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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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2

2019.7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31
춘천매운탕
봄내골 별미로 두각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사회 변화가 이뤄진 격랑의 시기에 조용한 ‘봄의 고장’ 춘천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은 1970년부터 40여 년간 토박이 언론인으로 이 고장에서 일어난 사건과 변화를 지켜본 필자가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숨은 일화와 뒷이야기들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전국 식객들 입맛 끌어당기다


깊은 골짜기까지 민물횟집과 매운탕집이 들어서 있는 오월리 춘천댐 일대 매운탕골은 외지에게도 널리 알려져 춘천의 명물이 되었다(1989.)



매운탕은 생선을 맵게 끓인 음식의 총칭이다. 시뻘건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잔뜩 풀어넣고 푹 끓인 찌개를 일컫는다. 매운맛에 빠진 사람들이 널리 즐기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힌다. 강과 호수, 바다가 있는 고장이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음식 앞에 왜 ‘춘천’이라는 고장의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을까.




춘천의 명물이 된 춘천댐 매운탕골 입구(1994.4.)


춘천댐 매운탕 골짜기가 본거지


봄내골 주민들의 보신補身 음식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온 매운탕은 기구한 사연과 맛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만 큼 도드라지고 특색 있는 별미別味로 등극하며 주민들은 물론 전국의 식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봄내골 민물고기 매운탕 이야기를 들추면서 서면 오월1리 삿갓봉(해발 716m) 계곡에 있는 매운탕 골짜기를 빼놓을 수 없다. 춘천댐 바로 밑 오른쪽 귀퉁이의 가파르고 좁은 계곡에 스무 업소 정도가 옹기종기 들어 차 있다. 모두 댐 공사와 더불어 생겨난 업소들이다. 공사가 착공된 1961년부터 완공되기까지 5년간 건설인력들이 비탈길에 덕지덕지 임시막사를 짓고 살던 곳이다.


오직 산업화의 불길을 지필 에너지원源을 확보하겠다는 일념 아래 불철주야 공사에 매달렸던 춘천댐은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축조된 댐이기도 하다.


한적한 마을에 갑자기 몰려든 수많은 인력들에게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원기와 구미를 돋워줄 뚜렷한 먹거리가 드물었다. 이런 와중渦中에 매운탕이서서히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식량난 속에서 산업에너지원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스테미너식이요, 에너지원 구실을 톡톡히 해낸 기특한 음식이다.

이 밖에도 이곳에는 여느 계곡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입맛을 뽐내는 40년 이상된 노포老鋪들이 수두룩하다. 3대에 걸쳐 60년 넘게 매운탕을 팔아온 평남집은 이중 단연 으뜸이다.


손님들도 혼자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인지 가족과 직장 동료, 또래친구들 너덧 사람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어울려 들른다.

흐르는 냇물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곳에서 평상平床에 올려진 싱싱한 회와 매운탕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이다. 필히 반주가 곁들여지는 바람에 어느 유원지나 식당가보다 술 소비량이 훨씬 많았다. 이 때문에 주류 대리점은 물론 주조회사들까지 앞다퉈 치열한 소주 시장 쟁탈전을 벌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수천만 원에 이르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을 업소나 마을에 지원금으로 쏟아부었던 호황기의 옛 이야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서면 오월리의 춘천댐 골짜기가 ‘맛의 달인’들을 끌어들이며 ‘춘천매운탕’의 본거지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시뻘건 국물이 뿜어내는 깊고 진득한 맛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춘천댐 이후에 축조된 의암댐과 소양강댐 부근 매운탕집들도 흡사한 모습과 흔적이 많다.




춘천댐 건설 공사 현장 (1962.6.)


댐건설과 양식사업으로 날개 달았다


모든 토속음식에는 그 고장 특유의 풍속과 문화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춘천매운탕의 연원淵源은 과연 댐공사에서 비롯되었을까?


어릴 적 그물과 투망, 낚시 어항 같은 고기잡이 도구를 들고 강이나 호수에 나가 천렵川獵을 즐겼던 일은 전국의 내륙이나 해안지방 어디서나 공유해 온 추억이다.


의암댐이 준공(1967년)돼 담수되기 이전까지 성업을 누렸던 소양강유원지의 민물고기 요리는 탕湯보다는 어죽 魚粥이 주류를 이뤄왔다.


봄내골은 태백산맥의 지맥支脈들이 둘러싸고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놓여 있고 홍천강이 있다는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산과 강이 둘러싼 비옥한 땅이어서 오랜 세월 동안 민물고기를 잡아서 요리해 먹었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해 온 ‘춘천매운탕’의 뿌리라고 제시하기에는 구체적인 조리법과 시대 상황이 너무 다르다.


