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물살을 가른 시민들은 릴레이를 통해 모금액 1,000만원을 마련했다.
물살 위에 쌓이는 나눔
오전 6시 55분, 석사동 춘천국민체육센터 수영장.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긴장감이 스친다. 하지만 이날은 개인 기록을 겨루는 날이 아니다. 오전 7시, 출발 신호와 함께 물을 가를 때마다 어딘가에선 어려운 이웃의 밥상이 채워진다.
올해 2월 춘천시수영연맹이 개최한 ‘제11회 릴레이 자선 수영 행사’ 풍경이다. 이날 지역 동호인과 시민 300여 명이 모여 9시간 동안 레인을 채웠다. 100m 완주할 때마다 1,000원씩 기부금을 적립해 1,062만 2,000원의 성금을 모았다. 연맹은 지역 소외 계층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금 전액을 춘천시에 전달했다.
이 행사의 특별함은 운동이 곧 나눔이 된다는 점이다. 속도는 달라도 방향은 같다. 건강을 위한 움직임이 누군가의 한 끼를 돕는 힘이 됐다. 춘천의 수영인들은 올해도 물살을 가르며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릴레이 자선 수영 행사는 2013년 한 수영클럽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운동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이 계기였다. 이후 참가자가 늘고 규모가 커지면서 춘천시수영연맹이 행사 주관을 맡아 이어왔다. 이제는 매년 2월이면 수영계 모두가 기다리는 지역 대표 나눔 행사로 자리 잡았다.
기부금 액수보다 중요한 건 몸을 움직여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해 160만 원으로 시작한 성금은 2023년 760만 원, 2024년 800만 원, 지난해 933만 원에 이어 올해 1,000만 원을 넘겼다. 11년간 자선 행사로 마련한 누적 기부금이 6,000만 원에 달한다. 그동안 쌀 나누기, 춘천연탄은행, 강원대학교병원 등 다양한 기부처에 성금을 전달했다.
레인을 비우지 않는 사람들
김경준 춘천시수영연맹 회장은 릴레이 자선 행사의 가장 큰 가치를 ‘함께하는 실천’에서 찾았다. 회원뿐 아니라 이웃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누군가의 활약보다도, 레인을 비우지 않기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킨 사람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릴레이는 오전 7시부터 9시간 동안 이어졌다. 누군가 100m를 완주하고 벽에 손을 짚으면 곧바로 다음 참가자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김 회장은 연맹 회원들과 동호인들, 그리고 이른 새벽부터 수영장을 찾은 어르신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10년 넘게 나눔이 이어질 수 있었다.
수영은 언뜻 혼자 하는 운동처럼 보이지만, 실제 수영장에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연속을 마주한다. 재활을 위해 시작한 사람, 성인이 되어 처음 수영을 배운 사람 등 수영장을 찾은 동기도 다양하다. 강습과 연습을 거치며 자신감을 얻고 같은 시간대에 만나는 사람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김 회장은 “수영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함께할 때 더 재미있고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운동하기 싫은 날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수영장으로 발길이 향한다. 이번 자선 행사는 수영의 이런 공동체성을 보여줬다. 물속에서 이어진 호흡이 이웃을 향한 온기로 번진 셈이다.
오랜 기간 릴레이를 함께 만든 사람들도 있다. 수영 경력 20년의 윤건기(47) 씨는 릴레이 자선 대회와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넘었다. 마침 매일 운동하던 수영장에서 행사가 열려 동호회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서, 자선 수영대회 참가는 윤씨 가족 모두가 기다리는 연중행사가 됐다. 그는 “100m에 1,000원, 2,000원씩 작은 나눔을 하다 보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나눔의 의미를 알게 됐다”며 “가족과 함께 추억을 쌓으며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어린이가 수영을 마친 뒤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남녀노소 시민들이 릴레이 수영에 동참해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작은 물살이 만드는 큰 울림
춘천은 탄탄한 수영 인프라를 갖췄다.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춘천국민체육센터, 근로자종합복지관 수영장 등 공공 체육시설에서 초보자를 위한 강습과 수준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성인도 부담 없이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수영은 몸에 부담이 적으면서도 전신을 고르게 쓰는 운동이다. 체력 관리뿐 아니라 재활과 건강 회복을 위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관절에 부담이 비교적 적어 중장년층에게도 꾸준히 사랑받는다.
춘천시수영연맹은 2월 릴레이 자선 수영 행사, 5월 춘천소양강배 마스터즈 수영대회, 9월 춘천시수영연맹 회장배 수영대회 등을 이어가며 지역 수영 문화를 튼튼히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도록 돕고 있다.
한 사람이 헤엄친 100m는 짧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물살이 모여 누군가의 한 끼가 되고,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손길이 됐다. 릴레이 자선 행사는 스포츠가 개인의 건강 이상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함께 물을 가르며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춘천 수영이 만들어낸 가장 깊은 울림이다.
이른 시간 레인 앞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물속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모두의 물살이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이웃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조금 더 따뜻한 춘천을 위해. 그렇게 또 한 번, 춘천의 수영장에는 기록보다 오래 남는 장면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