 사랑하는 피아니시모는 단지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 지금도 우주의 어느 공간을 떠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캔버스를 다 채우고 나면 역설적으로 그 다음에 비움이 옵니다. 왜 점묘화를 하냐고요? 그 색에 빠지고 그 형태에 빠지는 겁니다. 수많은 점들을 채우고 나서 마주하는 비움을 잊지 못하지요.”


알파고에게 진 이세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비록 알파고가 이겼지만 열아홉 줄과 열아홉 줄의 바둑판, 그 아름다움을 알파고는 모르겠지요.”

작가가 마주하는 예술 세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 세계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기 바란다.


영은미술관 경기도 광주시 청석로 300

☎031-761-0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