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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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30

2026-11
#봄슐랭가이드
로컬푸드 배추편
찬바람이 불면 춘천 배추가 차오른다

▲동내면 가을 배추밭


찬바람이 서면과 동내면의 산자락을 스치면, 밭은 초록으로 짙어진다. 11월, 김장철을 맞은 춘천의 배추밭이 수확을 기다린다. 차가운 계절을 지나며 단맛이 오르는 배추는 겨울 밥상을 지키는 가장 친근한 제철 먹거리다.


한 잎 베어 물면 퍼지는 알싸하고 달큰한 즙, 아삭하게 씹히는 고소함. 배추는 김치가 되기 전에도 충분히 맛있는 채소다. 갓 버무린 겉절이로, 노릇하게 부친 배추전으로 제맛을 낸다. 그 한 포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씨앗을 심고, 벌레와 씨름하고, 날씨를 살피는 농부의 시간이 쌓인다. 올가을, 춘천의 한 배추밭을 찾았다.


가을비가 내리던 10월 13일,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의 한 비닐하우스. 초록빛 배추들이 잎을 겹겹이 포개어 자라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배춧잎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보인다. 연둣빛 청벌레가 지나간 흔적이다.


“어쩔 땐 그물 가방이 따로 없죠.”
배추를 두고 농부 안경자(70) 씨가 웃으며 말했다. 크고 반듯한 배추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농약을 치는 대신 벌레를 손으로 잡아가며 키운 무농약 배추였다.


안 씨가 처음부터 농부였던 것은 아니다. 경기도 구리에서 남편과 중화요릿집을 운영하던 그는 2004년 위암 수술을 받았다. 치료를 이어가며 구리에서 몇 해를 더 보낸 뒤, 2011년 시댁 땅이 있는 남편의 고향 춘천으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가족이 먹을 채소를 기를 생각이었다. 직접 기른 채소를 식탁에 올리고, 남는 채소는 이웃과 나눴다. 마침 동내면 학곡리에 로컬푸드 코너가 문을 열면서 판매를 시작했다.


농사 경험이 없던 안 씨는 책부터 폈다. 먹거리에 관심이 생겨 춘천 평생교육원을 1년 다녔고, 교수의 권유로 강원대 마이스터대학에서 2년 더 배웠다. 춘천시 농업기술센터 교육에는 2015년부터 참여해 왔다. 일흔이 된 지금도 농사법을 배우고 시험하는 일이 계속된다.


▲안경자 농부


유네스코(UNESCO) 로고

“백 가지 채소가 배추만 못하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말이다. 배추를 귀하게 여겨온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배추는 2012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Kimchi cabbage’라는 명칭으로 인정받았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사에서 가장 힘든 일은 벌레와의 싸움이다. 처음에는 벌레를 손으로 만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족집게를 서른 개 넘게 마련해 하우스마다 꽂아 두고, 눈에 띄는 벌레를 하나씩 집어냈다. 그런 안 씨에게 남편 양춘모(72) 씨는 “이 사람아 집게로 되겠나”하며 껄껄 웃곤 했다. 지금은 족집게 대신 장갑을 낀 손으로 벌레를 잡는다. 장갑은 늘 주머니에 들어 있다. 벌레 먹은 잎과 상한 겉잎을 정리하다 보면 버릴 것이 많다. 안 씨는 무농약으로 배추 천 포기를 심으면 거둘 수 있는 것은 3분의 1 정도라고 했다.



▲안경자 씨가 무농약으로 재배하는 하우스 배추



안 씨는 가족들과 함께 노지에서도 배추를 길러 왔다. 지난해까지는 무농약 재배를 이어왔지만, 올해는 여러 여건을 고려해 노지의 재배 방식을 바꿨다. 대신 별도로 관리하는 비닐하우스에서 무농약 배추를 키우며 자신만의 농사법을 이어가고 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주변 농가에서는 “돈도 안 되는 친환경 농사를 왜 하느냐”며 말리기도 했다.


