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토요일 아침, 삼천동 쪽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안보회관에 들렀다. 긴 계단을 걸어 마당까지 올라가 본 것은 거의 십 년 만의 일이었다. 안보회관(춘천전적지구 기념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두 남자가 바위를 떠받치고 서 있는 자연보호헌장비도, 전시실을 갖춘 기념관도, 마당 뒤쪽의 카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안보회관은 한국 전쟁 때 치열했던 춘천 지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를 포함한 춘천 시민들은 이러한 설립 목적과는 별개로 이 곳을 자주 찾으며 살아왔다. 예전에는 요즘에 비해 놀러 갈 곳이 적어서, 산책하러 또는 바람 좀 쐬러 그렇게 일없이 들렀다.
봄이면 안보회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꽃잎을 흩날리던 벚꽃나무에 감탄하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전시된 탱크 옆 작은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먹으며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다 먹을 즈음엔 안보회관 마당에 올라섰다. 공지천, 봉의산, 저 멀리 서면까지 탁 트인 춘천 풍경을 보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는 했다.
심지어 데이트도 안보회관에서 했다.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PC통신이라는 걸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는 가정에 인터넷 망도 컴퓨터도 없었다. 전화국에서 단말기를 빌려와, 전화선으로 하이텔이나 천리안에 접속했다. 집의 전화기 코드를 뽑고 PC통신 코드를 꽂으면 “치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파란 화면이 열리면서 연결되었다.

나는 PC통신으로 뭘 대단한 걸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서 첫 온라인 소통을 경험했다. 동호회 활동은 잠깐 하다가 그만두었고, 정작 내가 좋아했던 것은 채팅이었다. 얼굴은 보지 않으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문자로 나누는 대화가 재미있어서 푹 빠졌다.

