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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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8

2026-09
#봄슐랭가이드
로컬푸드 얌빈편
낯선 이름, 아삭한 맛 얌빈을 아시나요?




감자일까, 무일까. 겉모습만 봐서는 좀처럼 정체를 짐작하기 어렵다. 연갈색 껍질을 벗기면 배처럼 하얀 속살이 드러나고,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하고 시원하다. 맛은 무와 배의 중간쯤. 생으로 먹어도 좋고 깍두기나 물김치처럼 무가 들어가는 요리에도 제법 잘 어울린다.


이 낯선 뿌리채소의 이름은 얌빈(Yam bean). ‘히카마(Jicama)’ 또는 ‘멕시코 감자’라고도 불린다. 이름에 감자가 붙지만 감자와는 다른 콩과 식물이다. 땅 위로 덩굴을 뻗어 콩과 비슷한 꼬투리를 맺고, 우리가 먹는 것은 땅속에서 둥글게 자란 덩이뿌리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아열대작물이지만, 이 낯선 작물은 춘천에서도 자라고 있다.

얌빈은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다. 원산지인 멕시코를 비롯해 베트남·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재배된다. 연중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는 한 해 여러 차례 재배가 가능하지만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한 번 농사를 짓는다.


국내에서도 2010년대 들어 여러 지역에서 시험 재배와 농가 재배가 이뤄지며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 가지 알아둘 점도 있다. 얌빈은 식물 전체를 먹는 작물이 아니다. 식용하는 부분은 땅속 덩이뿌리다. 씨앗과 잎, 꼬투리 등은 식용하지 않으며, 특히 씨앗에는 독성 성분이 있어 먹지 않아야 한다. 콩과 식물이라고 해서 콩이나 꼬투리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주의해야 한다.



아열대작물인 얌빈에게 춘천의 농사철은 길지 않다. 따뜻한 남부 지역보다 늦은 5월 중순 무렵 씨앗을 심어 한여름을 보내고, 9월이면 땅속에서 굵어진 뿌리를 캐기 시작한다. 춘천에서는 아직 재배농가를 찾기 쉽지 않다. 그중 신동 ‘강원곰탱농부’의 유규재(60) 농부는 7년째 얌빈 농사를 이어오고 있다. 8월 초, 한창 자라고 있는 얌빈을 만나러 그의 밭을 찾았다.


유 농부는 20년 넘게 천마를 비롯해 여주, 작두콩 등 다양한 약용작물을 재배해 왔다. 얌빈과의 인연은 약 7년 전 시작됐다. 춘천에서 먼저 얌빈을 재배하던 후배 농부가 “같이 한번 해보자”고 권한 것이 계기였다. 낯선 작물이었지만 약용작물을 오래 재배해 온 그는 후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수확을 앞둔 얌빈의 줄기와 잎을 살펴보는 유규재 농부


하지만 처음 시작한 얌빈 농사는 순탄치 않았다. 화천의 700평 밭에 씨앗을 심었지만 좀처럼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발아율은 고작 20% 남짓이었다. “이거 큰일 났다 싶었죠.” 다급해진 유 농부는 다시 물을 대고 씨앗을 심었다. 그렇게 재파종까지 하고서야 발아율을 40%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껍질을 벗긴 얌빈의 속살


첫 농사의 실패는 오히려 얌빈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 유 농부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발아의 핵심은 습도였다. 고구마나 다른 뿌리작물을 키우던 방식대로 접근했던 것이 문제였다. 이후에는 비가 내려 땅에 수분이 충분할 때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씌워 수분을 유지한 뒤 씨앗을 심었다. 반대로 물이 지나치게 많아도 씨앗이 상할 수 있어 초기 수분 관리가 까다롭다. 그렇게 해마다 방법을 다듬으며 20%에 불과했던 발아율을 지금은 60% 안팎까지 끌어올렸다. 그래도 발아는 여전히 가장 신경 쓰이는 순간이다. 올해는 싹이 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한 자리에 씨앗을 두 알씩 심었다. 주변에서도 얌빈 재배에 도전했다가 싹을 제대로 틔우지 못해 포기한 경우를 적지 않게 봤다고 한다. “발아만 제대로 되면 그다음부터는 잘 커요.” 얌빈 농사는 그렇게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씩 답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8월 5일, 춘천의 낮 최고기온은 39도까지 치솟았다. 가만히 서 있기조차 버거운 볕 아래 신동의 얌빈 밭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유규재 농부는 우산으로 햇볕을 가린 채 밭고랑을 오가며 언신 잎과 줄기를 살폈다. 5월에 심은 얌빈이 땅속에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려야 할 때다. “올해 날씨는 진짜 역대급이에요. 작년에는 열흘쯤 반짝 더우면 비도 오고 했는데, 올해는 계속 덥네요.” 아열대 작물에게 무더위가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지금 얌빈에게 필요한 건 비다. 땅속 덩이뿌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라 수분이 충분해야 하는데 좀처럼 비 소식이 없다. 이날 아침에도 유 농부는 밭에 물 3톤을 뿌렸다. “지금은 구근이 커져야 할 때라 비가 와야 하는데….” 농부의 손이 잎과 줄기를 훑는다. 땅 위에서는 덩굴이 무성하지만 정작 수확할 얌빈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한 달 남짓, 땅 아래에서 얼마나 몸집을 불리느냐가 올가을 농사를 좌우한다.