배추도 씨앗부터 직접 키웠다. 모종을 사다 심으면 편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자랐는지 알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모판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뒤 하우스로 옮겨 심는다. 화학비료도 쓰지 않았다. 대신 버려질 뻔한 것들을 거두었다. 이웃들이 팔지 못한 농산물은 산기슭 밭에 쌓아 썩혀 퇴비로 쓰거나 발효액으로 만들어 물에 희석해 분무기로 뿌렸다. 빗물과 쌀뜨물도 모아 두었다가 사용했다. 농약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맞는 재배법을 찾아온 것이다.


배추는 크고 속이 꽉 찰수록 맛있을까. 안경자 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키가 너무 크지 않고 잎이 얇고 부드러운 배추다. 속이 빽빽하고 단단하게 여문 것보다 적당히 속이 찬 배추가 먹기에도 좋다는 것이다.


“하우스 배추는 겉절이로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갓 버무린 겉절이는 아삭하고 달큰하다. 하지만 오래 두고 먹는 김장김치는 조금 달랐다. 안 씨는 하우스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잎이 무르게 느껴진 경험이 있다. 이후 배추가 어느 정도 자라면 물 주는 양을 조절하며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왔다. 안 씨에게 좋은 배추의 기준은 크기나 모양이 아니라, 입맛이 기억하는 맛이다.




빨간 고추 일러스트

김치가 처음부터 빨갛지는 않았다. 고추를 양념으로 쓰기 전에는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장에 담가 먹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시 「가포육영(家圃六詠)」에도 순무를 소금에 절여 겨울에 대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김치가 붉어지기 시작한 것은 고추가 양념으로 쓰이면서 부터다. 1766년 편찬된 『증보산림경제』에는 오이에 칼집을 내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어 담그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오늘날 오이소박이와 닮은 모습이다. 적어도 18세기 중엽에는 고추를 이용한 김치가 만들어 지고 있었던 셈이다.



안 씨의 농산물은 춘천 곳곳의 로컬푸드 매대로 향한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벌레 먹은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다.



“안경자 님 본인이세요?” 직매장에 채소를 가져다주러 갔다가 손님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부추의 향이 다르면서 그의 채소를 찾으려고 다른 매장까지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자신이 키운 채소의 맛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농사를 계속하는 힘이 된다.


학교 급식에 보낼 상추는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골라 따로 담는다. 직매장에서 팔리지 않고 돌아온 채소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경로당에 가져다 주기도 한다. 안 씨는 농사를 지으며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건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기른 농산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가족의 식탁에서 처음 시작한 농사가 이제는 다른 이들의 식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진짜로 나 먹는 그대로 판매하고 싶었어요.”라던 안 씨의 말이, 구멍 난 배춧잎 하나에도 그대로 닿아 있다.


배춧잎을 다시 바라본다. 처음에는 못생긴 배추로 보였던 한 포기에, 농부가 들인 시간과 선택이 겹쳐 보인다. 춘천의 가을이 깊어 가는 동안 안경자 씨의 비닐하우스에서도 배추는 천천히 속을 채우고 있다.


빨간 고추 일러스트

춘천에서 키운 배추는 김치가 되어 새로운 판로를 만난다. 반하지영농조합법인(대표 양진모)은 먹거리통합지원센터에 배추를 납품 하던 중 주문량에 따라 남는 물량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 답이 김치였다. HACCP 인증을 받은 시설에서 김치를 생산하며, 학교급식과 로컬푸드 직매장, 농협 등에 공급하고 있다. 김치에 사용하는 원재료는 모두 춘천산이다. 춘천의 배추가 김치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식탁에 오르고 있다.

※문의 010-6381-0029



※ 12월호 주제는 ‘콩’입니다. P.63 참여 방법 확인 후, 제철 농산물을 활용한 나만의 레시피를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