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림대 정문 앞, 차 한 대 겨우 지날까 싶은 비탈진 골목 어귀에 ‘우영야식’이 있다. 간판에는 ‘낙지의 화려한 변신’이라 당당히 적혀 있지만, 메뉴판 어디에도 낙지는 없다. 이름은 분명 ‘야식집’인데, 달이 차오르기도 전인 저녁 8시면 사장은 퇴근을 서두른다. 춘천의 상징인 철판 닭갈비 대신 이곳의 주인공은 주방에서 갓 볶은 김 모락모락 나는 ‘닭갈비 우동’이다. 낙지 대신 x닭고기가 익어가고, 밤 대신 낮의 활기가 가득한 이 묘한 공간은 수십 년간 청춘들의 지지 속에 자리를 지켜왔다.

우영야식 🎯 춘천시 삭주로 64 CU 옆 골목 모퉁이 ☎ 0507-1358-9658

우영야식의 ‘우영’은 다름 아닌 사장 동석윤 씨의 아들 이름이다. 아들이 기저귀를 차던 2002년 8월, 동 사장은 어머니를 위해 이곳에 처음 식당을 차렸다. 당시 현장을 누비던 영업직 직장인이었던 그는 직장 생활을 유지하며 어머니를 돕기만 할 생각이었으나, 오픈과 동시에 몰려드는 손님들로 상황이 바뀌었다. 퇴근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와 넥타이를 풀고 앞치마를 두르던 그는 결국 본업을 내려놓고 가게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세월이 어느덧 24년. 아들은 군대를 다녀와 졸업을 앞둔 청년이 됐고, 식당은 그 세월만큼이나 단단한 골목의 이정표로 거듭났다.
처음엔 ‘야식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녁부터 새벽 3시까지 손님을 받던 영락없는 술집이었다. 하지만 춘천에 ITX 청춘 열차가 개통되면서 대학가 풍경이 급변했다. 수도권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자취생은 줄어들었고, 금요일이면 학생들이 열차를 타고 서울로 놀러 나가는 바람에 주말 야간 상권이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동 사장은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술집 대신 점심과 저녁 식사를 책임지는 지금의 운영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새벽을 지키던 공간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든든한 낮을 책임지는 밥집으로 자리 잡았다.

춘천의 상징인 철판 닭갈비 대신 주방에서 화력 좋게 볶아내는 ‘닭갈비 우동’을 고집하는 데에도 학생들을 향한 배려가 담겨 있다. 1분 1초가 아까운 학기 중 쉬는 시간, 배고픈 학생들이 고기를 굽느라 기다리는 시간 없이 10분 만에 후루룩 먹고 올라갈 수 있게 배려한 결과다. 닭갈비 우동이 처음 방문한 이들을 위한 입문용 메뉴라면, 돼지김치찜과 주물럭은 단골들만이 아는 우영야식의 진가다. 국물 없이 푹 졸여내 외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돼지김치찜과 입에 착 붙는 주물럭에는 24년 동안 주방을 지켜온 동 사장의 뚝심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에게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손님이기 이전에 아들, 딸이다. 자취방과 기숙사를 오가며 고생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만큼은 편하게 배를 채우길 바라는 마음. 그 진심이 통한 덕분인지, 졸업 후 캐나다에서 간호사가 된 단골손님이 신랑과 함께 인천공항에서 렌터카를 타고 바로 달려오기도 했다. 이 양념 맛이 그리워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닭갈비 우동을 먹으며 대학생활 고민을 나누던 학생들은 어느새 삶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귀한 인연들이 되었다.
동 사장은 특별한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보다 매일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저녁 8시에 닫는 정직한 루틴을 사랑한다. 남에게 밥을 해주고 기쁘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 오는 학생들은 참 착해요. 맛있게 먹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제가 오히려 기운을 얻죠.” 즐기는 사람에게는 병마도 비켜간다는 그의 말처럼, 볶음팬 앞에서 땀 흘리며 마주하는 일상은 그 자체로 가장 확실한 행복이자 활력이 된다.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주는 즐거운 하루가 계속되는 한, 우영야식의 불빛은 앞으로도 골목의 다정한 안부로 남을 것이다.


낙지 없는 낙지집이면 어떠며, 야식 없는 야식집이면 또 어떠랴. 춘천의 정석을 살짝 비껴간 닭갈비 우동 한 그릇은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에게 그 어떤 요리보다 든든한 위로였다.
시대가 변하고 거리의 풍경은 바뀌어도 이 골목 어귀의 모순적인 활기만큼은 그대로이길 바란다. 동 사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동력이 되어, 우영야식이 앞으로도 청춘들의 든든한 끼니를 유쾌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오래오래 책임져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동석윤 사장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정예빈 춘천 토박이. 낮에는 빵을 굽고, 저녁에는 춘천 골목 어귀에 숨은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