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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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5

2026-06
#봄내인터뷰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윤영기
효자동 소년, 할리우드에 서다
1968년생 춘천 출신. 강원사대부고·강원대 미술교육과 졸업. 극장용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 〈마법천자문〉 감독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재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미국 거주 15년째. 2026년 2월, 제53회 애니 어워즈 장편 영화 스토리보드상 수상. 한국인 최초다.

제53회 애니어워즈(Annie Awards)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 스토리보드상을 수상한 윤영기 감독(오른쪽에서 두번째)


 


“서기 2008년 7월, 인류는 전쟁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1982년 TV에서 흘러나오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의 무거운 오프닝 내레이션은 당시 아이들에게 낯선 충격을 안겼다. 밝은 주제가가 끝나자마자 펼쳐진 지구 멸망 이후의 세계. “이게 정말 만화영화야?” 어린 윤영기 역시 그렇게 화면 앞에 붙들린 아이들 중 하나였다.


효자동 주택가, 지금의 춘천경찰서 뒤편 골목이 그의 놀이터였다. 남부극장에서 친구들과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가를 떼창하고, 봉의국민학교 시절에는 16절지를 반으로 접어 손이 새까매지도록 ‘자기만의 만화책’을 그리곤 했다. 훗날 여러 번 복사되어 화질이 뭉개진 비디오테이프로 〈천공의 성 라퓨타〉를 만났을 때, 그는 “이런 게 있다고?!”라는 탄성과 함께 삶의 방향을 정했다. 그 충격은 오래 남았고, 결국 윤영기를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끌었다.



시상식장의 화려한 조명보다 간절했던 ‘아빠’의 마음

지난 2월, 애니메이션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애니어워즈’가 열린 미국 UCLA 로이스 홀.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의 관계자들과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이 모인 화려한 자리였지만, 윤영기 감독의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뿐이었다. 함께 시상식장을 찾은 고3 딸아이를 떠올리며 그는 ‘혹시 내 이름이 안 불리면 딸이 얼마나 실망할까’라는 걱정으로 마음을 졸였다.

마침내 그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 트로피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나름 좋은 아빠가 된 것 같다”는 안도감이었다. 업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러운 자리였으나, 윤 감독의 기억에는 오히려 시상식이 끝나고 먹었던 햄버거가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리셉션장에 마련된 음식이라곤 과자와 치즈 같은 간단한 주전부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축하연 대신 가족과 함께 인근의 ‘인앤아웃’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왜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큰 행사가 끝나면 인앤아웃 햄버거를 찾는지 그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겠더라”며 그는 웃었다.


치열한 할리우드 현장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들 아내 이혜정(56) 씨와 딸 윤도린(17) 양.


애니어워즈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윤영기 감독


 

공동 수상자인 안소니 홀든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발렌시아의 햇살 아래, 설계도를 그리다

윤영기 감독은 LA 도심에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25분쯤 달리면 나오는 발렌시아(Valencia)라는 동네에서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대학시절 같은 과 커플이었던 아내 이혜정 씨는 함께 미술교육과를 졸업 후 홍익대 대학원을 거쳐 미술평론가로 활동했고, 현재까지도 그에게 미술적으로 많은 영감을 주는 동반자로서 함께해오고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자연스럽고 유연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1초당 24매 이상의 그림이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완성된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캐릭터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는다. 그 치열한 공정의 맨 앞줄에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윤영기가 서 있다.


(좌) 배드가이즈2 (우) 마법천자문 포스터


스토리보드는 영화의 설계도다. 캐릭터가 어느 각도에서 뛰어오르고, 폭발의 파편이 어디로 튀어야 관객의 심박수를 높일 수 있는지를 연필 끝으로 미리 계산해 낸다. 이번 수상작 〈배드가이즈2〉에서 주인공들이 중력을 무시한 채 헬기에서 로켓으로 뛰어드는 짜릿한 액션 장면도 그의 설계도 위에서 탄생했다.

