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효창 작 <별 하나 나 하나>
몇 년 전 동부 아프리카로 취재차 출장을 갔을 때다. 케냐·탄자니아·우간다·르완다 등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중간 경유지인 두바이 공항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느라 몇 시간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공항 면세점 길목에서 안면 있는 여성 대학교수와 딱 마주쳤다. “세상에 어떻게 여기서…” 둘 다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라고 신기해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르완다의 한 식당에서 또 다른 아는 분과 우연히 만났다. 르완다 대학살 (1994년)의 자취를 찾아 나선 여행 길이라 했다. 세상은 좁다. 다음 날 탄자니아에서 저녁식사 후 카페에서 일행과 커피를 마시다 그날 촬영한 사진 몇 장을 카카오톡으로 한국의 지인에게 보냈다. 지인이 즉시 질문을 해왔다. “김OO 박사님도 거기 계셔요?”
일행 중에 출장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된 김OO 박사가 있었는데, 그도 비슷한 사진을 자기에게 보냈길래 동행으로 짐작했다는 것이다. 김 박사와 나는 지금도 당시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좁은 세상, 죄 짓고는 못 산다.”고 웃곤 한다.
고 피천득 시인의 수필 ‘인연’은 아마 황순원의 ‘소나기’ 다음으로 한국인이 애틋해하는 작품일 것이다.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다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로 시작하는 수필은 과거 춘천(지금 한림대 자리)에 있던 성심여대와 일본 성심여학원 계열 학교를 다닌 아사코라는 여인과의 인연을 수채화처럼 겹쳐 그린다. 필체가 담담해 안타까움이 더 진하다.
성심여대는 1964년 개교해 1982년까지 춘천에 있었기에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 들이 추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연이 아름답고 기꺼운 것은 아니다. ‘악연’이라 불리는 인연도 있다. 그래서 법구경은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 괴롭다’고 말한다. 범인으로서는 오르기 힘든 경지이긴 하지만.
한국인끼리는 서로 몇 명(단계)을 거치면 아는 사이가 될까. 2004 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중앙일보가 조사한 데 따르면 딱 3.6명이었다. 전혀 모르던 사이도 서너 명만 거치면 ‘아는 사람’으로 맺어진다는 말이다. 참고로, 미국 같은 넓은 나라도 1967년 조사에 따르면 불과 5.5단계였다.
놀랍고도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섭다. 우리가 가끔 겪는 우연이 실은 필연일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과의 인연은 특히 각별하게, 소중하고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고 느낀다. 정현종 시인도 시 ‘방문객’ 첫머리에서 읊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