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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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27

2018.4
#봄내를 품다
노재현의 한소끔
세미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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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경기도의 집에서 나와 광역급행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정류소에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직장이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 도착한다. 프레스센터 부근에는 서울광장, 청계광장이 있어서 각종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확성기로 토해내는 구 호와 노랫소리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20층짜리 건물인 프레스센터는 이름 그대로 언론 관련 단체들이 다 수 입주해 있고 기자클럽, 기자회견장, 세미나실들이 있어서 연중 기자회견, 심포지엄, 기념식 등이 끊이지 않는다. 몇몇 행사는 필자의 업무와도 연결되기에 시간에 맞춰 찾아가 경청하곤 한다.


언제부턴가 참석자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외양만 보고 판단하는 게 성급하달 수 있겠지만, 얼핏 보아 행사의 취지나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노인층 단골 참석자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세미나 노인’이라 부른다.


세미나, 심포지엄, 토론회, 콘퍼런스 등의 이름으로 열리는 행사들은 대개 며칠 전 신문의 동정난에 예고 기사로 실리게 마련이다. 세미나 노인들은 그걸 읽고 시간에 맞춰 행사장에 나타난다. 모두에게 개방된 자리라면 굳이 참석을 막을 이유가 없다. 개중에는 다과, 음료가 제공되는 장소만 골라 다니는 노인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극소수일 것이다. 대개는 소박하나 점잖은 차림새로 와서 자료집부터 챙겨 꼼꼼히 읽고, 주제발표를 진지하게 듣는다. 토론 순서를 거쳐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발언을 신청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도 있지만 가끔 생뚱맞거나 개인적인 회고와 자랑만 잔뜩 늘어놓는 노인도 있어서 사회자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몇 년 전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학대중화 사업’의 운영위원을 맡아 석학인문강좌의 주제와 강사 선정, 강연 일정 등에 관여한 적이 있다. 석학인문강좌는 원로 인문 학자들이 매주 토요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결과를 책으로 펴내는 사업이다. 강연 장소인 서울 서초문화예술회관에 가보니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 중 80% 이상이 적어도 60세는 넘어 보이는 노년층이었다. 그들의 진지한 자세에서 평생학습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외로워서일 것이다. 청춘은 어느새 사그라들었고 일터에서도 밀려난 지 오래일 터다. 그러나 외로움 때문만일까. 지금 노년층은 단군 이래 평균 학력이 가장 높은 집단이다. 그 나이의 건강도 유사 이래 가장 좋은 층일 것이다. 열정적인 세미나 노인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매달 받아보는 ‘봄내’의 ‘알림마당’ 난은 내가 사는 동네 주민자치센터의 강습·교육 프로그램 안내로 시작한다. 알찬 행사들이 빼곡히 소개돼 있다. 수강료도 매우 싼 편이다. 봄도 찾아왔으니 나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골라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