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소중함을 알려줄 겁니다”
농사일이란 으레 쉬운 것이 아니다.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 중엔 흙 한번 만져보지 못한 이들도 많다.
그런데 최근 시대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농촌으로 회귀하는 청년들이 더러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스물아홉. 청년 농부 이범준 씨 또한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아버지, 어머니, 형(왼쪽)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어릴 적엔 할머니 댁에 내려가는 게 싫었다.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같이 밭에 나가니 내 표정은 언제나 죽을상이었다. 그렇다고 이 순(耳順)이 넘은 춘추에 새벽마다 밭일을 하는 할머니를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퇴비를 뿌리다 말고 은근히 여쭸다. 내일은 밭에 오지 말고 바닷가에 놀러가자고. 그렇지만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펴지도 않은 채 대답하셨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말이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텃밭을 일구며 자란 범준 씨는 자연스레 농부의 꿈을 가졌다. 전공까지도 생태학.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게 농촌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편안한 직업을 갖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심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다 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양봉장과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여러 재래닭을 키우는 어엿한 농업인이 되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농사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일이니까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생산부터 판매, 마케팅까지 혼자 해내는 1인 창업이기 때문이다. 노동량은 어떠한가? 농부에게 고된 노동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수확의 기쁨과 보람이 더욱 크기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 어느새 그에게 ‘농사’란 평생 함께 하고픈 동료가 되었다. 그 동료와 함께 제52회 강원도 4-H 경진대회에서 <건강한 청년농부>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범준 씨를 비롯한 청년 농부들의 노력 덕분일까, 2017년 엔 귀농 및 귀촌 인구가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어섰다. 그중 절반이 40세 미만의 젊은 층이라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범준 씨는 날카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매스컴에서는 농촌의 아름다운 면이 많이 보도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쉽게 생각하는데, 농촌은 도피처가 아니에요. 농촌의 생활도 도시만큼이나 치열하죠.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노력이 있다면 귀농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춘천 동면 상걸리에서 나고 자라 고향에 애착이 많다는 범준 씨. 결국 그토록 꿈꿨던 농부의 꿈을 고향에서 이뤄냈다. 춘천의 흙과 함께 살아가는 그가 춘천과 함께 이루고픈 목표는 무엇일까?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해 보다 활력 있는 춘천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친구들이 수도권으로 취직하러 가는 것이 아쉬웠거든요. 또 개인 휴양림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생태와 농촌의 문화를 체험하고,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말이에요. 아이들에게 자연과 농촌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사람이 될 겁니다.”
범준 씨는 양봉장과 체험농장을 운영하며 어려서부터 꿈꿨던 농부의 꿈을 이루었다.
이번 달로 김화랑 청년기자의 연재를 마칩니다.
6개월간 멋진 글을 써줬던 김화랑 기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봄내>가 김화랑 기자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글 김화랑(봄내 청년기자·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비뚤어진 반항아를 취재하는 잡지 를 출간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뱅뱅클럽’이라는 미디어 프로덕션에서 대표로 지냈다.
여행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오토바이로 14개국을 횡단한 후 또다시 모험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