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상찬이 ‘조선 문화의 기본 조사’를 앞두고 개벽사 앞에서 찍은 옛 사진을, AI를 활용해 복원했다. 이 모습은 공지천 조각 공원 내 ‘차상찬 동상’을 제작하는 기초 자료가 됐다.>

공지천 조각 공원에는 정갈한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차상찬 선생 동상이 서 있다. 1920년대 잡지 ‘개벽’ 소속 기자로 ‘조선 문화의 기본조사’를 위해 전국을 누볐을 때 옷차림 그대로다. 발로 뛰며 민중의 삶을 취재하고, 민족의 미래가 될 어린이를 위한 글을 썼다.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이 수도’이자 독서 문화가 깃든 ‘책의 도시’ 춘천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다.
춘천이 낳은 청오 차상찬(1888~1946)은 한국 잡지의 선구자이자 전설로 꼽힌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일제강점기 3대 언론 중 하나인 개벽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목은 벨 수 있어도 입은 막을 수 없는’ 언론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날카로운 필력으로 시대정신을 파헤치고 때로는 해학과 풍자로 현실을 비판했다.

<개벽사가 발간한 대중지 ‘별건곤’과 아동지 ‘어린이’ 표지 모음. ‘어린이’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맞아 표지에 태극기를 포함한 만국기를 그리려 했지만,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일장기를 넣어야 했다.>

개벽사가 만든 ‘개벽’(1920~1926)은 일제의 검열과 압박을 견뎌 낸 민중 지향의 민족 잡지였다. 교육·농촌·노동 등 당대 사회문제에 대한 보도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도 다뤘다.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매체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학과 독서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김소월 ‘진달래꽃’,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현대에도 사랑받는 많은 시가 이 잡지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차상찬은 ‘개벽’ 창간호에 ‘경주회고’, ‘남한산성’ 등 조선의 역사를 소재로 한 한시를 게재하려 했지만, 일제에 의해 검열 삭제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중이 민족 문학과 역사, 철학, 예술 등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사를 쓰고 잡지를 만들었다. ‘개벽’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6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총독부에 의해 강제 폐간됐지만, 차상찬은 계속해서 ‘별건곤’, ‘혜성’, ‘제일선’, ‘신여성’, ‘어린이’ 등 여러 잡지의 편집과 발행을 맡았다.

<잡지 ‘개벽’은 1920년 6월 창간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6년 8월을 끝으로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 사진은 창간호와 종간호의 표지.>

그는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언제나 청년 되기를 좋아하는 까닭에 호를 청오(靑吾)라 짓고, 젊은 마음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민족 문화 운동가면서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는 등 어린이 인권 운동도 펼쳤다. “방정환이 기둥이면, 차상찬은 들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어린이들이 억압에서 벗어나 소중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을 널리 알리며 역사적 영웅의 이야기를 동화로 쓴 작품도 60여 편 발표했다.

