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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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4

2026-05
#누군가의춘천
춘천이 품은 삶과 사람 이야기
중도, 그 여름밤
글 서현숙. 1972년생 작가. 『소년을 읽다』, 『변두리의 마음』, 『난처한 마음』 등을 썼다.
그림 공혜진. 자연물이나 일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다.





사람의 마음 안에 ‘기억의 방’이 있다면 내 마음에는 ‘중도’라는 방이 있다. ‘중도’는 춘천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북한강 섬 중 하나다. 지금은 하중도에 레고랜드가 들어섰고, 춘천대교가 생긴 이후 배를 타지 않고 차량으로 갈 수 있는 섬이 되었다.


내 기억의 방에 있는 중도는 현재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배를 타야 중도에 갈 수 있었다. 삼천동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10분 정도 북한강을 가로질러 중도에 닿았다. 차를 가지고 중도에 가야 할 때는 근화동 주민 선착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중도로 향하는 배를 탔을 때 내 마음은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빈틈없이 들뜨고 설렜다. 일상을 떠나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중도는 춘천 사람들의 소풍 장소였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끝나고 꽃 피고, 나무의 연두 이파리들이 퍼질 즈음이면 도시락을 싸서 중도에 갔다. 도시락 메뉴는 김밥, 컵라면, 치킨이나 과일 등이었다. 중도에는 변변한 식당이 없고 간이 매점만 있던 터라 도시락은 필수였다.





중도는 정말 별것이 없는 섬이었다. 대단한 휴게 시설도 멋진 건물도 없었다. 대신 넓은 풀밭과 풀밭 군데군데에 키 크고 곧은 나무들이 있었다. 소풍 온 사람들은 각각 나무를 하나씩 차지하고 돗자리를 펼쳐 앉았다. 나무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싸 온 음식을 나눠 먹다가 태양의 운동에 따라 그늘의 방향과 크기가 달라지면 돗자리를 조금씩 옮기면서 쉬었다. 나무 한 그루는 딱 한 팀을 위한 그늘을 마련해주었던 거다. 중도에 소풍 온 팀의 수가 궁금하다면 섬에 존재하는 나무의 그루 수를 헤아리면 되지 않았을까.


춘천에서 성장한 나는 때마다 중도에 갔다. 중·고등학교 때 중도로 학교 소풍이나 야영을 갔고, 대학 1학년 때는 같은 과 동기들과 놀러 가서 북한강의 새벽 물안개를 목격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딸이 생긴 후에도 중도에 종종 갔다. 그날은 초여름이었다. 넓게 펼쳐진 숲에 있는 오두막을 일박 예약했던 지라 배에 자동차를 싣고 중도로 향했다. 오후부터 비 소식이 예보되어 조마조마했는데 도착하니 비가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건물도 없는 섬에 비가 쏟아지니, 사람들은 하나둘 섬을 빠져나갔다. 어둑해졌을 때는 주위에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딸은 일곱 살이었는데 집에 가자고 울상이었다. 철수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지막 배를 놓쳐 버렸다.

빗소리가 요란했다. 오두막 앞에 작은 빨래 건조대 하나 놓을 만큼 비좁은 베란다가 있었는데 거기에 세 식구가 궁색하게 모여 앉아 돼지고기를 구웠다. 남편과 나는 소주도 몇 잔 했던 것 같다. 고기 굽기가 끝났을 무렵 주위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밤이 조금 깊어지자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별이 보였다. 사람들이 다 떠났는지 밖은 완벽하게 고요했다. 중도에 우리 세 사람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었다. 배가 두둑하고 비도 그쳤으니 우리는 산책을 나섰다. 풀밭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을 걸으니 발을 딛을 때마다 빗물을 밟는 소리가 “찹찹” 났다. 주위가 고요해서였겠지? 소리가 더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귀에 감겼다. 찹찹찹.


누가 먼저였는지는 잊었지만 우리는 신발을 벗어 손에 쥐고 걸었다. 맨발에 물이 닿으니 시원하고 부드러웠다. 딸은 어른들보다 더 신이 났다. 물이 고여 있는 곳만 골라 첨벙첨벙 뛰듯 걸으며 “하하” 웃었다. 물에 젖은 숲 냄새와 흙냄새, 비 냄새가 공기 중에 꽉 찼다. 급기야 딸은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숲속을 걸어요~” 이런 가사의 동요였다. 우리는 진짜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섬에서 맨발로 나무 사이를 걷고 있었다. 목소리를 낮출 필요도 없어서 세 사람 모두 “우하하” 크게 웃으면서 걸었다. 홀가분한 마음, 신나는 마음이 그 밤의 전부였다.


살아오면서 종종 그 여름밤을 떠올렸다. 최근 내 마음의 ‘중도’라는 방을 열어보니 그 여름밤은 중도라는 방의 심장이 되어 뛰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어린이는 이제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딸은 그 밤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직접 물어본 적은 없다. 요즘 딸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느라 열심히, 애를 쓰고 있다. 그 모습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그 밤, 맨발로 물을 첨벙이며 웃던 어린이가 지금 어디쯤 걷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한다. 딸의 걸음에 그 밤의 물기가 남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