▲유규재 강원곰탱농부 대표


그렇게 한여름을 견디고 나면 9월부터 수확이 시작된다. 크기는 100g 남짓한 것부터 1~2kg에 이르는 것까지 제각각이다. 예전에는 큼직한 얌빈을 선호했지만 요즘 직거래 소비자들은 한 번에 먹기 좋은 300~500g 정도의 주먹만 한 크기를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유 농부가 가장 권하는 방법은 단연 생으로 먹는 것이다. “수확해서 바로 까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밭에서 갓 캔 얌빈은 껍질도 쉽게 벗겨진다. 물에 2~3분 정도 담갔다 꺼내면 바나나처럼 껍질이 잘 벗겨진다는 게 유 농부의 설명이다. 수확철이면 그 역시 매일같이 생얌빈을 즐긴다. 하지만 춘천에서 갓 수확한 얌빈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유 농부에 따르면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지면 갈변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진다. 먹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판매하기는 어렵다. 9월부터 길어야 두어 달. 가을은 춘천산 얌빈을 생과로 만날 수 있는 짧은 계절이다.


▲땅속에서 캐낸 얌빈.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지난해 유 농부는 얌빈 재배면적을 1,500평까지 늘렸다. 그전까지는 찾는 사람이 많아 물량이 부족할 정도였지만, 많이 심는다고 반드시 좋은 농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생과로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은 데다 캔 물량을 제때 모두 판매하지 못했다. 비를 맞으며 수확한 얌빈 가운데 저장 중 상하는 것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일손 부족이었다. 밭이 넓어질수록 제때 풀을 뽑고 물과 배수 상태를 살피며 작물을 돌보는 일도 버거워졌다. 저가 수입산과의 경쟁도 부담이었다. 지난해 베트남산 얌빈이 온라인에서 국내산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되면서 국내산이 가격으로 맞서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올해는 윗밭 400평, 아랫밭 150평가량으로 재배면적을 크게 줄였다. 대신 유 농부는 얼마나 많이 심느냐보다 얼마나 잘 돌볼 수 있느냐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오래 농사를 이어가기 위해, 관리할 수 있는 만큼 심고 그만큼 정성을 쏟는 농사를 택했다.



수확한 얌빈을 생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어 달. 짧은 판매기간은 농가에게도 숙제다. 강원곰탱농부는 얌빈을 환으로 가공해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춘천산 얌빈을 활용한 새로운 간식도 개발 중이다. 혈당 케어 간식 브랜드 ‘오당(O'dang)’을 운영하는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사이는 얌빈의 은은한 단맛과 아삭한 식감을 살린 ‘히카칩’을 개발하고 있다. 감자칩처럼 기름에 튀기기보다 얌빈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바삭한 식감을 내는 공법을 연구 중이며, 30g 규격으로 오는 11월 정식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원료는 강원곰탱농부와 최대 1톤 규모의 공급 협의 중이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로컬기업 육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자란 원물이 하나의 상품으로 완성돼 다시 지역의 이름을 알리는 선순환을 그리고 있다.




강원곰탱농부 ※ 강원곰탱농부: 242-0208 / 소양정길 33



※ 10월호 주제는 '사과'입니다. P.71 참여 방법 확인 후, 제철 농산물을 활용한 나만의 레시피를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