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물면 시원하다. 아삭한 소리, 입안에 퍼지는 찬 기운, 코끝에 닿는 풋내.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텃밭의 오이를 두고 "덩굴줄기 마디마디 달려 사랑스럽고,
위 아래 할 것 없이 별처럼 달려있다" 고 노래했다. 그때도 지금도 오이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사랑받는 채소다. 춘천의 5월, 오이가 식탁에 오른다.


춘천 전역에서 370여 농가가 오이를 재배한다. 그중 남산면은 춘천 전체 오이 재배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표 산지다. 같은 춘천이지만 남산면의 아침은 더 차갑다. 시내보다 기온이 낮고, 4월 초에도 영하를 기록하는 날이 많다. 매실이 냉해를 입고, 목련이 채 피기도 전에 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난방 없이 자연 온도에 의존하는 농가들은 그래서 4월 중순을 넘겨야 모종을 심는다. 늦게 심는 만큼 더 단단하게 자란다. 5월에서 10월까지, 일교차가 큰 남산면의 땅에서 자란 오이는 단맛이 깊고 아삭함이 오래 간다.

올봄 남산면 하우스에 심은 품종은 '굿모닝'이다. 2023년 대통령상을 받은 백다다기 오이로, 색깔과 상품성, 생산성이 뛰어난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오이는 색이 가격을 결정한다. 머리 부분의 푸른빛이 선명할수록 신선도가 좋고 값도 잘 받는다. 정식 뒤 45일, 춘천에서는 빠르면 5월부터 하우스 오이를 맛볼 수 있다. 7월 초 수확이 끝나면 한 달 남짓 공백이 생기고, 그 뒤를 노지 오이가 잇는다. 노지에서는 여름 오이 품종인 '써머킹'을 심는다. 5월 중순에서 6월 초 사이에 심은 이 오이는 한여름에 본격적으로 출하된다. 오이가 줄어드는 그 틈에, 남산면 노지 오이는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내가 키운 오이가 제일 맛있어요." 김일상 남산·남면 오이품목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묻자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반찬 해 먹을 시간이 없어요."
4월 16일 오전 9시, 김 회장은 이웃 농가 김재풍 씨의 오이 모종 심는 날 품앗이를 나갔다. 김 회장네는 노지 오이를 짓고 있어, 이날은 남의 밭을 도우며 봄 농사의 시작을 함께했다. 남면과 남산면에서 오이 농사를 짓는 농가는 80여 곳. 평균 재배 경력만 22년에 이른다. 예전에는 마을별로 흩어져 움직이던 농가들이 이제는 품목회장 아래 모여 함께 배우고 함께 선별한다. 김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건 교육과 선별이었다.
"여기 농사는 여기 농부들이 제일 잘 안다"는 말처럼, 교육도 이 동네 사정에 맞춰 진행된다. 어떤 비료를 쓸지,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을 쓸지, 해마다 바뀌는 날씨에 어떻게 대응할지까지 농가들이 직접 나서서 알려준다. 이론보다 중요한 건 이 땅에서 실제로 통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2월 농한기마다 농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올해 농사에서 무엇을 더 잘할지 함께 연구한다.

그 결과가 선별에서 드러난다. 굵기가 머리부터 끝까지 일정하고 곧은 것, 우툴두툴한 돌기가 선명한 것, 색이 고운 것, 좋은 오이를 고르는 눈을 농가 전체가 함께 키웠다. 오이가 쓴맛을 낼 때는 날씨가 지나치게 덥거나 물이 부족할 때다. 그럴 때 농부는 물을 더 부지런히 준다. 남산면 오이는 시세보다 박스당 5~6천 원을 더 받으며, 가락동 시장에서도 제값을 받는 오이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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