“과학 드라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니까요. 물리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더라도 관객이 ‘쿨하다’고 느끼는 그 결정적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힘이죠.” 그는 그런 순간을 만들어내는 일을 지금도 즐긴다. 기술은 매년 눈부시게 진화하지만, 수만 장의 프레임을 관통해 관객을 웃고 울리는 것은 결국 ‘이야기’라는 본질임을 그는 발렌시아의 작업실에서 매일 증명해 내고 있다.



모르니까 용감했던, 할리우드 표류기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발을 들였다가,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1995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그에게 쥐어진 건 정보도 돈도 아닌 ‘용기’뿐이었다. 다행히 산타모니카의 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취업비자를 얻으며 첫발을 뗐지만, 처음 마주한 LA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LA 대형 가전매장 한구석에는 삼성 TV 한 대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현대차는 길거리에서 싸구려 차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훗날 ‘K-콘텐츠’가 세계를 휩쓸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척박한 땅에서, 그는 3천 달러를 주고 산 10년 넘은 크라이슬러 중고차에 몸을 맡겼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백미러가 안 보일 정도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어요. 갓길에 차를 세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진땀을 흘리며 정비소를 찾아 헤맸죠. 일 년에 세 번이나 그랬습니다. 사실은 속아서 산 차였던 셈입니다.(웃음)”

지금은 웃으며 회상하지만, 서툰 영어로 매주 진행되는 스토리 피치 미팅에서 살아남는 것 또한 고장 난 엔진을 달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처럼 위태로웠다. 그때마다 그는 “아티스트는 작업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동료들의 응원을 연료 삼아 버텼다. 한국으로 돌아와 제작한 〈마법천자문〉 극장판이 흥행에 실패하며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그는 핑계를 대는 대신 자신의 한계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딸이 생긴 뒤, 다시 한번 짐을 쌌다. 한계를 인정하되 포기하지 않는 그 무모한 성실함이 그를 다시 할리우드의 심장부로 이끌었다.



 


‘쿵푸팬더4’ 스토리보드


 

캐릭터의 미세한 각도와 움직임 하나까지 정밀하게 계산해 그린 <배드가이즈2>의 스토리보드


 

‘배드가이즈2’를 함께 만든 Pierre prifel(맨 왼쪽) 감독과 동료들


 

할리우드 스튜디오 작업실에서 동료 아티스트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춘천만의 이야기’

윤영기 감독은 15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춘천시와 함께 애니메이션 관련 프로젝트를 논의한 적이 있다고 했다. 춘천의 풍경과 이야기를 활용한 콘텐츠 작업 가능성도 오갔다. 실제 협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는 지금도 춘천이 가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춘천은 이미 애니메이션과 문화 콘텐츠에 대한 역사와 기반이 있는 도시잖아요.”

1997년부터 애니메이션 도시를 표방해 온 춘천은 최근 ‘춘천 AI-VFX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며 영상 콘텐츠 산업 육성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할리우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에게 춘천 영상 산업의 미래를 묻자, 윤 감독은 기술보다 먼저 ‘이야기’의 힘을 강조했다.

“하드웨어는 사람이 떠나면 그만입니다. 기술 때문에 영상 산업이 막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춘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게 우선입니다.”

그는 거대한 자본이나 화려한 시설보다 지역만의 색깔을 가진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은 규모라도 꾸준히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환경, 그리고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스템이 결국 산업의 힘이 된다는 뜻이다. AI 기술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놀라운 기술적 발전은 더 나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화가들이 사라질 것이라 두려워했지만 결국 회화가 살아남았듯, 기술은 시대마다 바뀌어도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효자동 소년의 마음으로

언젠가 고향 춘천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고 싶다는 그는, 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애니메이션에 더 이상 지리적 한계는 없으니 외부에서 정답을 찾으려 시간을 허비하지 마세요. 어쩌면 답은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린 시절 학교와 관공서에서 보던 ‘봄내’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리는 것이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며 웃어 보인 윤영기 감독. 1982년, 코난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사라졌던 효자동의 빈 골목. TV 앞에 모여 앉아 꿈을 꾸던 그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장면을 그리고 있다.


 

소니 픽처스(SONY Pictures Animation) 사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