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탈주민 엄광혁(38) 씨는 해솔직업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특수 가스 제조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엄광혁(38) 씨는 16년 전 혈혈단신으로 대한민국에 첫발을 디뎠다. 지금은 특수 가스 제조회사 ‘원익머트리얼즈’ 물류팀에서 자재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10년째 한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춘천 퇴계동에 있는 해솔직업사관학교(이하 ‘해솔’)에서의 시간이 있다. 그에게 해솔은 낯선 한국 사회에 관해 알려주고, 삶의 방향을 찾게 해준 출발점이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려준 곳
해솔은 북한 이탈 청소년과 북한 배경 청소년들의 자립을 이끄는 대안학교다. 학업과 직업교육, 생활지도, 심리치료, 사회 적응 훈련 등을 통해 학생들의 안정적인 사회 진출을 돕는다. 은행 부행장 출신으로 30여 년간 ‘탈북 청소년들의 아버지’를 자처한 김영우(77) 이사장이 2014년 설립했다.
엄광혁 씨는 2016년 해솔에 입학해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업과 직업훈련에 집중했다. 중국어와 영어를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먹여주고 가르쳐주고 보살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회상하며 “해솔은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곳”이라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해솔 가족들과 함께한 제주도 자전거 일주다. 사흘 동안 매일 7시간씩 페달을 밟아야 하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 김영우 이사장은 “자기 개발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했고, 이 말은 엄 씨 삶의 원동력이 됐다. 그는 꾸준히 책을 읽고 업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며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사회의 든든한 인연
해솔에서 맺은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김영우 이사장과 교사들은 정기적으로 졸업생들의 안부를 묻고 생활을 살핀다.
조용준(54) 해솔직업사관학교 교장은 “해솔은 취업을 통해 경제적·정서적 자립을 뒷받침하는 국내 유일의 교육 기관”이라며 “졸업 후에도 학생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한다”고 말했다.
졸업한 뒤 춘천에 정착한 사례도 있다. 졸업생 중 일부는 학교에 남아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로 변신했다. 후배들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북한이탈주민의 성장과 정착에 힘을 보태는 일을 하고 있다.

<해솔사관학교 동료들과 함께 떠났던 제주도 자전거 일주는 그에게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았다.>
(앞줄 맨 오른쪽 노란색 상의를 입은 사람이 엄광혁 씨)
“늘 배우고 더 성장할 것” 진심이 담긴 인사
줄곧 담담하게 답변을 이어가던 엄광혁 씨가 인터뷰를 마친 뒤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생님들의 헌신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더 깊이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늘 배우는 자세로, 더 나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해솔을 향한 감사와 자신에 대한 다짐이 온전히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