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걸음이 빨라진다.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어머니에겐 비밀이 많다.
말없이 걸음을 재촉하며 딸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어머니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제주도… 우리에게 그저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섬….
그곳에서 일어난 슬픈 역사 … 제주 4.3사건.
교과서 어느 면에서 보았고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는데 무슨 일이었지?
그런데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을 만난 후부터는 아픔이 먼저 느껴집니다.
제사를 앞두고 어머니를 따라나선 열세 살 시리. 빠른 걸음을 쫓아 도착한 곳은 우거진 검불 속 동굴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이어지는 어머니의 이야기.
미군, 서북청년단, 총소리 그리고 빨갱이. 가족과 동네 주민들의 무고한 죽음, 경찰 동생 덕에 살아난 어머니, 그리고 죽은 이의 치마폭에 싸여 살아남은 세 살배기 시리. 그 손에 꼭 쥐어있던 나무도장….
기구한 인연으로 엄마와 딸이 되었지만 시리와 시리 엄마는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않습니다. 용기 내어 햇살이 쏟아지는 밖을 향해 힘주어 걸어갑니다. 훌쩍 커 소녀의 모습으로 나무도장을 만지작거리며 미소 짓는 시리를 보니 마음이 놓이는 것은 저만의 마음일까요?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며 목이 한참 메여 한 페이지를 넘기기까지 오래 걸렸던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은 비극적인 우리의 역사 한 꼭지를 담담하게 풀어내 더 아프게 느껴지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시리를 통해 전해진 것은 외려 우리의 희망과 용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