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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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7

2026-08
#누군가의춘천
춘천이 품은 삶과 사람 이야기
후평동, 골목
글 서현숙. 1972년생 작가. 『소년을 읽다』, 『변두리의 마음』, 『난처한 마음』 등을 썼다.
그림 공혜진. 자연물이나 일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다.



붉은 장미가 덩굴지어 필 즈음엔 장미 나무 한 그루 있는 집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 덩굴 장미 앞을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춰 눈길을 주고 향을 맡고, 휴대전화를 꺼내어 사진 몇 장 찍고 지나가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때도 딱 이맘때였다. 장미 나무 가진 집을 부러워할 즈음 말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 책방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현숙 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을 거예요. 골목 안에 있는데, 시간 될 때 한 번 가보세요. 서점 이름은 ‘책방 마실’이에요.”


토요일 초저녁 무렵, 책방 방문길에 나섰다. 1단지 시장 앞 건널목을 건너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서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걸었다. 보통은 이 골목을 걸을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골목 안에 특정한 목적지가 있어야 그 길로 들어설 텐데, 그럴 일이 별로 없으니 대개 큰길 옆 인도를 걷거나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때가 대부분이다.


‘책방 마실’을 검색해 보니, 후평동에서 팔호광장 쪽으로 15분 정도 골목을 걸어가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감미옥 설렁탕 뒤편에 있었고, 거기는 효자동이었다.


골목에 들어서니 대로변과 사뭇 달랐다. 큰길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르게 달려가는, 그러니까 속도와 소음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골목은 대체로 고요했다. 이따금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가기는 하지만 큰길에서처럼 빨리 달리지는 못하는지라 그것이 내는 속도와 소음이 골목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대로에서 1분만 걸어 골목에 들어서면 거기는 ‘딴 세상’이었다.


골목을 가만가만 걸었다. 주위 어른들에게 전해 듣기로는 후평동은 예전엔 주로 논과 밭이었다고 한다. 내가 걷고 있는 후평동 골목은 주공 1단지 아파트가 지어질 무렵 생겼을 거라고 하니 이 길에는 50년 정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셈이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분명 스댕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다. “치이익~~!!” 이건 압력밥솥 안에 밥이 다 되어갈 때 밥솥이 김을 내뿜는 소리다. 골목을 같이 걷던 이가 작게 말했다. “밥을 하나 봐요.” 된장찌개 끓는 냄새도 소리에 묻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 30분. 가족이 둘러 앉아 저녁 식사를 하기에 알맞은 시간이다. 식탁에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갓 지은 따끈한 밥, 깨끗하게 반짝이는 수저를 놓고 식구들이 모여 앉아 있겠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내가 사는 고층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거주 공간은 외부와 자연스럽게 단절되는 구조다. 아파트 단지 안을 걸으면서 남의 집 수저가 부딪는 앙증맞은 소리를, 밥이 다 되어가는 힘찬 소리를, 된장찌개가 끓는 구수한 냄새를 만날 일은 없다.


초여름 저녁의 후평동 골목을 걷는 일은 집과 세상과 우주의 공기가 제각각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스며드는 순간을 만나는 일이었다. 달그락 소리 하나가 이 골목을 넘어, 저 너머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저녁 식탁까지 가 닿는 것 같았다. 몸은 골목을 걷고 있지만 마음은 가족의 정겨운 저녁 식탁을 떠올렸다.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제각각 맞이하는 다양한 형태의 저녁 식사 시간을 상상했다.


짧은 골목 산책 끝에 드디어 만났다, 책방 마실. 오래된 가정 주택을 책방으로 개조한 공간이었다. 한 열 걸음 정도 되려나. 작은 뜰을 가로질러 대여섯 개의 계단을 오르니 현관이었다. 문을 잡아당겨 열었다. 예전의 가정집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정경이었다.





가운데는 거실이었다. 판매하는 책이 놓인 공간이었고, 현관 건너편에는 주방이 보였다. 방은 세 개였는데, 손님들은 방에서 구입한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먼저 눈길이 간 곳은 현관 오른쪽이었다. 테라스를 겸한 방이어서 지붕과 창 전체가 투명한 유리였다. 눈이 내리는 날, 비가 쏟아지는 날, 이 방에서 책을 읽으면 어떨까.


