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자교~남춘천교 일대. 공지천은 대룡산에서 발원해 춘천 시내를 가로질러 북한강까지 이어진다.
북한강으로 향하는 물길
공지천은 동내면 대룡산에서 발원해 시가지를 관통한다. 북한강의 지류인 한강수계 지방 2급 하천이다. 신촌천과 학곡천이 만나는 석사동 태백교 인근에서 공지천이 출발한다. 물길은 서북쪽으로 흐르며 후하천과 만나고, 석사교 근처에서 퇴계천과 합류한다. 이후 다시 약사천과 합쳐져 북한강으로 향한다. 공지천교를 경계로 공지천과 북한강이 나뉜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시민들 사이에서 공지천의 공간적 범위에 관한 인식에 다소 차이가 존재했다. 일부는 상·중류 구간을 ‘석사천’으로 따로 구분해 부르기도 했고, 조각공원 근처의 좁은 범위에 대해서만 ‘공지천’으로 인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천 유역의 경계나 공식 지명과는 상관없이 관습 속에 자리한 개념이다. 실제 공지천은 석사동에서 삼천동까지 춘천 시내 5.6㎞를 가로지른다.
공지천 지명 유래
공지천은 ‘신이 지은 물’이라는 뜻의 ‘곰짓내’에서 왔다. 곰은 고대에 신(神)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여기선 물길이 시작되는 대룡산의 산신을 가리킨다. 먼 옛날 공지천은 식수원이자 빨래터였다. 생활감 넘치는 이 공간을 춘천 사람들은 ‘신이 내린 고마운 물’이라 불렀다.
효자동·퇴계동의 과거와 오늘. 춘천시가 장기간에 걸쳐 공간 조성에나선 결과,
공지천은 일상 여가 장소로 자리 잡았다. (사진 춘천디지털기록관)
택지 개발이 한창이던 석사동·퇴계동 일대.
2000년대 초반 도시 확장과 수변 공간에 관한 관심이 맞물리며 시민들의 인식 속에
공지천 대신 석사천’이라는 새로운 지명이 자리잡았다. (사진 춘천디지털기록관)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반 석사동·퇴계동을 중심으로 한 도시 구조 확장과 서울 청계천 복원 사업 이후 확대된 수변 공간에 관한 관심이 ‘석사천’이라는 새로운 지명을 만들어냈다고 봤다. 1990년대까지 공지천은 잦은 범람과 옹벽 설치 등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2004년 공지천 친환경 조성 사업을 계기로 친수 공간으로의 기능을 강화하며 일상과 가까워졌다. 비슷한 시기 택지개발로 이 일대 정주 인구가 늘어나며 ‘석사천’이라는 새로운 하천이 인식 속에 자리 잡았다는 해석이다.
북한강과 이어지는 하류 구간을 특정해 공지천이라고 호명하는 관습도 남았다.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은 “시외버스터미널이 근화동에 있던 시절, 인근 공지천 유원지는 청춘남녀의 데이트 명소였다”며 “당시 ‘공지천에 가자’는 말은 ‘유원지에서 놀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식이 남아 지금도 공지천 조각공원과 의암호 일대를 ‘공지천’으로 칭하는 관습이 계속되고 있다.

