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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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1

2019.6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30
아파트로 빚어진 봄내골 스카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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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사회 변화가 이뤄진 격랑의 시기에 조용한 ‘봄의 고장’ 춘천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은 1970년부터 40여 년간 토박이 언론인으로 이 고장에서 일어난 사건과 변화를 지켜본 필자가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숨은 일화와 뒷이야기들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도심 스카이라인을 형성한 봄내골 전경




봄내골의 아파트문화 등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주민들의 삶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아파트가 바꿔 놓은 것은 주거형태만이 아니다. 도시의 면모와 우리 삶의 모습까지 송두리째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줄곧 값이 올라 투자의 대상이었고 ‘재산 목록 1호’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그랬던 아파트가 이제는 주변 상황 변화와 함께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1960년대 춘천시 모습



1호는 공무원 A동 아파트


어느새 열 세대 가운데 여섯 세대가 아파트에 사는 시대(전국 평균)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주거 유형의 하나로 첫선을 보인 것은 지난 1958년이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 언덕에 지어졌던 종암아파트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에 선경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의 공동주택을 꼽거나 초기 아파트 개발 시대의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와우아파트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광복 이후 우리 기술진이 독자적으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는 분명 종암아파트다. 아마 와우아파트를 떠올리는 건 충격적이었던 붕괴 사고의 상처가 너무 깊게 각인 된 탓일 것이다.


어쨌든 봄내골에 아파트가 첫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종암아파트가 지어진 지 13년이 흘러 전국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던 1971년이었다. 경제적인 여건이 취약한 지방이어서 그만큼 전파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효자동에 봄내골 최초로 지어진 공무원 A동 아파트는 30세대 분량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향토지 신문사 사장이 입주하고 시공 전후 지방언론의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뒤를 이어 봉의아파트, 소망아파트, 에리트아파트가 봉의산 기슭에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아파트 문화의 등장을 후평동이 온몸으로 떠맡은 격이었다.


에리트아파트 201동은 대학총장과 사법부 간부들, 자치단체장들이 단체로 입주해 봄내골 최고의 주거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이어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인 1988년에 입주를 시작한 13~15층짜리 현대 1, 2차 아파트가 후평동에 343세대, 433세대 분량을 쏟아내면서 본격적인 고층 아파트 시대를 열어 나갔다. 국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국가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만들어 아파트 짓기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투기광풍 몰고 온 수요 폭증


봄내골 최초 아파트 효자동 공무원 A동 아파트



1985년 제 66회 전국체전이 강원도 일대에서 열렸다. 봄내골에서는 선수촌 마련을 위해 5층짜리 후평동 주공4차아파트 708세대를 시발로 해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선보여 갔다. 후평동 주공5차 590세대, 주공6차 360세대, 주공7차 460세대 모두 1989년 한 해에 사용 승인이 난 아파트들이다.


이처럼 대규모 아파트 건립 사업이 한꺼번에 이뤄져 시중 경기를 아파트 건설이 주도해 나갔을 정도였다. 현대와 대우, 금호를 비롯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건설사들도 앞다투어 건설시장에 뛰어들었다. 확보한 대지에 높은 용적률로 많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사업성에 지방의 중견 건설사들까지 가세해 나갔다.


처음에는 “저 높은 곳에 어떻게 살 수 있나?”싶었던 걱정도 차츰 사라졌다. 오히려 조망권이 부여되는 ‘높이’에 대한 매력과 갈수록 향상되는 편의성으로 고층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 가족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짜임새 있는 공간을 온갖 지혜를 동원해 마련하고, 집단화시켜 단지화함으로써 비용 지출을 줄여 나갈 수 있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가 되었다.



전국체전 선수촌으로 활용된 후평동 주공4차아파트



그러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현상이 이어졌다. 여기에 가족의 핵분열 현상까지 가속화되어 수요를 폭증시켰다. 걷잡을 수 없는 폭증은 월남과 중동을 비롯한 해외 특수로 시중에 넘쳤던 부동자금을 아파트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여윳돈과 내 집 마련을 위한 실수요자뿐만이 아니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전국 아파트 분양현장을 들쑤셔 투기광풍(?)을 몰고 왔다. 아파트 투자로 재미를 본 사람들이 “주식투자보다 좋다”거나 “아파트가 돈을 벌어준다”는 속설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봄내골은 그렇지 못하고 항시 뒷전에 밀려 미풍에 그쳤다.