내가 채팅을 시작하면, 식구들은 경계 태세가 되었다. PC통신 접속을 하는 동안 집 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엄마도 전화를 걸어야 하고, 언니도 전화 올 곳이 있고, 오빠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내가 접속을 시작하면 다들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못하니, 식구들은 옆에 지키고 서서 그만하라고 경고하고 심지어 화를 냈다. 더구나 채팅 때문에 전화 요금이 많이 나와서 나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던 엄마의 따가운 시선을 기억하고 있다.
온라인 채팅방에서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족은 알지 못했다. “(뛰어들어 오면서) 방가방가!” 이렇게 연극 대본처럼 지문을 사용하는 스타일의 대화를 특히 좋아했다. 얼굴과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들과 문자로 나누는 대화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파란 화면으로 존재하는, 재미가 가득한 세계였다.
내가 특히 좋아한 채팅방은 20대 방이었다. 비슷한 또래들과 나누는 대화이니 말도 생각도 잘 통했다. 동일한 방에 여러 번 입장하다 보면 거듭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히페리온’ 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히페리온 씨는 그림과 클래식 음악,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춘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채팅방에서 몇 차례 우연히 마주치다가 히페리온 씨가 삐삐 번호를 알려주었다. 같은 춘천이니까 나중에 시간 되면 밥 한 번 먹자고 하면서 말이다. 히페리온 씨는 삐삐 번호를 알려주기 전에 나에게 메일을 몇 번 보내온 터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이야기, 음악 이야기를 담은 메일이었다. 왠지 분위기가 멋진 사람일 것 같았다. 히페리온 씨의 삐삐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인삿말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음, 목소리가 나름 괜찮았다. 메일에서 받은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것을 ‘번개’라고 불렀다. 히페리온 씨와 나는 ‘번개’를 하기로 했다. 그가 정한 장소는 안보회관 마당 뒤쪽에 있는 카페였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카페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안보회관 마당에 도착하니 초여름의 해가 어스름하게 지고 있었다. 카페 앞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키 큰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어, 이 사람이 맞나? 검은 티셔츠 입은 사람이 어디 또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속엣말을 하며 걸어갔다.
온라인 대화에서 알게 된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소설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의 인물을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일과 비슷하다. 요즘은 전화번호만 알면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SNS 사진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알기가 쉽다. 하지만 그때는 미리 얼굴 알기가 어려웠으니, 내 머릿속에 만들어진 이미지만을 가지고 번개를 해야 했던 거다. 현실로 튀어나온 소설의 인물이 내가 그린 이미지와 일치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히페리온 씨가 아닐 것 같았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그 사람이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아, 이 목소리는 히페리온 씨?! 삐삐 인사말에 녹음된 그 목소리였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모습과 실제 모습의 괴리로 잠시 당황했지만 카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히페리온 씨가 맞았다. 그간 채팅으로 알고 지낸 시간이 있어서 금세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말이다.
카페에서 나와 조금 더 어둑해진 안보회관 마당을 걸었다. 저녁의 안보회관 마당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히페리온 씨가 “만나면 불러드리려고 노래 한 곡을 준비해왔는데, 불러도 될까요?” 하길래 “아, 예, 준비까지 해오셨으면 부르셔야죠.” 했다.
히페리온 씨가 준비해 온 곡은 이문세의 ‘소녀’였다.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말아요~” 왠지 기분이 묘했다. 가사는 정확하게 맞는데 음정이 아주 미세하게 엇나가고 있었다. 조금씩 엇나간 음정과 완벽하게 정확한 가사로, 히페리온 씨는 후렴구 하나 놓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그는 살짝 음치였다.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끝까지 자신 있게 그것도 감정을 듬뿍 넣어 부를 수 있던 거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 오늘 만나면 끝이야.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노래를 준비해 온 정성과 완벽한 가사는 마음에 들었지만, 미세하게 어긋나는 음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히페리온 씨와의 만남에 대한 심리적 긴장과 부담이 싹 사라졌다. 뭐랄까. 다시는 안 만날 사람이라 생각하니 애써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유쾌하게 대화하고 기분 좋게 헤어지면 딱 좋겠다 싶었다.
긴 계단을 걸어 내려와서 지금은 상상마당이 된 어린이 회관 앞 강변길을 걸어 중도 선착장에 있는 카페에 갔다. 심리적 부담이 사라지고 나니, 히페리온 씨와 기분 좋게 마음껏 맥주를 마시고 오랜 친구처럼 별 수다를 다 떨었다. 직장 스트레스, 여행, 좋아하는 시인 이야기…. 맥주를 많이 마시고 배가 불룩하게 나와도, 트림이 나도 괜찮았다.

아예 안 만나려는 결심은 다소 흐지부지해져서, 동네 만화 카페에서 딱 한 번 만나 만화책을 보기는 했다. 그해가 다 끝나갈 무렵, 히페리온 씨가 별안간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지금은 사라진 ‘죽수사’라는 일식집이었는데, 그 나이(이십 대 후반)가 되도록 나는 일식 정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일식 정식에 마음이 혹하여서 죽수사에 갔다. 조명 때문이었을까. 주황색 체크 남방에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고 맞은편에 앉아 매실주를 따라주는 히페리온 씨가 조금 멋있어 보였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히페리온 씨는 25년 동안,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꾸준하게도 즐겨왔는데, 지금은 조금씩 엇나가는 음정이 거의 없다. 25년이라는 시간은 어긋난 음정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인가 보다.
지난 토요일 아침, 혼자 안보회관 계단을 내려와 상상마당에 있는 카페 ‘댄싱 카페인’까지 걸었다. 양갈래 머리를 땋고 빨간 체크무늬 점퍼 스커트에 하얀 타이즈 차림으로 어린이 회관에 사진 찍으러 왔던 초등학교 4학년의 나, 핑크 츄리닝을 입고 하하 웃으면서 가볍게 뛰듯 굴러가듯 걸어가던 다섯 살 무렵의 딸, 그리고 다섯 살 무렵의 외손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웃던 연보랏빛 여름 니트를 입었던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나의 엄마. 안보회관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나의 시간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