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드라마 속에서는 그랬지만, 현실은 다르다. 가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어디든 갈 수 없다. 턱, 좁은 통로, 옮겨 타야 하는 좌석이 누군가의 여행을 멈추게 한다. 춘천은 장애인과 고령자, 유아차를 이용하는 가족 등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이동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관광의 문턱을 낮춰왔다. 춘천에는 강원특별자치도에서 가장 많은 9곳의 열린관광지가 있다. 전국에서도 전북 전주시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그중 한 곳인 레고랜드를 찾은 김지현 씨의 하루를 통해 열린관광지가 한 사람의 여행을 어떻게 바꾸는지 들여다본다.

9월 7일 오전 10시, 레고랜드 호텔 앞에 교통약자 이동을 지원하는 봄내콜 한 대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뇌병변장애가 있는 김지현(29) 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변옥순 활동지원사와 함께 밝은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지현 씨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설레서 잠을 못 잤어요. 너무 기대돼요.”
고객서비스센터에서 복지카드를 제시하자 일반 대기열 이용이 어려운 고객을 위한 히어로패스가 금세 발급됐다. 직원은 지현 씨가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와 탑승 방법을 하나씩 안내했다. 센터를 나서자 유아차를 미는 가족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놀이기구와 식당까지 턱 없이 이어진 길 위로 유아차와 지현 씨의 전동휠체어가 막힘없이 오갔다. 지현 씨가 이용한 장애인 화장실에는 자동문과 변기 옆 안전 손잡이가 설치돼 있었다. 지현 씨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고 했다.
이제 기다리던 놀이기구를 탈 차례. 첫 번째로 고른 것은 레고랜드 익스프레스였다. 지현 씨는 다른 좌석으로 옮겨 앉지 않고 전동휠체어에 탄 채 객차에 올랐다. 기차가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알록달록한 레고 건물과 놀이기구가 차례로 스쳐갔다. 멀리서 드래곤 코스터가 빠르게 움직이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대박이에요. 신난다!”


점심을 먹고 드래곤 코스터로 향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러 간다는 말에 지현 씨의 전동휠체어부터 빨라졌다. 서두르면 안 된다며 뒤따르던 변 활동지원사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맺혔다.


드래곤 코스터와 회전형 놀이기구 스핀짓주 마스터는 모두 휠체어에서 내려 탑승석으로 옮겨 앉아야 했다. 짐을 맡기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한 뒤 전동휠체어를 놀이기구에 최대한 가까이 붙였다. 레고랜드 안전 규정상 직원의 직접적인 신체 부축은 제한돼, 일행이 지현 씨의 양옆에서 탑승을 도왔다. 특히 좌석이 낮고 오목한 스핀짓주 마스터에서는 직원 서너 명이 특수 안장을 설치하고 안전장치를 준비했다. 뒤에서 기다리던 이용객들도 탑승이 끝날 때까지 재촉하지 않았다.
긴 준비와 달리 드래곤 코스터의 운행 시간은 3분 남짓이었다. 코스터가 성벽과 레고 모형 사이를 빠르게 달리는 동안 지현 씨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갈랐다. 놀이기구가 눈 깜짝할 사이 멈추자 지현 씨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5분 이상이면 좋겠어요. 한 번 더 타고 싶어요.”
이날 지현 씨는 전동휠체어에 탄 채 회전목마와 전망대에 올랐고, 배를 타고 물총 대결을 벌이는 스플래시 배틀에도 탑승했다. 전망대가 43m 높이로 올라가자 무섭다며 변 활동지원사의 손을 꼭 잡았다. 발아래 중도와 의암호를 바라보며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오고 싶다”며 창밖 풍경을 하나씩 가리켰다.
스플래시 배틀에서는 왼손으로 물총을 잡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야 물이 뿜어져 나가는 구조였다. 오른손 사용이 불편한 지현 씨는 물을 쏘지 못해 아쉬워했다. 누구나 같은 즐거움을 누리려면 탑승 가능 여부를 넘어 조작 방식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함을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손꼽아 기다렸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레고랜드를 나서는 지현 씨의 얼굴에는 영롱한 가을빛과 여운 가득한 미소가 오랫동안 머물렀다.