<1926년 ‘개벽’ 강제 폐간 당시 개벽사 직원들이 항의 표현을 하고 있다. 둘째 줄 가운데 흰 두건을 쓴 사람이 차상찬이다.>

춘천에는 차상찬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두운 시절 앞서 걸으며 불을 밝혔던 선구자의 역할을 되새기고, 그 본질을 현대사회에 맞게 이어가려는 노력이다. 일제의 통치 아래 언론과 교육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깨닫고 시대정신을 소환했던 그의 행보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차상찬 읽기 시민 모임’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에 모여 차상찬이 ‘별건곤’에 남긴 글을 원문으로 읽는다. 역사, 인물, 사건, 문화 유적, 민속, 수필, 현장 취재, 인터뷰 등의 분야를 주로 다룬다. 11명의 회원이 100여 년 전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글을 윤문하고 현대어로 다시 쓰는 작업이다.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춘천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사업을 통해 ‘현대문으로 읽는 차상찬 : 각계 각 방면에서 제일 먼저 한 사람’을 펴냈다.
이건천 차상찬 읽기 시민 모임 대표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여러 방면에서 학식을 쌓으며 끊임없이 잡지 출간을 이어간 차상찬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깨닫는다”며 “앞으로도 현대어 윤문 작업과 이를 엮은 책 출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정문학촌에서는 김유정 이야기집 내 ‘차상찬 특별 전시’ 코너를 마련했다. 방문객들은 춘천을 대표하는 문필가인 김유정과 차상찬의 만남을 상상하며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김유정은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금 따는 콩밭’ 등을 개벽사 잡지에 발표하며 동향 선배인 차상찬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도보 여행은 차상찬의 흔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방법이다. 2023년 강남동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사업을 통해 곳곳에 ‘차상찬 이야기길’ 안내판을 설치했다. 공지천에 있는 동상에서부터 시작해 봉황대와 강창골길, 선돌고개를 거쳐 고향 마을로 이어지는 코스다.
공지천은 어린 차상찬의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 여름철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의암공원과 상상마당, 수변공원을 따라 걸으면, 옛 중도선착장 인근 봉황대에 도착한다. 그는 봉황대에서 바라본 춘천의 풍경을 ‘중국의 금릉에 못지않은 절경’이라며 이렇게 묘사했다. “삼악산은 푸른 하늘 밖으로 반쯤 떨어져 있고, 두 강물은 가운데가 나뉘어 백로주라네.”
여기서 베어스호텔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시내를 오갈 때 반드시 거쳐야 했던 강창골길을 지나 연안 차씨 집성촌 자라우마을에 도착한다. 2016년 이장되기 전까지 그가 잠들어있던 선돌고개를 지나면 삼천동을 거쳐 다시 공지천으로 연결된다. 강남동 주민자치회는 차상찬 이야기길뿐 아니라, ‘춘천시 주민주도 마을 사업’을 통해 올해 6월 춘천수변공원 인근 삼천동 산 3-1에 맨발 걷기용 황톳길을 조성하는 등 선양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강남동 주민자치회가 조성한 ‘차상찬 이야기길’은 차상찬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도보 여행 코스다.>

글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었던 차상찬. 그를 존경한 춘천지역 학자들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차상찬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학술 분야에서 출발한 차상찬에 대한 관심은 2024년 사단법인 차상찬기념사업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사업회는 자료 수집과 출판, 학술 연구 외에도 시민을 위한 문화 콘텐츠 제작 등에 힘쓰고 있다.
춘천시와 강원특별자치도는 지역학 연구 체계 정립을 위해 다양한 차상찬 선양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기념사업회는 자료 정리와 원문 입력 과정을 거쳐 ‘차상찬전집’ 8권과 그의 글을 엮어 현대어로 풀어 쓴 ‘차상찬현대문선집’ 2권을 출간했다. 차상찬 문화학교 시민 강연을 통해 더 많은 시민이 차상찬을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올해 가을에는 ‘개벽’ 강제 폐간 100주년을 맞아 이를 다루는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동 인권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뜻을 이어받아 그가 귀하게 여겼던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도 기획했다. 어린이날 제정 104주년을 맞은 올해 5월에는 차상찬기념사업회와 춘천YMCA, 춘천지역아동센터협의회, 춘천시청소년수련관, 춘천작은도서관협회,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강원문화예술연구소 등이 함께 서거 80주기 ‘차상찬 문화 주간’을 개최했다.
어린이들이 모여 행진하고. ‘학업 부담 완화와 아동 권리’를 주제로 선언문을 낭독하며 어린이들의 인권에 대해 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윤지훈 가마사운드 대표가 작곡하고 박신영 작가가 작사한 행진곡 ‘청오의 꿈, 우리의 날개’를 어린이 합창단이 함께 부르는 공연이 펼쳐졌다.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창작 어린이 뮤지컬 ‘독립의 빛’도 선보였다.
춘천은 ‘근대 잡지의 전설’ 차상찬을 배출한 지역답게 ‘책의 도시’로도 거듭나고 있다. 시립청소년도서관에서는 ‘차상찬 서재’를 만날 수 있다. 시립도서관은 지난해 11월 차상찬기념사업회와 함께 ‘글로 나라를 지킨 독립운동가 차상찬’의 저자 박채란 작가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도서관에 차상찬 관련 전시를 마련하고, 청오 차상찬 학생 휘호대회에서 입상한 서예 작품에 대한 전시도 진행했다. 시민들이 차상찬이 걸어온 길과 그의 정신을 이해하고, ‘어린이 수도’로서 춘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행사였다.
정현숙 (사)차상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차상찬 선생은 교육과 계몽, 언론, 강연 등을 통해 대중이 식민지 현실을 깨우치도록 하고, 여론을 형성하려 한 언론인이자 민족 문화 운동가였다”며 “어린이 수도인 춘천이 어린이가 살기 좋은 도시로 자리 잡도록, 가장 먼저 아이들을 생각했던 차상찬 선생의 뜻이 지역사회에 녹아들 수 있게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지천에 자리한 차상찬 동상. 어린이 인권 운동에 나섰던 그의 바람처럼, 춘천의 어린이들이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