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동물이라면, 당신이 늙어봤다면”
허리가 구부러진 돼지노인이 할머니 보행기를 끌고 가며 ‘너는 늙어봤느냐’고 묻는다. 핑크 돼지들은 날렵한(?) 몸매를 한껏 늘리고 구부리며 요가수행 중이다.
인간의 생활모습을 동물에 투영해 때론 유쾌하게 풍자하기도 하고, 날선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정은 혜(38세) 도예가. 작품이 전시돼 있는 갤러리 툰에서 작가를 만났다.
“제가 몸도 왜소하고 말도 잘 못해요. 주변에서 부조리한 일을 많이 목격하면서 제대로 항의를 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했죠. 도예를 전공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항의를 하거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즈음이었어요. 우연히 태국에서 코끼리 트레킹을 하게 됐는데 코끼리 몸에 난 수많은 생채기를 보면서 인간이 동물에게 이렇게 잔인해도 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여행을 끝내고 제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동물 학대를 자행하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동물들을 대상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동물학대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작업 활동과 연구를 하면서 내놓은 작가의 논문 제목은 「인간의 생명경시현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도자조형 연구」다. 작가의 작품에서 동물들은 인간과 똑같이 사랑을 하고, 웃고, 사회 부조리에 항의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주로 돼지, 닭, 소들이 등장한다.
“초기에는 일반적인 동물들을 주로 표현했는데, 2017년부터는 공장식 축산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람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농장에서 어떻게 동물들을 키우고, 어떻게 도축되는지, 좁은 공간 안에서 평생을 살고 죽어요. 실제로 그렇게 좁은 곳에 서 살면 수명이 단축된대요. 어쩌면 사람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이러한 과정 들을 살펴보면서 동물복지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부산에서 태어나 주로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작가는 결혼을 하면서 춘천으로 왔는데 올해로 3년째다. 방 한칸을 작업실로 꾸미고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는 올해 연말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역 내에 있는 더 다양한 곳에 작품을 선보이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작가와 오래도록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