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어릴 때부터 몸을 쓰는 일에 둔했다. 나의 운동 신경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날은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였다. 엄마와 아빠, 친구들, 친구의 부모님들이 보는 가운데 달리기 꼴찌를 했다.
초등학교 내내 모든 달리기에서 꼴찌를 했다. 운동회가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기도를 했다. ‘제발 운동회 날 아침에 배 아프게 해주세요!’ 기도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가 아파서 못 뛸 것 같다고 거짓말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으련만 거짓말할 꾀는 내지 못했다.
달리기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체육 활동에 취약했다. 공을 차거나 던지면 앞으로 가야 할 공이 옆으로 갔고, 멀리 날아가야 할 공은 코앞에 떨어졌다. 또 최선을 다해 공을 잡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팔을 부둥켜안고 있었고 공은 엉뚱한 곳에 떨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체육 점수 때문에 난감했다. 한번은 매트에서 앞으로 몸을 두 번 굴린 뒤 매트 끝에서 바로 서는 체육 실기 시험을 치러야 했다. 매트 위에서 구르고 나면 내 몸은 앞이 아니라 매트 옆으로 굴러가 있었다. 누가 알았으랴. 시험 한 달 전부터 집에서 매일 밤 담요를 펼쳐놓고 열 번씩 구른 뒤에야 비로소 앞으로 굴러갈 수 있게 된 처절한 사정을….
이러니 체육 과목 없는 대학 입학은 내게 천국 입장과 같았다. 날아갈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인생은 12년 동안의 체육으로부터 해방이야! 다시는 안 뛸 거야.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 1학년 1학기 때 ‘교양 체육’이라는 시련이 있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직원 체육 행사였다. 직장 선배가 사정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나를 발야구 선수로 밀어 넣었다. 안 된다고, 못한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직장 막내는 끝까지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발야구 선수로 운동장에 섰다. 공이 굴러오길래 성심성의껏 찼다. 역시 헛발질이었다. 평소 무뚝뚝하고 근엄하기로 최고인 교장 선생님이 박수를 치면서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웃었다. 창피했지만 ‘그래, 사람들에게 웃음 준 걸로 만족하자’는 생각으로 정신 승리를 도모했다.

남 보는 데서 되도록 뛰지 않고 가급적 공을 차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쉰 살이 가까워질 무렵 어깨가 콕콕 쑤시고 몸이 항상 찌뿌둥했다. 경락 마사지도 받고 파스도 붙여 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요가 학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가면 몸의 문제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요가 학원에 들어섰고, 이후 5년째 요가 학원에 다니고 있다.
몸이 아프거나 많이 바쁜 날이 아니면 되도록 요가 하러 간다. 비가 오는 날도 기운이 없는 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오는 날도 요가 학원에 간다. 요가를 하다가 짜증을 낼지언정 말이다.
지난여름에 인도네시아 우붓에 요가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 일곱 시쯤, 그리고 초저녁쯤, 이렇게 하루에 두 번씩 다양한 요가 센터에 가서 수련하는 일상을 일주일쯤 누리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아니, 내가 온전히 스포츠만을 위한 여행을 하다니…. 이건 정말 내 인생 최초의 일이야.’
여러 종류의 요가 중 ‘인사이드 플로우’를 특히 좋아한다. 빈야사와 음악이 어우러진 요가인데, 음악의 흐름에 빈야사 동작을 얹어 움직일 때 어느 순간 설명하기 힘든 해방감이 밀려온다. 인사이드 플로우는 근력과 균형 감각이 상당히 필요한데 나는 근력도 균형 감각도 부족하여 자세가 엉거주춤일 때가 많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비틀거리는 건 흔한 일이다.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 음악의 느낌을 듬뿍 담지만 객관적으로는 뻣뻣하기 짝이 없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라서 잘하지는 못하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좋아한다. 거의 짝사랑에 가깝다.
요즘은 호흡을 배운다. 갈비뼈가 아가미가 된 기분으로 갈비뼈 사이를 부풀리는 1번 호흡, 허리 뒤편에 숨을 단단하게 채우는 2번 호흡, 양 겨드랑이에 숨을 한껏 넣는 3번 호흡, 등의 날개뼈에 숨을 가득 넣는 4번 호흡. 갈비뼈, 허리 뒤편, 겨드랑이, 날개뼈에 숨을 채우면서 두 팔을 하늘로 드는 순간 나는 가벼워진다.
인생은 가볍지 않다. 몸도 가볍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 하지만 몸 하나 겨우 뉠 수 있는 크기의 매트 위에 서면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있고 가벼워질 수 있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내 숨으로 가벼워진다. 요가 수련은 거듭될수록 나빠지는 법이 없다. 더 잘 숨 쉬게 되고 더 가벼워진다. 그리고 몸은 더 단단해진다. 인생에서 이렇게 구체적인 즐거움이라니…. 이것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요가 매트 위에 서는 이유가 아닐까.
요가 학원의 선생님들은 이따금 소양강변이나 하중도 수변 생태공원 같은 야외에서 요가 수업을 연다. 초등학교 이후 공개적인 자리에서 몸으로 뭔가를 하는 일을 꺼리는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춘천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인사이드 플로우 요가를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