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로 지낸 지는 삼 년쯤 되었다.
아파트 산책길에 작은 정자가 있다. 두어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정자 안쪽 가장자리에 긴 나무의자가 둘러져 있어서 산책하다가 잠깐 들러 쉬기 좋다. 지붕도 있어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비를 피하기에도 맞춤이다.
한여름 저녁이었는데 누군가가 이 의자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아예 의자 위에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하염없이 엎드려 있었다. 황금빛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 그 편안하고 경계심 없어 보이는 자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야옹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야옹이도 “냐앙” 인사를 했다. “의자 마음에 들어?” 물었더니 “냥~” 대답을 했다.
첫인사를 트고 나서 우리는 산책길에서 종종 마주쳤다. 야옹이는 길 옆 풀밭에 앉아 있기도 했고 산책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야옹이, 안녕? 잘 지냈어?” 인사를 하면 야옹이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냥~” 대답을 꼭 했다. 어떨 때는 내가 야옹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라 하면 옆 풀숲 어딘가에서 들릴 듯 말 듯 한 “냥”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 야옹이였다. 말 잘하는 야옹이.
가만 보니 산책길의 정자와 그 뒤편의 아파트 공원 근처가 말 잘하는 야옹이의 영역이었다. 늘 그 부근에서 만났다. 가을이 되어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다. 야옹이 등 뒤에 노랗게 또 빨갛게 물든 나뭇잎을 얹어놓고 하하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남편과 나 사이에 야옹이를 앉혀놓고 가족사진마냥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실 나는 집에서 작은 새나 거북이 말고는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다. 새나 거북이를 돌봤던 것도 남편과 딸이었고 나는 평생 어떤 동물과도 친하게 지내본 적이 없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무서워서 만져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내가 야옹이와 친해져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주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큰 사건’이었다. 처음 야옹이 ‘등어리’를 만졌을 때 뜨끈한 체온과 수북한 털에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날이 추워졌다. 야옹이가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야옹이를 집에 데려올 엄두는 내지 못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야옹이가 이미 야생에서 삼 년 이상 살아온 걸로 보인다면서 밖의 삶에 익숙해져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아무튼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진 밤에는 자면서 잠꼬대처럼 말했다. 야옹이는 괜찮을까.
한겨울에도 초저녁 무렵 아파트 공원에서 야옹이를 자주 만났다. 야옹이는 늠름했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자신의 영토 점검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저택을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듯 엄숙한 표정이었다. 우리를 만나면 야옹이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자주 뒤를 돌아보며 야옹거리면서 앞장서서 걸었다.
야옹이가 먼저 공원 벤치에 올라가 앉는다. 같이 나란히 앉자는 뜻이구나. 옆에 앉으면 슬그머니 무릎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웅크리고 앉았다. 사람의 온기가 좋아 오토바이 발동 거는 소리를 내며 오래도록 그르렁거렸다. 급기야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가 눈을 감고 깜박 잠이 들기도 했다.
다음 봄에 못 만나면 어떻게 하지? “야옹아, 차라리 나를 따라와.” 집까지 따라오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야옹이는 언제나 자기의 영역에서 작별 인사를 마쳤다. “야옹이, 안녕,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살고 있어.” 하고 헤어질 때 단 한 번도 나를 따라오거나 애처로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역시 고양이는 고양이네.
봄이 왔다. 야옹이를 다시 만났다. 진분홍 철쭉 꽃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겨울엔 내 무릎에 앉으려 그렇게 애를 쓰더니, 봄이 되니 별로 아쉬운 게 없는 표정이다. 어떨 때는 다가와서 엉덩이를 보이며 돌아앉아 있기도 한다. 내가 부를 때마다 “야옹 야옹” 대답은 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 보면 수풀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대답만 한 적도 있다. 너와 인사는 하지만 지금 별로 같이 놀고 싶지는 않아. 이런 뜻인 듯하다.
황금털 야옹이는 아파트 내의 지형지물에 밝다. 비가 내릴 때는 어김없이 주차장 입구 지붕 아래,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 곳에 앉아 있고, 바람이 불 때는 주차장 입구 담장 위 사방의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다. 뜨거운 여름엔 나무 그늘 아래에 숨겨진 시원한 바위 위에 엎드려 있다.
야옹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는 제법 광범위하다. 새벽마다 사료와 물을 주는 어떤 분이 있고, 만나면 명랑한 인사를 건네는 아파트 공원 안의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있다. 야옹이에게 간식을 주면서 고양이를 쓰다듬고 사진을 찍는 동네 청소년들이 있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고양이와 마주쳤을 때 아무 말 없이 무심히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들이 있다. 우리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길을 걷다가 어떤 주민과 마주쳤을 때 서로에게 호의(好意)도 적의(敵意)도 드러내지 않지만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것처럼 말이다.
고양이가 사람들 사이를 무심히 터덜터덜 걸어 지나간다. 평범한 것 같지만 사실은 평범하지 않은 모습. 이 무심한 장면에 깃든 인사를 알게 되었다. “안녕? 안녕? 나도 당신도 우리도 안녕한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