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풀과 나무가 우거진 작은 마당이 손님을 맞는다.>

아이와 물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이들과 보호자들 사이에 있는 내 모습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새 나도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소양강댐 아래 시민의숲 물놀이터에 오기 전 아이와 함께 풀내음에 들러 밥을 먹었다. 아이는 청국장과 나물을 싹싹 비웠다. 두부 반 모도 혼자 먹었고, 숭늉도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는 어린데도 청국장을 잘 먹는다며 아이를 칭찬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도, 태어난 뒤에도 나는 종종 이곳에 들러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겨 먹었다.
마적산 아래에 자리한 풀내음에 들어서면 식당보다는 오래된 집을 찾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밥을 다 먹고 나오면 문 앞 툇마루에 잠시 앉아 있곤 한다. 가만히 앉아 마당을 보고 있으면 꽃 사이로 나비가 팔랑거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 풍경 소리가 들린다. 배부른 채로 그렇게 잠시 앉아 있는 시간이 좋다.

이곳의 메뉴는 하나, 청국장이다.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단출함이 오히려 좋다. 어린 시절에는 퀴퀴한 냄새도, 그 특유의 맛도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풀내음에 처음 오고 나서부터 청국장이 먹고 싶어졌다. 어쩌면 나는 청국장이라는 음식보다 풀내음을 먼저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청국장까지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풀내음에서는 지금도 직접 청국장을 만든다. 함께 나오는 제철 나물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재미도 있다. 비빔밥 그릇을 요청하면 참기름과 고추장도 함께 내어주신다. 제철 나물과 청국장을 한데 넣어 비벼 먹으면 밥 두 공기는 뚝딱이다. 여기에 따뜻한 숭늉과 두부구이까지 먹고 나면 나 자신을 조금 아껴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풀내음은 나를 안심시켜 주는 곳이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고, 기분 좋은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곳. 다 먹고 불쑥 나온 배를 퉁퉁 치며 식당을 나오는데 오래전 함께 밥을 먹던 친구가 떠올랐다.

<오래된 나무와 생활 도구들이 식당의 시간을 보여준다.>

중학생 때부터 버스를 같이 타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같은 반이 되면서 더 가까워졌다. 나는 우두동에, 친구는 소양강댐 근처에 살았으니 하교할 때면 자연스레 같은 버스를 탔다. 빙 돌아가는 11번 버스를 타면 내가 먼저 내리고, 친구는 종점 근처에서 내렸다. 어떤 날은 이야기를 끝내는 게 아쉬워 친구네 집까지 따라가기도 했다.
친구와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아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막막함, 각자가 가진 내밀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별일 아닌 것들에 깔깔 웃었다.

<제철 나물과 청국장, 고추장을 한데 넣어 비벼 먹는 것도 풀내음을 즐기는 방법이다.>

<청국장과 곁들여 먹는 감자전.>
친구네 집은 소양강댐 닭갈비 거리에 있었다. 닭갈비집이 즐비한 거리에서 부모님은 백반집을 했다. 집까지 따라간 날이면 친구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며 버스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그 시절을 지나왔다.
이후 친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떠났고, 나는 춘천에 남았다. 친구가 서울로 간 뒤 친구네 집도 식당도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근처에서 또 하나의 식당을 자주 찾게 되었다. 풀내음이다.

2000년 문을 연 풀내음은 올해로 스물여섯 해가 되었다. 지금은 사장님이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한다. 오전에 문을 열어 오후 2시 반이면 하루 장사를 마치고, 준비한 음식이 소진되면 조금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풀내음에 갈 때마다 눈에 띄는 건 삼삼오오 모여 청국장을 먹는 어르신 손님들이다. 그 사이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다 문득 나도 이곳에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처럼 청국장이 생각나는 날이면 이곳을 찾고, 나이가 들어서도 이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지 않을까.
이제는 연락이 뜸해진 친구는 서울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십 대의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몰라 불안해했는데, 친구는 서울에서 꿈꾸던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춘천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문득 친구에게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잠시 힘을 놓을 수 있는 식당 하나가 있는지 궁금하다. 친구가 춘천에 놀러 오면 손 붙잡고 이곳에 와 밥을 먹이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십 대의 우리처럼.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삶은 요상하게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청국장을 좋아하게 될 줄도, 아이 엄마가 될 줄도 몰랐던 것처럼. 다만 살아가다 문득 허기가 질 때, 나를 좀 다독여주고 싶은 날이면 풀내음에 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오래오래.
풀내음 위치: 신북읍 상천3길 36 / 전화: 241-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