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의 오래된 카페 ‘바오밥’에 가면 먼저 건물을 보게 된다. 반듯하거나 번듯한 집은 아니다. 기둥은 조금 기울어 있고, 벽과 천장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지붕에서 물이 새고 천장에서 묵은 흙이 바스러져 떨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 집의 나이를 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광서 8년(光緖八年), 이 집의 대들보에 새겨진 건축 연도이다. 따져보면 서기로 1882년이다.
한 세기가 훌쩍 넘었다.
그동안 이 집의 처마 아래로 얼마나 많은 존재들의 삶이 지나갔을까. 몇 사람이나 문지방을 넘었고, 몇 번의 봄과 가을이 마당을 바꾸어놓았을까. 감히 상상하기 힘든 세월이다. 건물은 오래된 나무와 흙벽, 조금 기운 골격만으로 그 시간을 대신 증언하고 있다.
지금의 바오밥 주인 부부가 이 집을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프랑스에서 파티시에 셰프를 하던 남편은 이태원의 레스토랑을 거쳐 춘천에 자리 잡았다. 당시 집은 지붕에 구멍이 나 있었고 바닥이 꺼진 곳도 있었다. 누군가는 허물어야 할 낡은 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이후 스무 해가 넘도록 그림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그림을 그리듯, 글쓰기를 하듯 집을 꾸며갔다. 남편과 함께 지붕을 고치고, 수도를 손보고, 흙벽을 수리하면서 이곳을 지켜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람과 집의 인연도 사람과 사람의 인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완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다 보니 흠집까지 정이 드는 것. 고쳐야 할 곳이 생길 때마다 손을 대고, 조금 불편해도 떠나지 않는 것. 오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바오밥은 간판도 그늘에서 쉬어간다.
바오밥
🎯 위치: 신동로 69-4
📷 인스타그램: baobab.bom

나 역시 이 집과 스무 해 넘게 알고 지냈다. 처음 바오밥에 갔던 것은 2004년 겨울이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마음이 둥둥 떠다니던 때였다. 그 마음을 따라 이곳저곳을 부유하다가 이 집에 닿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조금 기울어진 공간이 착각의 방처럼 느껴졌다. 진짜 같지 않은 시공간에 들어온 느낌, 어딘가 빈 마음을 내주는 그 집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 후 내 인생의 몇 장면이 이 집 안에 놓였다. 아내에게 청혼한 곳도 이곳이었다. 마음에 상처를 안고 춘천을 찾은 지인들에게 위로를 건넨 곳도 이곳이었다. 떨어져 살다가도 뭔가 진득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바오밥을 찾았다. 그리고 오래된 한옥은 우리가 찾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의 장면을 기억해 줬다. 우리의 청첩장이, 큰아이의 그림이 오랫동안 계산대 벽에 걸려 있었다. 따뜻한 주인 내외의 배려 한 줌과 함께 말이다.

색색의 연필이 손님들에게 빈 종이와 풍경을 건넨다.

무화과 푸딩, 이 곳의 케이크는 늘 바뀌고 새롭다.
부모님과의 기억도 있다. 춘천에 오셨던 날 아쉽게도 바오밥은 휴무일이었다. 하지만 기울어 있는 한옥이 신기하신 듯 두 분은 한참을 건물과 정원을 구경하고 떠나셨다. 그 뒤로 종종 아버지는 바오밥 이야기를 꺼내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얼마 후 쓰러지셨고, 다시는 바오밥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내겐 이상한 장면 하나가 기억처럼 남아 있다. 부모님이 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는 장면이다. 집이 오래 살아남으면 가끔 이런 일도 생기는 모양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품어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곳,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바오밥의 오래된 집에는 사람만 머문 것도 아니다. 마당에는 쎄리와 오페라라는 강아지가, 또 귤이와 밤이라는 고양이가 살았다. 밤이가 낳은 새끼 ‘하나’도 추억을 보탰다. 여러 동물이 이 집에서 살다 먼저 떠났다. 그리고 덩달아 집 앞의 나무들도 함께 나이를 먹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은 집과 마당을 사람의 편의에 맞추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판이 가려도 가지를 함부로 자르지 않는다. 정원의 식물들이 웃자라도 이유 없이 꺾지 않는다. 심지어 카페의 고즈넉함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손님이 너무 많아지면 메뉴를 줄이고, 쉬어야 할 때는 문을 닫는다. 2009년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메뉴를 없애고, 음료와 케이크를 파는 카페로 전향한 것도, 손님이 많은 일요일을 쉬는 날로 정한 것도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바오밥의 또 다른 가족이었던 귤이와 밤이
바오밥은 진정 이런 곳이다. 낡은 것은 고쳐 쓰고, 불편한 것은 조금 견디고, 나무가 자라면 사람이 비켜선다. 더 많이 가지는 대신 지금 가진 것을 오래 지키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나는 바오밥이 오래된 카페라기보다 오래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가게는 언젠가 문을 닫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집은 오랜 인연을 가만히 품는다. 청년이 중년이 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어린 고양이가 늙어가는 동안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1882년에 세워진 집에서 2004년에 시작된 바오밥은 여전히 조금 낡고, 조금 불편하고, 조금 조용하다. 그리고 나와 동갑내기인 주인 내외의 얼굴 위 주름엔 시간의 흔적이 쌓여 있다. 오래된 것은 결국 사라진다. 그렇기에 나는 바오밥의 지금이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그곳에 갈 수 있을 때 가고,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마당의 나무를 바라보고, 오랜 친구에게 하듯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잘 있었구나. 나도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