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이가 만난 봄내 청년 ④
‘오직 한 사람을 위해 한 의자만 두다’
뉴트로(New-tro). 새로움(New)과 복고(Retro)가 합쳐진 신조어로, 복고풍의 의상 혹은 문화콘텐츠를 새롭게 즐기는 현상을 일컫는다. 서울 동묘 구제시장에서 구제 의류를 고르는 젊은이들과 이제는 없어서 못 판다는 옛날 필름 카메라들만 봐도 뉴트로의 시대가 왔음을 알 수 있다.
춘천에도 뉴트로의 바람이 불었다. 팔호광장에서 뻗어진 골목 중 하나. 그곳엔 포마드를 짙게 바르고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 머리를 자르는 바버(이발사)가 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면도칼과 클리퍼(미용가위)를 든 남자. 흑백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이 모습은 이발사의 상징이다. 최근 들어 이발사는 바버(Barber)로, 이발소는 바버샵(Barber shop)으로 불리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구시대적이라 여겼던 포마드와 짧게 올려 친 머리가 멋의 상징이 된 것이다. 춘천의 첫 바버샵 을 연 바버 박상원(27) 씨는 4년째 손님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바버샵이라는 문화를 알게 된 건 호주에 살던 누나 덕분이었어요. 머리를 자르는 곳인데,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면서 놀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큰 충격을 받았고, 바버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미용학교에서 미용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4년 전에 바버샵을 차렸죠.”
바버샵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선을 중요시한다. 날카로운 면도 칼로 끝선을 다듬고, 클리퍼로 짧게 올려친다. 개화기의 ‘모던보이’들, 혹은 영국 신사들처럼 포마드로 옆머리를 붙이고 앞머리를 올린 ‘리젠트’가 대표적인 예다.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을 표현하는 미용실과는 조금 다른데, 특별한 기술을 오랫동안 수련해야 하거나 비밀스러운 양성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점은 문화에 있다.
“한국에서 미용실이란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곳인 것 같아요. 손님으로서 대접을 받는 것. 그게 우리나라에서 머리를 자르는 문화죠. 그런데 대다수의 바버샵들은 미용실만큼 극진한 서비스를 대접하진 않아요. 그 흔한 립 서비스도 없고, 고객 응대 매뉴얼도 없어요. 그렇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문화를 만드는 게 바버샵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팔호광장에서 가지처럼 뻗어 나간 골목. 그곳에서 간판도 없이 운영 중이지만 그의 가게는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아침마다 이마와 눈썹을 다듬고 면도를 하며, 빗으로 가르마를 내고 포마드를 바르는 이들이 춘천에도 제법 생겨난 것이다. 개업 초반에 힘든 시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온 덕분이다. 4년 전의 그는 지금의 성공을 예상했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몸 곳곳에 있는 타투 때문에 남들이 저를 백수 취급 하거나 양아치로 폄하하는 게 싫었거든요. 더 공손하게, 더 친절하게 하다 보니 4년 동안 운영이 된 것 같아요.”
최근 그는 더욱 작은 곳으로 가게를 옮겼다. 의자는 단 한 개. 오로지 한 손님만을 위한 공간이다. 개업을 할 때도, 가게를 옮길 때도 주변에서 우려 섞인 조언을 건넸지만 결국 해냈고, 꿈과 성공을 이뤘다. 그에게 다음 꿈은 무엇일까?
“바버로서 클래식한 멋만을 고집하고 싶진 않아요. 무조건 짧게 올려쳐야 한다거나 포마드를 써야 한다는 틀을 깨고 싶어요. 사람마다 어울리는 머리가 다른 법이잖아요. 전 그냥 누구나 동경하는 멋진 바버보단 친근한 동네 이발사가 될 거예요. 오랫동안 믿고 머리를 맡길 수 있는, 그런 이발사 말이죠.”
글 김화랑(봄내 청년기자·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비뚤어진 반항아를 취재하는 잡지 를 출간하고 대학에 입학했다.‘뱅뱅클럽’이라는 미디어 프로덕션에서 대표로 지냈다.
여행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오토바이로 14개국을 횡단한 후 또다시 모험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