공지천에 얽힌 퇴계 이황 설화
퇴계 이황이 춘천 외갓집에 머물 때, 머슴에게 소여물을 썰어 냇가에 버리라고 했다. 개울에 뿌린 여물은 이내 물고기로 변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공자(孔子)를 따르는 유학의 거목인 퇴계 선생이 만든 물고기라며 ‘공지어(孔之漁)’라고 불렀다. 퇴계 선생이 실제 춘천에 은거한 적은 없기에 그를 추앙한 후대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겠지만, 공지천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읽을 수 있는 설화다.
공지천 일러스트 해설
춘천 시내를 가로지르는 공지천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하천 위를 지나는 철도교 포함 13개의 교량 사이로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고, 걷고 뛰며 자전거를 타는 시민의 일상을 담아냈다.
벤치에 앉은 이는 찬찬히 책을 읽는다. 유치원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식물을 관찰하고 곤충을 채집한다. 농구 코트와 배드민턴장에선 더위를 잊은 청년들이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인다.
물가에 사는 수양버들은 긴 가지를 드리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산책로 주변으로 계절에 따라 튤립, 버베나 등 다양한 꽃이 시민을 기다린다. 쾌적한 하천을 만들기 위해 쓰레기를 줍고 잔디를 심는 숨은 일꾼도 함께 그려냈다.
강변엔 달뿌리풀이 군락을 이루고, 물이끼 ‘청태’가 강바닥을 초록빛으로 물들인다. 옴개구리는 물과 뭍을 오간다. 물속에는 모래무지와 피라미 등 물고기가 헤엄친다. 고고한 백로는 수면을 유유히 떠다니는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가족을 지켜보며 홀로 먹이를 찾는다.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하천 생태계.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수달도 공지천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지천에 초여름을 알리는 금계국이 찾아왔다.
시민 품으로 돌아온 생태하천
도시화 이전, 남춘천교 상류에선 아이들이 멱을 감았다. 하천 폭도 지금보다 2배 이상 넓었고 수심도 깊었다. 풍부한 수량과 깨끗한 수질, 생태 다양성이 넘치던 하천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도시 개발로 생기를 잃었다. 생활 하수와 공장·축산 폐수 문제가 심각했고, 쓰레기와 부유물이 떠다녔다.
2010년대 이후 공지천은 생활 속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끊임없는 관리로 현재 1~2등급 수질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에는 생태하천 복원 사업 우수 하천으로 선정됐다. 춘천시는 하수관거를 정비하고, 퇴계농공단지 입구에 오염원 여과 시설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벌여왔다. 하천 공급관로, 저류지 등 관리 시설도 확충했다. 특히 비점오염원 저감 사업이 효과를 발휘해 악취가 크게 줄었다.
공지천을 지키는 흰뺨검둥오리 가족
이제 공지천은 녹지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춘천시는 2020년 온의교~호반교 구간에 휴게 쉼터를, 2021년엔 수해로 인해 퇴적된 토사로 태백교~거두교 구간 산책로를 조성했다. 녹지를 가까이서 즐기는 생활 양식이 주목받으면서, 우안길(4.85㎞)과 좌안길(5.03㎞)을 합쳐 10㎞에 육박하는 공지천 산책로는 춘천을 대표하는 자연 친화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생태 학습장이자, 도심 열기를 낮추는 숲길, 야외 운동장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거두교 부근. 하천 양쪽으로 10㎞에 육박하는 우안길(4.85㎞)·좌안길(5.03㎞)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공지천은 도시의 대기 순환을 유도하는 ‘도시바람길숲’의 역할을 한다.
도시를 숨 쉬게 하는 자연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하천 생태계를 마주한다. 살아있는 생태 교육의 장이다. 산책로 주변으로 아까시나무·느티나무·왕벚나무 등 가로수가 다양하고, 강가에는 수양버들이 휘날린다. 공지천은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닌 들풀의 천국이다. 애기똥풀, 바보여뀌, 고마리, 소리쟁이, 쇠별꽃, 명아주, 꽃다지, 개소시랑개비, 달맞이꽃, 익모초, 돼지풀, 지느러미엉겅퀴, 개망초, 서양민들레, 닭의장풀 등이 분포한다.
자라 같은 파충류와 개구리, 도롱뇽 등 양서류도 관찰할 수 있다. 풍부한 먹거리 덕에 새들도 공지천을 찾아 날아든다.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가 하천 주변 덤불에 자주 나타난다. 딱새와 직박구리는 제방의 가로수를 제집처럼 드나든다.
공지천은 춘천의 쾌적한 공기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도시바람길숲’은 외곽 산림에서 만들어지는 맑고 찬 공기를 도심으로 끌어들이고, 대기 순환을 통해 미세먼지와 뜨거운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퇴계교~태백교 구간은 선형 녹지에 펼쳐진 ‘연결숲’이다.

올해 4월 공지천 산책로는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했다. 지난해 11월 심어둔 튤립 알뿌리가 봄을 맞아 만개했다. 생활권 안에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며 시민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춘천시는 여름철을 맞아 개화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보랏빛 버베나를 심는 등 공지천을 중심으로 다양한 계절 꽃을 선보일 계획이다.
철저한 관리 덕에 공지천은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녹조현상으로 오해받는 물이끼 ‘청태’는 하천 바닥에 붙어있는 부착 조류(藻類)로, 수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수중 산소를 빼앗아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녹조와는 다르다.

