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앉으세요. 심리치료를 받으시겠다고 하셨나요?
세상이 모두 등 돌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아서요.
왜 그런지 말씀해 보시죠.
무슨 말을 할까요?
아무 말이나... 비 오는 데 날씨 이야기부터 할까요?
...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셨죠.
비가 오면 엄마는 빵을 구웠어요. 그러면 큰 언니가...
잠깐! 방금 아버지라고 하셨는데...
혹시 아버지에 대해 떠오르는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
어렸을 때의....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사실은... 혼자만 알고 계세요
걱정 마세요. 오늘 대화는 절대 누설되지 않아요.
아버지는 아주 자상하셨죠. 어느 비 오는 저녁이었어요...
2017년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심리치료 상담사인 엘리자와 고객과의 대화다. 고객이 ‘엄마가…’하며 망설이자 엘리자는 ‘가족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고객은 엘리자와 대화 중 신뢰가 깊어지자 속내를 털어 놓기 시작한다. 목소리를 낮추어 자기만의 비밀도 내어 놓는다. ‘맙소사! 그런 일이 있다니.’ 엘리자는 같이 슬퍼하며 분노했다. 상담을 마친 고객은 홀가분해진 모습으로 상담실을 나간다.
엘리자는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와이젠바움(Joseph Weizenbaum 1923·2008) 교수가 1966년에 만든 심리치료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엘리자는 상대의 단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대화를 이어가는 시스템.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자 수많은 아버지 알고리즘 가운데 하나인 ‘혹시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를 선택한 것.
이어 ‘엄마’라는 단어가 입력되자 ‘가족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욕에 대한 데이터도 있어서 상말을 하면 야단도 친다. 인공지능 첫 단계인 50년 전 프로그램이다. 자판을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앞으로의 엘리자는 미모를 갖추고 신뢰 가는 음성(Chatbot, 대화형 인공 지능)으로 직접 상담을 한다.
상담 후 고객 정보를 분류하고 <점심시간 11:30∼13:30>이란 팻말을 걸고 스스로 충전 후 최근 학술대회 내용을 업데이트한다. 세금계산서도 발행하고 사무실 청소도 한다. 산업혁명이 ‘기계근육’혁명이었다면 지금은 ‘기계두뇌’, 즉 인공지능 혁명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 사건은 우리가 미래에 살고 있음을 각인시켰다.
이미 인간의 두뇌를 추월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신혼부부가 가구를 사러 왔다. 고객이 카탈로그를 보고 나자 주인이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했다. 카탈로그를 보는 동안, 눈동자가 보였던 반응을 분석한 결과였다. 몇 년 전 미국에 사는 조카가 대학 동기생들과 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구글에 팔았다고 했다.
20여 년 전인 1997년, IBM 컴퓨터의 체스 프로그램인 딥 블루(Deep Blue)가 체스 실력에서 인간의 두뇌를 넘어섰다. 2011년, 미국의 유명한 퀴즈쇼 지오파디(Jeopardy) 챔피언들을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가볍게 이겼다. 2016년,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겼다. 그 알파고를 알파고 제로가 72시간 독학 후에 100전 전승했다. 새로운 정석을 개발하기도 했다. 490만 판을 혼자 두고 깨달은 것이다.
인공지능은 지구상의 누구보다 지적知的이다. 인공지능에게 인류 3,000년간의 지식이 입력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신문기사를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고 있다. 드라마 대본도 쓴다.
외국어 번역시스템도 쓸 만하다. 유전학과 신약 개발에도 참여한다. 작년 12월, 인천 가천대길병원에서 IBM의 암 진단 솔루션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도입했다.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도 들여왔다. 보다 정밀한 암 진단이 가능해졌다. 구글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간 수명을 500살까지 연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인간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처럼 편견을 지닌 사악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다. 흑인을 범죄인과 혼동하고 동양인과 무슬림을 폄하하는 성향을 보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 예전에는 노예를 얻기 위해 전쟁을 했지만 값싼 인공지능이 있으니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인공지능에 밀린 인간이 설 자리는 그 어디에 있을까.
글 김진묵(본지 편집위원 · 음악평론가)
음악과 명상에 대한 8권의 저서가 있다. 향상된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연구한 <미래예술은 어떤 모습일까>를 집필 중.
김진묵 악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