“강원도에 살고 있는 월급쟁이들은 춘천에 집을 사고 싶어 한다”는 잠재적 욕구가 내재돼 있는데도 공급과 수요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유지해 수도권처럼 요동치지 않았다.



춘천 지역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집단화와 초고층시대 도래


춘천시가 조사한 공동주택현황(2018년 2월 기준)에 따르면 주택(12만4,423호)과 가구수(11만8,450세대)를 단순 비교한 주택보급률은 105%이다. 가구수에 비해 주택이 5%나 넘친다.

이 중 공동주택은 6만5,714세대로 △아파트가 6만 2,931세대 △연립이 2,120세대 △다세대가 663세대였다. 또 단독주택은 5만8,709세대로 △단독이 2만4,697세대 △다가구가 3만4,012세대로 집계됐다. 전체 가구의 52.8%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재건축해야 할 공동주택이 늘어나고 있다. 단독주택도 이미 36%가 노후주택으로 집계되고 있는 추세이다. 아직도 교통 인프라 개선에 따라 주택개발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반면 시중경기 위축과 인구증가 추세 둔화, 대출규제로 부동산시장이 쪼그라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내 곳곳에서 미분양사태를 빚고 있는 사례가 가격 하락이라는 먹구름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급격한 공급과잉도 이런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오는 7월 후평3동의 우미린(1745세대)에 이어 연말에는 퇴계동의 한숲시티(2,835세대)가 입주를 시작한다. 단순 논리로 4,600세대가 입주하려면 얼추 인구 1만명 정도가 늘어나야 하는데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헌 집에서 새 집으로 이사하거나, 전세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는 중상위계층의 얇은 소비계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 급격한 아파트시장 위축과 가격 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반면 봄내골의 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해를 거듭할수록 치솟아 오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 고층으로 불리던 15층짜리가 중층으로 밀려난 게 벌써 어제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39층짜리 온의롯데캐슬 스카이 클래스(933세대)가 최고층의 위치를 지켰다. 하지만 현재 시공 중인 푸르지오 아파트는 지하 7층에 49층 규모여서 바야흐로 ‘초고층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또 근화신성미소지움(1,092세대), 춘천더샵(1,792세대), 소양e편한세상(1,431세대), 동면 장학 1단지(1,037세대)에 이어 현재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들도 저마다 대형 단지화로 추진되고 있어 아파트단지 자체가 또 하나의 도시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39층 초고층아파트 온의동 롯데캐슬 스카이클래스



성큼 다가온 스마트하우징시대


봉의산 자락을 타고 뻗은 중앙로를 중심으로 듬성듬성 지어진 기와집과 초가집 굴뚝마다 저녁에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목가적 풍경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둥지를 틀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까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집은 시대와 환경은 물론이고 과학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아파트의 내외부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성냥곽’이나 ‘벌집’에 비유되던 판박이 물리적 외관뿐만이 아니다. 난방과 싱크대를 비롯한 살림살이에 필요한 내부구조물도 최첨단과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진화를 꾸준히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덩달아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스마트하우징(smart housing)’시대가 열리면서 CF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 퇴근길, 실내온도가 자동으로 높아지고 거실 전등도 자동으로 켜진다. 따뜻한 밥도 지어져있다. 각종 기기에 인터넷 통신 기능이 내장되어 스마트폰으로 원격 조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설업자들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한층 업그레이드된 휴식과 문화 공간 마련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관官도 개입해 층간소음 방지 등 규제를 강화하며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고 있다.

도심을 둘러싼 춘천 분지盆地 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자연이 일방적인 수직 고밀도 경향에 따라 도시의 스카이라인까지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파트에 치우친 주거 형태의 선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건축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100년 이상을 버틸 건물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먼 장래를 내다보고 견고하게 지었다는 주장이다. 우후죽순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아파트를 보면서 1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봄내골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를 그려보게 된다.

“사람이 건물을 만들지만 그 후엔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떠오른다.

이웃끼리 따뜻한 인정을 꽃피우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우리 미래의 모듬살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글 김길소(본지 편집위원·한국전래오락연구소장) 사진 강원일보

춘천 태생. 1970년 강원일보사에 입사해 편집국에서 강원도 전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취재했다.

편집국장, 논설주간, 상무, 전무이사를 지낸 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위원과 부위원장으로 언론사와 피해자의 중재 역할을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