지현 씨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며 휠체어에서 탑승석으로 몸을 옮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주의를 필요로 하는지 실감했다. 휠체어는 이용자의 장애 상태와 체형에 맞게 세팅되어 있다. 익숙한 휠체어에서 내려 낯선 탑승석으로 옮겨 앉는 일은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의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카누와 레일바이크에 오를 수 있게 한 춘천 열린관광지의 변화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단차를 없애 관광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다.
“다음에는 킹카누를 타보고 싶어요.”
자신의 휠체어 그대로 물 위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지현 씨는 다음 여행지로 망설임 없이 킹카누를 꼽았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5년 열린관광지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춘천은 2019년 남이섬과 의암호 킹카누, 소양강스카이워크, 박사마을 어린이글램핑장으로 첫발을 뗐다. 2024년에는 15억 원을 들여 삼악산호수케이블카와 김유정레일바이크, 애니메이션박물관·토이로봇관을 정비했다. 2025년 김유정문학촌과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까지 더해져 강원특별자치도에서 가장 많은 9곳의 열린관광지를 갖추게 됐다.
의암호 킹카누에서는 휠체어가 물가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이어진 데크길을 따라 나루터까지 내려간 뒤 연결 통로를 건너면 자신의 휠체어를 탄 채 카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휠체어를 단단히 고정하고 ‘킹스맨’이라 불리는 가이드와 함께 물길로 나선다. 카누가 나아갈수록 삼악산과 드름산 협곡, 붕어섬 갈대숲이 가까워진다.
철길 위에서도 같은 변화가 이어진다. 김유정레일바이크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자리에서 내리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동행바이크’가 운행된다. 승강장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 경사로를 따라 바이크 안으로 들어서면 직원이 휠체어를 고정한다. 동행인이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휠체어는 그대로 옛 경춘선 철길 위를 달린다. 이어 타는 낭만열차에도 휠체어 리프트와 전용석이 마련돼 있다.



삼악산호수케이블카에서는 휠체어에 앉은 채 의암호를 건너 삼악산 정차장까지 오를 수 있다. 상부정차장에서는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해 1층 휴게/전망 공간으로 이동한다. 난간 일부는 투명유리로 바꿔 휠체어에 앉은 눈높이에서도 의암호와 춘천 시내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관광의 문턱은 계단과 턱에만 있지 않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도 작품을 보거나 들을 수 없다면 누군가의 관람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기 때문이다. 2025년 열린관광지로 조성된 김유정문학촌은 작품을 만나는 방법까지 넓혔다. 장애인주차장과 보행로 사이에 경사로를 만들고, 가파른 구간의 경사를 낮춰 손잡이를 설치했다. 울퉁불퉁한 길은 평평하게 다듬고 화장실 자동문과 휠체어 높이에 맞춘 매표 창구도 마련했다.


생가 영상과 애니메이션에는 자막과 음성을 더했고 관광 해설은 음성과 수어 영상으로도 제공한다. 김유정의 작품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과 손끝으로 읽는 점자 자료, 휠체어석을 갖춘 미디어실도 마련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 경사로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막과 음성, 점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관광지는 모든 불편이 사라졌다는 완성의 표시가 아니다. 관광지를 찾는 사람이 달라질 때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벽이 새롭게 드러난다. 길을 만들고 시설을 고친 뒤에도 실제 이용자의 경험을 계속 살펴야 하는 이유다.
흰 천과 바람만으로 어디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데크길과 리프트, 자막과 음성이 더해질 때 ‘가고 싶은 마음’은 비로소 여행이 된다. 춘천은 그 길을 아홉 곳에서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