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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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0

2019.5
#봄내를 품다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 29
춘천어린이회관
봄내의 붉은 나비, ‘상상마당 춘천’으로 다시 날아올랐다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사회 변화가 이뤄진 격랑의 시기에 조용한 ‘봄의 고장’ 춘천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김길소의 그때 그 사건>은 1970년부터 40여 년간 토박이 언론인으로 이 고장에서 일어난 사건과 변화를 지켜본 필자가

그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숨은 일화와 뒷이야기들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봄을 한껏 머금은 화사한 나비가 봄내에 사푼히 날아들었다’


‘호숫가에 피어나는 끝없는 동심의 세계’를 슬로건으로 아름다운 의암호 수변(춘천시 삼천동 223-2)에 둥지를 튼 나비 모양의 춘천어린이회관이 개관한 날을 은유한 표현이다.


1980년 5월 24일 문을 열었으니 벌써 40년이 되었다.

‘세계 아동의 해’와 ‘제9회 전국소년체전 춘천 개최’가 확정되어 이를 기념하는 상징물을 짓기로 한 지 1년 만에 초스피드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개관 초기부터 어린이와 시민들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춘천어린이회관은 오랫동안 재정적인 어려움과 위탁 운영 등에 따른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행히 현재는 그 자리에 ‘상상마당 춘천’이 들어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상상마당’은 KT&G(한국담배인삼공사)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KT&G는 어린이회관을 인수할 때 그 옆 강원체육회관을 함께 인수해 예술이 머무는 아트스테이(Art+Stay)라는 콘셉트로 리모델링한 후 ‘상상마당 춘천’과 ‘상상마당 춘천 스테이’를 함께 조성했다.



구 춘천어린이회관(현 상상마당 춘천)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아름다운 붉은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모습을 띠고 있다. 사진 사운드타워 진승현



당대 최고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


춘천어린이회관 건립이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3월에 열린 강원도청소년대책위 회의가 최초였다.


당시 김성배 도지사(전 건설부 장관)를 비롯한 위원들은 전국소년체전 개최의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기념사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장래 나라의 기둥이 될 어린 새싹들을 위해 ‘꿈의 전당’을 짓기로 뜻을 모았다. 그 후 추진위원회를 구성, 건립 계획의 대외 공포와 함께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추진했다.


우선 부지 물색에 나서 사격장으로 쓰던 곳을 신축 부지로 확정했다. 이어서 당대 최고의 김수근(金壽根) 건축가가 설계를, 시공은 한라건설이 맡기로 하고 10월 23일 봄내골 주민들의 성원 아래 대망의 기공식을 가졌다.


사업비 12억원을 들여 성토를 하고 기둥을 세워 벽돌을 쌓기 시작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1만 2,804㎡의 넓은 부지에 건축면적 3,580㎡의 번 듯한 회관이 뚝딱 세워졌다.


개관과 함께 과학전시실과 극장, 자연학습실, 대·소회의실, 전시실, 도서실, 동극실, 예술실, 주 차장, 식당, 휴게실을 짜임새 있게 갖췄다.

‘둘러싸여 있으나 막히지 않은 공간’을 추구한 건축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명작으로 극찬을 받았다.


이 중에서도 회관 중간에 있는 부지 2,079㎡에 객석 1,300석을 갖춘 도내 최초 원형 야외극장은 아름다운 주위 풍치와 함께 멋스러움이 한껏 돋보였다.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현대건축 거장이었던 김수근 건축가가 아기자기하게 설계한 어린이회관은 지금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아름다운 붉은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모습을 띠고 있다. 또 이러한 모습은 바로 앞의 드넓은 의암호반 산책길과 잘 어우러져 어린이들을 위한 ‘꿈의 전당’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렇지만 많은 시민이 봉황이나 새의 모습으로 잘못 알고 있다. 딱딱한 적벽돌로 쌓아올린 건물이지만 가녀린 붉은 봄나비의 모습이다.

어린이회관은 어린이들의 잔치마당으로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봄내골 향토축제인 춘천마임축제, 춘천인형극제, 춘천아트페스티벌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를 탄생시킨 요람이요, 무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나들이 나온 어린이들(1984)


전국에서 세 번째 어린이회관


나라살림이 팍팍했던 당시에 전국의 어린이회관은 서울과 부산 두 곳뿐이었다.

춘천에 앞서 먼저 대구어린이회관 건립이 발의돼 추진되었다. 하지만 착공과 개관이 뒤처져 봄내 골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어린이회관을 마련한 자랑스러운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모처럼 우리 고장에 안겨진 행운이요, 값진 선물이었던 보석같은 어린이회관 운영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개관 첫 해에는 무려 54만명(학생 30만명, 일반 24만명)이 찾은 봄내골 명소로 꼽혔다. 하지만 재정적인 뒷받침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어려움 속에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개관 2년 후인 1981년부터는 무료 개방하던 운영 방식을 바꿔 입장료와 사용료를 받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콘텐츠 개발과 시설 확충을 통해 괄목할 만한 각종 사업을 역동적으로 펼쳤지만 만성적인 운영자금 부족이 계속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어린이회관으로 도시락을 싸서 나들이 나온 가족들 (1993)



그래서 개관 이후 줄곧 강원도가 직영하던 것을 민간에 위탁해서 경영을 맡기기 시작했다.