맑은 강물이 흐르는 봄내골에는 유독 나룻터가 많았다. 소양강과 서면 덕두원, 동면 워나리, 사농동 가래목 나룻터 부근 주막에서 잡어雜魚(꺽지, 동자개, 빠가사리, 모래무치, 쏘가리, 버들치, 붕어, 잉어, 피라미, 다슬기 등)로 탕을 끓여 먹었다는 기록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살아있는 향어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1985.1)



이런 메뉴들은 여러 형태로 일반 백성들의 식탁에 자주 올랐었다. 이 중 천자어天子魚로 불리는 황쏘가리는 ‘오뉴월에 효자가 노부모의 기력을 봉양하는 음식이어서 효자탕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이런 것을 보면 민물고기탕이 오랫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전력산업을 진흥시킨 산업전사들이 힘차게 일할 수 있는 먹거리로 큰 몫을 해 낸 후에는 또 다른 문화가 생겼다. 1965년부터 넓어진 강과 호수의 수자원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내수면 양식 사업이 큰 붐을 이뤄 대중화의 불길을 지폈다.


그 밑바탕에는 송어와 향어, 산천어를 양식하면서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고초와 역경을 딛고 일어서 이 고장의 양식 사업을 성공시킨 숨은 공로자가 많다. 안동흠 씨(전 한국청소년강원연맹 총장)와 한익수 씨(전 춘천고 동창회장) 등 선각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자잘한 흐름들이 한데 어우러져 쌓이고 갈무리되 지금의 춘천매운탕이 토속음식으로 등극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더 매운 매운탕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 강해진 매운맛 선호현상


‘춘천매운탕’이 전국적인 명성을 쌓으며 식도락가들의 사랑을 받게 된 요인 가운데는 다양하고 독특한 맛과 함께 깔끔한 조리법이 꼽힌다. 민물고기를 통째로 넣어 탕과 찜으로 끓이는 방식과 신선한 활어로 회를 뜨고 난 후 등뼈와 볼살이 붙어있는 대가리를 넣고 끓이는 서돌찌개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이 모두 매운탕의 기본인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시뻘겋게 푼 국물을 펄펄 끓이다가 생선을 집어넣어 더 끓인다. 바닷고기와는 달리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장은 결코 쓰지 않고, 지나치게 끓이면 살이 뭉그러지기 때문에 적당하게 끓여야 제 맛을 살릴 수 있다.


금방 떠낸 싱싱한 활어회는 상추로 쌈을 싸먹거나 양배추를 잘게 썰어 담은 대접에 콩가루와 참기름, 초고추장을 넣어 골고루 비벼먹는다. 먹다 남은 횟감은 밀가루를 입혀 바삭바삭한 튀김으로도 일품이다.

그러나 쏘가리같이 비싼 횟감을 먹거나 고소하고 깊은 담백함을 음미하려는 미식가들은 결코 야채를 곁들이지 않는다.


요즘은 양식업의 성공으로 민물고기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져 마음껏 회를 즐길 수 있는 무한리필 업소까지 시 내에 파고들어 성업을 누리고 있다.

신라면에 이어 육개장과 사천짜장으로 매운맛에 익숙해지면서 낚지볶음과 불닭, 매운닭갈비 등 매콤한 맛은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더불어 ‘더 매운 매운탕’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 강과 호수와 계곡 주변은 물론 도심에까지 1백여 개 업소가 널려있다.


항상 몰려드는 손님들로 시끌벅적한 샘밭의 어느 메기매운탕집은 오히려 고춧가루 범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모습이 바뀌어 가고 있다.

입안이 얼얼한 매운맛을 더욱 한 단계 높여 선호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음식의 맛을 조정하고, 식욕을 촉진시키고, 소화를 도와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보다는 매콤한 자극을 추구하는 요즘 트렌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서면 오월리 평남집 민물회와 매운탕




춘천댐 매운탕골(2005.10)


완성도 높여 자주 찾게 하자


봄내골 사람들이 특이하게 오랜 세월 즐겨온 매운탕 문화는 단순하게 고장의 산물이나 조리기술에 의해서만 탄생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대적 배경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음식문화의 산물과 다름없다. 그래서 ‘춘천매운탕’은 이 고장의 시그니처(signature:어떤 가게에 갔을 때 그곳을 대표하는 음식)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여름철이면 미식가와 피서객들로, 겨울철이면 뜨끈한 국물의 매운맛을 즐기려던 인파로 꽉 들어찼던 오월리 매운탕집 골짜기가 요즘 들어서는 많이 위축된 모습이라 안타깝다. 업소들도 줄어들고 북적거렸던 수영장도 폐쇄해 버려 한산한 기분마저 감돈다. 계곡에서 끌어들였던 물이 너무 차갑기 때문이라지만 영화榮華는 추억 속에 있고 쇠퇴衰退가 현실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아직도 이 고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회상의 토속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배가 부른데도 숟가락을 놓지 못했던 추억을 곱씹어보려고 되찾은 손님들이 “바로 이 맛이야!” 하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반면 봄내골 전체 음식문화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어수룩한 부분이 없지 않다. 현대 감각에 맞는 푸드 스타일링과 테이블 데커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재조명하고 개선해나갈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올여름부터라도 봄내골 토속 음식으로서의 진면목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새롭게 발전시킬 얼개라도 세워 봄직한 일이다.









글 김길소(본지 편집위원·한국전래오락연구소장) 사진 강원일보

춘천 태생. 1970년 강원일보사에 입사해 편집국에서 강원도 전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취재했다.

편집국장, 논설주간, 상무, 전무이사를 지낸 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위원과 부위원장으로 언론사와 피해자의 중재 역할을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