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선도 정병조 사범>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는 말은 성립이 안 됩니다. 시간을 맨 앞에 두고 하루를 짜야지, 남는 시간에 하려고 하면 평생 못 해요.” 국선도 정병조(89) 사범은 단호하게 말했다. 캐나다에서 스물다섯 해 가까이 국선도를 가르쳐온 그는 지난 4월, 어린 시절을 보낸 춘천으로 돌아와 다시 도복을 입었다.
98킬로그램, 처음 도복을 입다
그가 국선도를 처음 만난 건 1999년, 이민 간 캐나다에서였다. 당시 몸무게가 98킬로그램에 이르러 “스스로 고릴라가 서 있는 것 같았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반신반의하며 준비 운동을 따라 하던 그는 온몸이 시원하게 풀리는 감각에 놀랐다. “파스를 바른 것 같더라고요.” 그날로 도복을 사서 뛰어들었다. 코로나19로 대면 수련이 어려워지자 그는 화상 수련을 시작했다. 멈추지 않은 수련은 캐나다 곳곳으로 이어져 다섯 개의 도장을 세우고, 다섯 명의 후배 사범을 길러냈다.
제자리로 돌아온 사람
고향은 양구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춘천이다. 캐나다에서 오랜 세월 함께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그는 늦은 귀향을 결심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두고, 남은 삶은 형제들 곁에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적 회복 절차를 밟으며 춘천에 자리를 잡은 그는, 석사동에서 김지룡 태극권 본원을 운영하는 김 관장의 도움으로 수련 공간을 마련했다. 그곳에 국선도 춘천수련센터를 열고 지난 4월 첫걸음을 내딛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두고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표현했다.
일곱 살부터 백네 살까지
국선도는 단전호흡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리는 수련법이다. 격한 동작이 없어 건강이 약한 사람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지도한 이들의 나이는 일곱 살부터 백네 살까지 이른다. 부모를 따라온 일곱 살 아이는 어른들이 쩔쩔매는 동작을 척척 해내며 도리어 할머니와 아버지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백한 살에 보조기구에 의지해 찾아온 한 어르신에게는 의자를 내어 드리며 “흉내만 내보시라” 했는데, 그 어르신은 3년을 한결같이 함께하다 백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그 모습이 “의자에 앉아서도 국선도가 된다”는 깨달음을 그에게 안겼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하던 수련생들이 수련을 이어가며 몸의 변화를 체감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다고 말했다. 국선도를 처음 접한 50대 여성들도 첫날부터 “오늘 뭔가 달라진 것 같아요”라며 그날의 기분을 들려주곤 한다. 몸의 변화를 스스로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수련을 권할 때도 먼저 무료 체험을 권한다.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춘천의 등대가 되어
그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하다. 큰 도장을 세우기보다, 복지관과 마을 센터를 직접 찾아가 어르신들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찾아가는 국선도’를 펼치는 것이다.
“등대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십수 년은 더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느리게 흐르는 그의 호흡 속에서 한 사람의 오랜 여정이 조용히 춘천에 스며들고 있다.

<수련생들이 와공(臥功·누워서 하는 호흡 수련)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