주방 오른쪽은 ‘초록방’이었다. 벽면이 온통 짙은 초록이었다. 깊고 짙은 분위기의 방이어서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현관 왼쪽에도 방 출입구가 두 개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면 하나의 방이었다. 이 문으로 들어가도 저 문으로 들어가도 결국 같은 방이라는 것이 손님에게는 귀여운 장난처럼 다가왔다. 책방이 내게 슬며시 농담을 건네는 듯했다.


참, 주방 옆 커튼 뒤에 비밀이 숨어 있었다. 길고 좁다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커튼을 젖히면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나왔다. 다락방에는 사장님이 소장한 만화책들과 편안한 소파가 있었다. 창밖으로 동네 오래된 집들의 기와 지붕이, 마당의 나무들이 내려다보였다. 이 방은 사장님이 자신을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비밀스럽고 안락했다.


나는 제법 오랜 해를 살았어도 처음 보는 사람과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첫날은 주로 책방 염탐 활동을 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못하고, 같이 간 사람과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점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책을 두어 권 구입하여 돌아왔다.


이후 일 년 동안 휴직을 했는데 이때 마실에 종종 혼자 갔다. 후평동에서 효자동으로 이어지는 고요한, 하지만 일상의 앙증맞은 소음이 있는 세계를 통과하면 마실에 당도했다. 마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마음은 이미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큰도로의 마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더께더께 앉은 골목의 마음이 되어 마실에 들어섰다. 번다한 세상을 잠시 저편으로 밀어둔 마음이었다. 짙은 초록방에 앉아 창밖 시멘트 담장 위로 조용히 걷던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서로 응시하는 마음. 또 테라스 자리에 앉아 지붕에 굵은 비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소리와 빗방울이 천장에 퍼지는 모양에 집중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졸저 『소년을 읽다』 원고를 다듬는 중이었고 대로의 소음과 속도를 피해 오래된 골목을 걸었다. 누군가 버렸지 싶은 대형 곰돌이 인형이 담장 밖으로 팔을 내걸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어느 집 좁은 마당에 심은 옥수수가 날마다 자라더니 어느 날은 큰 옥수수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익어가던 살구를 매일 쳐다보고 지나다니던 중 하루는 집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살구를 수확하고 있었다.


“살구가 너무 예뻐요!” 말을 건넸더니, 할머니가 “살구가 예쁘면 뭐해? 맛이 좋아야지!” 하며 주황빛 살구 서너 개를 선물로 주었다.


마실의 방 중에서, 짙은 초록방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안타깝게도 6인용 테이블만 있어서 나 혼자 두세 시간 차지하고 있기에 과분한 방이었다. 그래도 사장님은 나의 초록방 입장을 늘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손님 여럿이 오시면 꼭 말씀하세요. 제가 얼른 다른 방으로 옮길게요.” 했지만, 자리를 옮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손님 여러 명이 동시에 오는 일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장님께 미안한 일이었지만 아마 그것은 마실 사장님의 마음이자 특별한 배려였던 것 같다.


마실에 들어서면 사장님은 대개 주방 안쪽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떨 때는 혼자 책을 읽으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음, 재미있는 책인가 보구나’ 하며, 책제목을 보고 싶어 힐끗거렸다. 사장님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스콘을 맛있게 굽는 사람이었고, 또 커피를 뜨겁고 맛있게 내주는 사람이었다. 큰 감정 표현은 없어도 책방에 들어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힘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때의 마실은 이제 없다. 세상에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책방은 많지만 내 마음을 내준 책방은 흔하지 않다. 마음을 주었다는 것은 그 대상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되었다는 뜻이고, 고유한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다.


나는 한때 후평동 오랜 골목을 즐겨 걸었을 뿐인데 골목에게서 무언가를 받았다. 그것은 마음이었다. 스댕 수저 소리의 마음, 압력밥솥의 마음, 버려진 곰돌이 인형의 마음, 옥수수와 살구의 마음, 그리고 마실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