공지천에서는 다양한 계절 꽃을 만날 수 있다.
건강 지킴이 ‘야외 운동장’
선선한 초여름 밤, 시민들이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한다.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러너가 길을 앞지른다. 바로 옆 자전거 도로에선 헬멧을 단단히 쓴 라이더가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공지천은 상류부터 하류까지 평탄하게 이어져 걷고 달리기 좋다. 운동을 끝내고 쾌적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온의교와 퇴계교, 효자교~공지교 농구 코트 근처 등 3곳에 흙먼지 털이기와 음수대도 설치했다. 산책로 옆엔 자전거 도로가 마련돼 공지천 물길 따라 북한강 라이딩에 나서기 편리하다.
춘천시보건소는 시민들이 하천 산책로를 활용해 걷기 운동에 나서도록 ‘걸어봄, 내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워크온 앱 설치 후 걷기 목표를 수행하면 춘천사랑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공지천 위 13개 교량은 하천을 따라 걷는 시민들이 위치를 파악하는 중요한 이정표로 기능한다. 춘천시는 교량 디자인 개선 사업을 통해 하천에 감성 디자인을 접목하고, 다리 주변을 보행 친화적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통행량이 많은 공지천교와 구름다리교, 호반교는 내년 말까지, 추가 2개 교량은 2028년까지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2024년 석사교에 투명 LED 전광판 미디어글라스를 설치한 이후 이 일대가 야간 산책 명소로 이름을 얻은 만큼, 더 많은 시민이 공지천을 찾아 걷기 운동에 나설 전망이다.

초여름은 공지천에서 산책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공지천은 시민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야외 운동장이다.

안전을 위해 자전거는 반드시 전용 도로에서 주행해야 한다.
일상에 더 가까워지는 공지천
춘천시는 공지천을 일상과 더 가까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 ‘마스터플랜 기본계획’을 세웠다. 체육·예술·편의시설을 확충해 환경·안전·문화적 측면에서 하천을 다채롭게 활용하도록 공간을 재편한다.
공지천 이용 에티켓
더 쾌적한 공지천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야영·취사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반려동물 동반 시에는 목줄을 착용해야 하며 배변 시 뒤처리도 깔끔히 해야 한다. 골프 연습이나 오토바이 출입 등 타인의 안전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를 해선 안된다. 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도보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분리해 통행해야 한다. 비나 눈이 올 때는 미끄러울 수 있어 징검다리 이용도 제한된다.

춘천시는 지난해 공지천 일대에서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를 개최했다.
교량 구간마다 공간 활용을 세분화한다. 호반교~효자교는 문화·공연 중심지로 소규모 야외 공연장과 영화 상영, 전시·플리마켓 공간이 들어선다. 여가·레저를 즐길 수 있는 효자교~석사교에는 조깅, 자전거·킥보드 전용도로와 농구·족구·배드민턴 등 체육 시설 및 놀이터를 마련한다. 석사교~태백교에는 벤치와 그늘막, 경관 조명, 피크닉 공간을 설치해 힐링 쉼터를 만들 계획이다. 자연형 습지가 펼쳐진 태백교 일대는 생태·환경 교육의 장으로 거듭난다. 새 관찰대와 안내판을 설치해 어린이들이 하천 생태계를 학습하는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지천은 감성 넘치는 예술 공간이자 지역 축제의 성지로 재탄생할 전망이다. 계절마다 다양한 콘텐츠가 시민을 기다린다. 8~10월 야외 영화 상영회, 9월 봄내 맨발 걷기 페스타 및 대한민국 독서대전, 10월에는 춘천커피축제와 재즈페스타가 감성을 채운다. 지난해 로컬 축제의 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는 올해 10월 온의교~공지교~효자교 사이에서 열린다. 주말마다 찾아오는 벼룩시장과 예술 공연은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한다. 여기에 주변 관광지를 연계한 여행 코스를 개발해, 공지천을 춘천의 떠오르는 관광 명소로 성장케 한다는 계획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공지천 활용 마스터플랜을 통해 하천 공간의 기능을 확대하고 시민 편의를 증진할 계획”이라며 “지역 축제와 연계해 공지천을 무대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시민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겠다”고 말했다.


어스름이 내린 석사교 일대. 밤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