향토일간지인 강원일보사(1984년 5월)에 이어 문구업체인 바른손팬시(1989년 5월)가 경영에 참여하였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방대한 규모의 유지보수비와 투자비용 등 구조적인 걸림돌을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90년부터 운영권을 맡은 춘천시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어린이회관 관리사업소를 신설하고 예능, 취미, 주부교실 등 상설 교육 프로그램과 정기공연을 유치하였다. 수지타산을 맞추려고 전통혼례식장까지 운영하는 등 지극정성을 쏟았다. 그러다 2006년 12월 다시 위탁운영자를 공개 모집하기로 하고 공모에 나섰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폐관 위기에 놓인 상태가 이어졌다. 마치 유통기한 만기를 앞둔 것 같은 절망의 형국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에 춘천민예총이 2008년부터 3년 동안 입주해 위탁경영을 담당하고 매각도 구체적으로 검토되었지만 이마저 쉽지 않았다.


봄내골의 자랑스러운 아이콘이 되어 온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김수근의 작품을 허물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여론만 비등했다.

오히려 시민들의 여론을 확인하는 심포지엄을 통해 ‘시민이 찾고 문화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지가 더 강하게 표출됐다.

의욕과 현실이 동떨어진 이런 막다른 골목에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KT&G의 ‘상상마당’이었다.




숙박 및 공연문화 연습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KT&G 상상마당 춘천 스테이’


전국에서 세 번째 상상마당


KT&G는 한국전매공사가 전신으로 그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지난 2002년 민영화가 된 후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꾸준히 사회공헌에 투자해 온 기업으로 이미 국내에 정평이 나 있다.


벌써 2007년에 각종 문화예술 공연장과 전시장, 체험장 등을 갖춘 ‘상상마당 홍대’에 이어 2011년에 충남 논산에 ‘상상마당 논산’을 개설했다.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세 번째 상상마당 건립을 준비하며 막대한 예산을 사회환원사업에 쏟아붓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서 힘을 얻어 어린이회관 건축물과 운영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업무협약과 실무협의를 거쳐 구체적으로 확정시킬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첫째, 어린이회관 설립 목적에 맞춰 상설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둘째, 건축물의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 건물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셋째, 상상마당 운영에 지역 문화예술 단체와 협업을 이뤄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근 강원체육회관은 숙박할 수 있는 스테이 호텔 건물로 조성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또 2013년 2월 13일에는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매매계약 체결이 실체화됨으로써 본격적인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인계인수 절차는 2013년 3월에 체결된 어린이회관과 강원체육회관 매매계약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이 계약서에는 어린이회관 61억원, 강원체육회관 60억원의 매매대금과 함께 단서 조항이 붙어 있었다. 첫째, 어린이회관을 30년간 ‘상상마당’으로 용도를 제한하고 둘째, 위반 시 계약을 해지하고 건물 외관 유지와 임의 매각 금지 등 특약 조건을 달아 목적 이외의 사용 금지를 못 박아 놓았다.

이로써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던 어린이회관은 KT&G가 안겨준 회생의 동아줄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봄내골 주민들의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붉은 나비의 날갯짓은 계속된다


붉은 나비(춘천어린이회관)가 잠시 멈췄던 날개를 활짝 펴고 ‘상상마당 춘천’으로 거듭나며 힘찬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 봄내골에서 살아온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몇 자락씩 추억이 깔려 있는 이곳을 모처럼 취재를 위해 찾아 나섰다.

개관 이후 수백억원에 이르는 리모델링 비용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 건물의 골격은 물론 주변도 고스란히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


문화공간 ‘아트센터(Art Center)’와 숙박 및 공연문화 연습 공간 ‘스테이(Stay)’로 나뉜 두 건물 안의 분주한 움직임이 무척 반가웠다.

드넓은 의암호반을 싸고 돌 수 있는 둘레길의 수많은 산책객의 눈길에서는 어린이회관을 지켜낸 자긍심과 지극한 사랑이 묻어났다.

KT&G 상상마당 춘천 문화사업부 콘텐츠팀 한수지 과장은 “춘천을 기반으로 강원도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 지난 5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다”면서 KT&G는 이러한 노력을 쉼 없이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잃어버릴 수 있었던 청춘의 도시 봄내골의 붉은 봄나비(어린이회관 건물)가 이렇게 다시 날갯짓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벌써 계약 기간이 5년이나 지났다. 앞으로 25년이 남았다. 그 후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 미지수를 앞두고 더욱 짙어진 봄내음과 함께 더 멋진 그림을 그려낼 날을 꿈꿔본다.






글 김길소(본지 편집위원·한국전래오락연구소장) 사진 강원일보

춘천 태생. 1970년 강원일보사에 입사해 편집국에서 강원도 전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취재했다.

편집국장, 논설주간, 상무, 전무이사를 지낸 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위원과 부위원장으로 언론사와 피해자의 중재 역할을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