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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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6

2026-07
#오래오래 가게
변하지 않아서 더 반가운 춘천의 노포들
공지천엔 ‘안개 중독자’ 명동엔 ‘매짜 중독자’
변하지 않아서 더 반가운 춘천의 노포들





대화관

 🎯 위치: 금강로 62번길 15 

☎ 전화: 242-8999


이외수의 시(詩)속 ‘안개 중독자’는 아련한 아픔을 허공에 담아 공지천을 떠돌고 있지만 나는 오감으로 짜릿한 매운맛을 찾기 위해 명동 뒷골목 ‘대화관’(大華館)의 문지방을 들락거린다. 나는 ‘매짜(매운 짜장)’ 중독자다. 다만 중독의 대상을 볼 때, 영혼을 부르는 그 부옇게 떠 있는 ‘안개 중독자’에게 거무스레한 짜장면의 매큼한 냄새는 품격 떨어지는 낯선 이방인의 언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안개를 가르며 대화관으로 원초적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를 발견한다.


대화관은 춘천명동닭갈비골목 내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


대화관은 내게 ‘안개 중독자’보다 지독한 인연으로 다가왔다. 1989년 2월 21일 강원일보 입사 후 첫 신입 기자 환영식 장소가 바로 대화관이었다. 그 당시 대화관은 요선동 골목 1,2층 건물에 자리한 소위 ‘청요릿집’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넥타이 맨 군대’라는 언론사 조직에 걸맞게 혹독한 신고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냉면 대접에 고량주가 벌컥벌컥 쏟아져 내렸고, 이를 한 번에 입속으로 털어 넣어야 했다. 그런 후 10분 간격으로 두 차례 똑같은 전투가 이어졌다. 대화관 고량주의 독한 기운은 에어캡의 뽁뽁이가 한 알씩 톡톡 터지듯, 위장 세포를 터트리며 붉은 피가 맺히는 느낌을 주었다. 이처럼 대화관은 나에겐 처절한 전쟁터로 각인되었고, 그 이후 상당 기간 대화관의 악몽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화관의 매운 짜장은 지금까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넘어 중독시키기에 충분했다.


2002년 작고한 대화관 주인장 이장륭 씨는 화교 출신으로 요선동의 터줏대감이었다. 붉은색 스쿠터로 배달하는 그의 웃는 모습이 지금도 어른거린다. 이 씨는 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가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했을 때 기자들 손에 이끌려 통역을 맡았던 역사 속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화관의 매운맛은 50여 년 세월의 무게만큼 춘천에 매짜 중독자를 켜켜이 쌓아 올렸다. 요선동 시대에 이어 맏아들 내외(이개회·김차숙 부부)가 1998년 3월 명동닭갈비골목 2층 건물로 분가하며 명동 시대를 열었다. 요선동 대화관은 얼마 전, 아쉽게도 문을 닫아 이젠 매운 짜장은 온전히 이개회 씨의 손끝에서만 나온다. 매운맛의 비결은 청양 고춧가루와 베트남 고춧가루를 혼합하여 기름에 볶은 소스에 있다. 그 소스 맛이 중독에 이르는 영업비밀이다.


대화관의 묵직한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난 듯 80년대 정겨운 중국집 분위기가 펼쳐지고, 한 켠에는 매큼한 짜장 냄새가 밴 메뉴판이 눈길을 붙잡는다. “매운 짜장면 소(7,000원), 중(8,000원), 대(9,000원), 탕수육, 깐풍기, 군만두, 반찬은 셀프서비스 메뉴” 중국집에서 짜장면의 영원한 맞수 짬뽕은 아예 취급하지 않으면서 탕수육과 깐풍기, 군만두가 공짜로 무한 제공되는 이상한(?) 식당이다. 짜장면 한 그릇값으로 중식당 코스요리를 즐기는 셈이다. 손님들은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으로 빈 접시에 군만두와 깐풍기를 담는다.


창업주 이장륭 씨의 아들인 이개회 · 김차숙 부부



김차숙 씨는 단골 손님 300여 명의 취향을 모두 기억한다.







대화관은 1980년대 중국집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장사하면 대체 뭐 남는 게 있느냐"는 단골들의 걱정 어린 질문에도 김차숙 씨는 환한 미소로 답할 뿐이다. 그 미소 뒤엔 단골들과 함께 나누며 쌓아온 소중한 세월들이 녹아 있었다.


이곳 짜장의 매운 정도는 오직 퍼센트(%)로만 통용된다. 30%, 50%, 70%, 100% 숫자가 높아 질수록 매운맛도 깊어지는데 일반 짜장에 매운 소스의 배합 비율을 맞춰 그 맵기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 퍼센트 게이지는 전기자동차 충전기를 연상케 한다. 은은한 연분홍빛의 30%에서 레드존인 100%까지 강렬하게 치솟는 붉은 에너지는, 스트레스에 지친 직장인들의 세포를 깨우는 활기찬 기운으로 다가온다.


아마 공치천을 떠도는 안개 중독자도 매운 짜장을 맛보면, 가슴속 야성을 일깨워 회색빛 안개장막을 뚫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친구 세 명과 함께 매주 목요일마다 대화관을 찾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자리에 앉아도 “무엇을 드릴까요?”하는 주문단계는 생략된다. 대화관 안주인 김차숙 씨는 “100% 대, 70% 중, 50% 중, 30% 소”의 맵기와 양이 각각 다른 짜장면 4그릇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대화관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오랜 단골이기에 주문을 별도로 하지 않는다.


김차숙 씨는 단골 300 여명의 짜장면 양(대,중,소)과 매운 정도(몇 %)를 전부 기억한다. TV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AI급 기억력이다. 더욱이 점심시간에 20개가 넘는 테이블을 혼자 서빙을 하며 방안과 홀 사이를 날아다니는 듯 바삐 움직이는데, 그 엄청난 기억력이 회로를 따라 기민한 몸짓과 이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손님들은 짜장면 한 그릇 가격으로 중식 코스요리를 먹는 셈이다.


대화관의 영업시간은 당초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그 이후에는 오후 2시까지였으나 얼마 전부터 ‘재료 소진시’까지로 변경됐다. 대화관 입구 메뉴판에 적힌 영업시간 부분 위에 여러 겹 덧씌워진 흔적은 이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하루 딱 100그릇만 한정판매를 하다 보니 미리 예약해야 그나마 짜장면 면발을 비빌 행운을 얻는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무조건 쉬고, 영업시간까지도 단축한 것은 이들 부부가 점점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대화관에서는 탕수육과 깐풍기, 군만두를 무제한 제공한다.


찐 단골인 명동 독일안경원 허남경 사장은 20여 년간 거의 매일 점심을 대화관에서 해결하며 인생의 사계절을 매운 짜장과 함께 보냈다. 김차숙 씨의 기억 속 단골은 무수히 많지만, 그래도 대를 이어 대화관을 찾은 가족을 만날 때 세월의 무게를 느끼곤 한다. 연애 시절 찾아온 청춘남녀가 부부가 되어 아이와 함께 원탁에 앉았고, 세월이 흘러 품에 안겼던 그 아이가 어느덧 자신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문을 두드린다. 한 가족의 서사가 노포(老鋪)의 빛바랜 테이블 위에 오롯이 새겨지는 순간이다. 오늘도 매운 DNA를 품은 채 대화관으로 향하는 단골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정호승의 ‘짜장면을 먹으며’라는 시구가 오늘따라 코끝을 찡하게 울린다.



글 박종대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현재는<봄내>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문화계에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