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동 한진한성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백석골 전경
춘천분지 내에는 산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야트막한 봉우리가 몇 개 솟아 있다.
크기는 작아도 특별한 문화가 스며 있는 고산, 봉황대, 우두산, 국사봉 등이다.
오늘은 그중 국사봉 길목에 자리한 퇴계동 백석골을 찾았다.
명칭이 예사롭지 않다. 흰 돌이 많은 곳인가? 마을로 들어서자 개울가에 수석처럼 세워 놓은 하얀 돌 하나가 길손을 반긴다.
마을 이름 유래바위라는 작은 안내판이 있다. 바위 3개를 쌓아 올린 높이는 2.5m 정도. 시멘트 접착 면에 2000년 5월이라는 건립연도가 새겨져 있다.
백석골은 국사봉 북쪽 면에 형성된 마을이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너른 새 도로가 나고 농경지에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제 도시 근교는 변화의 부침 속에 옛 모습을 간직한 가옥도, 대를 잇고 살아가는 토박이 분들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조금 오래된 듯한 집을 방문하며 귀동냥을 한다. 다행이 이곳에 터 잡고 살아가는 80대 노인 몇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시큰둥하게 낯선 길손을 맞았지만 마을의 백석을 이야기하자 옛 기억을 풀어내는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지금 세워 놓은 돌은 예전 차돌바위의 부서진 일부야, 본래는 아주 컸어. 높이가 한 6~7m이고 폭은 4m가 되는 하얀 돌이 수문장처럼 서 있었지. 참 멋졌어. 마을을 드나들 때는 언제나 마주하던 하얀 바위였지. 밤에도 훤하게 보였지. 외지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하얀 돌이 많은 줄로 알지만 기이하게도 이 차돌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한 개뿐이어서 더 특별했지.
또 바위 위에 소나무 몇 그루가 분재처럼 서 있었어. 차돌바위 밑을 휘도는 개울은 맑고 깨끗해 거기서 멱을 감기도 했지. 아, 그리고 바위 밑에 큰 구멍이 있었어. 뱀 굴이라고 했지. 어른들이 큰 구렁이가 살고 있다고 했어. 바위와 함께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잡으면 안 된다고들 하셨지.”
특별한 전설 하나쯤은 간직했으리라 기대했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었다. 다시 수소문 끝에 이 비석을 세운 분과 연락이 닿았다.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60대 중반의 사업가였다. 지금은 다른 곳에 거주하지만 백석골에서 55년을 살았고 아직도 선산과 농경지를 소유하고 있는 토박이 강영철 씨였다.
1990년 큰 장마로 인해 차돌바위가 쓰러지면서 부서져 버렸다고 했다. 순백의 차돌처럼 결백과 강직의 정신을 이어오게 한 상징물이 사라진 게 너무 속상했다. 더구나 바위는 부친의 얼굴 모습을 닮아 남다른 애착을 가졌었다. 아쉬움에 자비로 세 조각의 돌을 붙여 세워 현재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동명은 퇴계동이지만 새 길과 마을길은 백석길로 불린다. 옛 모습은 조금씩 지워져 가고 있지만 마을 이름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돌 하나, 마을 이름 하나에도 나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 사람의 작은 노력과 마음 씀씀이가 차돌바위보다 환하게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글·사진 심창섭(본지 편집위원 · 전 춘천문인협회장)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춘천시청에서 문화재 업무를 전담하다 2006년 정년퇴직 후 수필가 및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사라져 가는 춘천의 풍경과 민속 문화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기록 중이다. 저서로 포토에세이 <때론 그리움이 그립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