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이 준비해 온 호수정원도시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상중도에 국립정원소재센터가 들어섰고, 내년 완공을 목표로 춘천호수지방정원도 조성되고 있다. 시민정원사들이 가꾼 정원에서 시민들이 쉬고, 아이들은 직접 식물을 심는다. 정원 공간과 그곳을 가꾸고 누릴 사람들이 함께 자라는 현장을 찾았다.

서상초등학교 아이들이 시민정원사들의 도움을 받아 층꽃나무를 심고 있다.

한 아이가 국화꽃에 코를 가까이 대자 친구들도 모여들었다. “선생님, 여기 벌레 있어요.” “꽃이 자라서 천장까지 닿으면 어떻게 해요?” 질문과 설명이 오가는 사이로 웃음이 터졌다. 2학년 유림이는 꽃이 예쁘다며 손으로 계속 꽃잎을 쓰다듬었다.
10월 7일 오전, 서상초등학교 아이들이 상중도 국립정원소재센터를 찾았다. ‘봄내 꿈나무 정원사’ 현장교육이 열린 날이다. 원창오 국립정원소재센터 실장의 안내로 ‘우리 꽃 전시회’를 준비 중인 본관과 야외정원을 둘러본 뒤 아이들은 식재 장소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우리꽃 전시회’에서 꽃과 잎을 관찰하고 있다.
강의를 맡은 조혜진 정원설계사가 식물을 보여 주며 무엇처럼 생겼는지 물었다. 한 아이가 낙지를 떠올렸다. 그 식물의 이름도 실제로 ‘낙지다리’였다. 길게 뻗은 꽃줄기가 낙지의 다리처럼 보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조 강사는 낙지다리와 층꽃나무, 노랑원추리 등을 소개하며 우리나라 자연에서 자라는 자생식물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아이들이 심은 식물은 층꽃나무였다. 열아홉 명의 아이들이 네 조로 나뉘었다. 조마다 춘천 시민정원사 두 명이 함께했다. 화분에서 꺼낸 모종은 흙과 뿌리가 얽혀 화분 모양으로 뭉쳐 있었다. 조 강사는 뭉친 뿌리를 풀어줘야 땅속에서 뿌리가 뻗어나간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작은 삽으로 땅을 파고, 구멍에 비료를 조금 뿌렸다. 뿌리를 풀어준 층꽃나무를 넣고 흙을 덮은 뒤 물을 듬뿍 줬다. 아이들이 식물을 심은 곳은 센터 앞에 조성 중인 실외 기후정원 ‘내일의 쉼’ 구역이다. 시민이 직접 식물을 심고 가꾸며 정원을 배울 수 있도록 계획된 공간이다.

이날 아이들 곁에 있던 시민정원사들은 교육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우리가 할 일이 많아요. 당연히 와야죠.” 최주영 봄내가드너스 대표의 말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야외정원에서 식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센터 앞 전시 야외정원의 일부는 지난 10월 1일 시민정원사들이 함께 꾸민 공간이다.
춘천시는 2023년부터 시민정원사를 양성해 왔다. 올해 9월에는 국립정원소재센터에서 네 번째 기초과정이 시작됐다. 8주 교육에서는 수목의 특성과 병해충 관리, 전정 방법 등 정원 관리에 필요한 기초를 배운다. 심화과정에서는 정원 설계와 식재 등 현장 실습을 한다.
시민정원사들은 배운 내용을 여러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심화과정 참여자들이 동면 장학리 철새도래지 공원에 실습정원을 설계하고 식재했다. 남이섬 ‘봄내 플라워가든’에서는 지난해 봄 정원을 조성한 뒤, 계절꽃을 심고 정원을 정비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춘천시는 꽃 모종과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남이섬은 정원의 유지·관리를 맡는다. 호수정원페스타 개막을 앞두고는 공지천에서도 시민정원사들이 정원의 일부를 조성했다.
시민정원사들은 아이들의 교육 현장에서도 힘을 보탠다. ‘봄내 꿈나무 정원사’ 교육은 2025년 강원명진학교와 춘천교대부설초등학교에서 시범 운영으로 시작됐다. 올해는 춘천시와 춘천교육지원청이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참여 학교가 늘었다. 특수학교와 특수학급 학생들도 참여한다. 가을 교육에서는 일부 학교의 유휴 공간에 정원을 만들고,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울 구근을 심는 활동도 한다. 정원을 만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수업 이후에도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춘천시민정원사들이 국립정원소재센터 야외정원을 가꾸고 있다.

상중도에 들어선 국립정원소재센터

국립정원소재센터는 정원에 쓰이는 식물과 재료를 연구·시험하며 정원산업을 지원하는 국가기관이다. 춘천시가 유치했으며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운영한다. ‘정원소재’는 꽃과 나무만을 뜻하지 않는다. 흙과 비료, 삽과 가위 같은 도구, 정원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데 쓰이는 각종 재료를 두루 포함한다. 센터는 이런 소재의 기술 개발과 활용을 돕고, 생산과 유통에 필요한 규격과 기준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날 만난 자생식물도 정원에 활용하려면 살펴야 할 점이 많다. 원창오 실장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이라고 모두 정원에 바로 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보기 좋게 자라는지, 관리하기 쉬운지,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을 견디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센터는 식물의 생육과 기후 적응성을 시험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해, 생산자와 기업이 정원 소재를 선택하거나 개발하는 데 활용하도록 돕는다.
센터 부지에는 춘천시가 온실 두 동(재배온실·전시온실)을 만들었고, 시험포지와 실외 기후정원도 조성하고 있다. 재배온실은 식물을 기르고 연구하는 공간이며, 시험포지는 야외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고 계절 변화에 적응하는지 살피는 곳이다. 아이들이 층꽃나무를 심은 ‘내일의 쉼’도 이 실외 기후정원의 한 구역이다. 시민들이 정원소재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전시온실에는 실내정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센터 본관 2층에서는 시민정원사 교육이 열리고 있다. 1층은 기업의 정원소재를 소개하는 전시·홍보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2026 공지천호수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공지천 일원에서 열린 ‘2026 공지천호수축제’가 13만 2,000여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찾은 가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개막일인 9일, 산책로 곁에는 시민정원사들이 만든 작은 정원들도 들어서 있었다. 그 사이로는 음료를 손에 든 채 식물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이 오갔다. 꽃과 풀이 어우러진 정원 주변에는 앉아 쉬는 사람들도 보였다.
‘호수정원라운지’에서는 시민들이 탁자에 놓인 카드에 미래의 정원에 대한 바람을 적었다. 끈에 걸린 카드를 살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숲소리와 물소리가 있는 정원”, “소음이 차단된 곳”, “곳곳에 초록이 가득한” 정원, “수달이 사는 정원”. 시민들이 바라는 정원 풍경이 손글씨로 남았다.
공지천의 튤립과 길가의 계절꽃처럼, 시민들이 일상에서 식물을 만나는 공간은 이미 가까이에 있다. 춘천이 그리는 호수정원도시는 이런 경험을 더 많은 생활 공간으로 넓히는 데서 출발한다. 시는 호수와 수변의 풍경을 살리고 도심의 녹지공간을 연결해 시민에게 가까운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정원을 배우고 가꾸는 기회를 늘리려 한다.
상중도에는 국립정원소재센터와 별도로 18헥타르 규모의 춘천호수지방정원이 조성되고 있다. 테마별 정원과 생태탐방로, 산책로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시는 올해 기반시설 공사를 진행하고, 내년 상반기 식재를 거쳐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완공 후 운영 경험을 쌓으며 장기적으로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도시 전역을 잇는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춘천은 지난 9월 산림청 ‘정원도시 조성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비 50억 원과 도비 15억 원 등 65억 원의 국·도비를 확보했다. 2027년에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8년부터 권역별 조성에 들어가 2030년까지 총 100억 원을 투입한다. 고구마섬, 의암호 수변, 공지천, 도심 진입부 등 네 권역에 정원 공간과 문화 기반을 마련한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꾸민 ‘호수정원라운지’
이 사업에는 거점정원과 선형·팝업정원 조성뿐 아니라 시민정원사 양성, 정원교육과 치유 프로그램, 가든센터 조성도 포함된다. 정원문화를 시민 일상에 확산하고 관광·산업과 연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정원도시를 향한 움직임은 내년 열리는 정원산업박람회로도 이어진다. 춘천시가 유치한 2027 정원산업박람회는 내년 10월 중 나흘간 옛 캠프페이지 기후대응 도시숲과 공지천 일원에서 열린다. 총사업비 15억 원은 춘천시와 산림청, 강원도가 함께 마련한다. 정원산업전과 코리아가든쇼로 정원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산업형 박람회다. 정원산업전에는 30개 업체가 참여하고 코리아가든쇼에서는 정원 26개를 선보일 계획이다.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체험·교육·상담, 문화예술, 정원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시는 상중도 춘천호수지방정원과 국립정원소재센터 등 춘천 곳곳의 정원 기반을 연계해 박람회 공간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번 박람회를 2032년 국제정원박람회로 이어가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서상초등학교 아이들이 층꽃나무를 심은 실외 기후정원 ‘내일의 쉼’은 취재 당시 아직 공사 중이었다. 시는 올해 10월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득정 춘천시 녹지정원과장은 “정원은 도시의 건강과 회복력을 키우는 공공의 일”이라며 “시민들이 집 가까이에서 정원을 만나고, 산책하다 쉬어 가고, 직접 식물을 가꿀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아이들은 화분 모양으로 뭉친 뿌리를 풀어 줘야 새 땅에서 뿌리가 뻗어나간다는 것을 배웠다. 정원을 만드는 춘천에도 공간을 조성하는 일과 그곳을 가꿀 시민들의 손길이 함께 필요하다. 아이들이 심은 층꽃나무 곁에는 그 두 가지가 나란히 놓여 있다.


10월 7일 이른 아침, 상중도 국립정원소재센터 야외정원에서는 권용진 센터장이 삽으로 흙을 퍼내고 있었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진흙밭을 오가는 그의 주변에서는 직원들과 시민정원사들도 식재 작업에 한창이었다. 전시를 앞둔 정원을 함께 손보는 아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