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조 주한가나대사는 3월 25일 춘천시를 찾아 국제 교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춘천에서 태어나 가나에서 자란,
한국말 잘하는 최고조 인사드립니다.”
한국인의 얼굴을 한 아프리카 사람이 화려한 나비넥타이를 매고 강당에 들어섰다. 춘천에서 태어나 가나에서 자란 최고조(49) 주한가나대사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어 돌아왔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국가에서 외국계 출신이 대사로 임명된 사례는 그가 처음이다. 중학생 때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떠난 뒤, 34년 만의 금의환향이다.
최고조 대사의 가나 현지 중학교 재학 시절
신북읍 샘밭교회 앞. 가운데가 최 대사다.
무대에 오른 최고조 대사가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이 나오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가나요!” 상품으로 건 ‘가나에서 온 초콜릿’을 가지려는 학생들의 힘찬 답변이 쏟아졌다. 최 대사는 3월 25일 춘천유봉여자고등학교를 찾아 학생 200여 명을 만났다. 고향 후배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는 자리였다.
그는 1977년 춘천 신북읍에서 태어났다. 소양강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샘밭에서 열리던 마을 잔치, 지금은 유명 카페가 된 소나무 숲의 풍경이 유년 시절을 채웠다. 태어났을 때 이름은 최승업, 가나인이 된 지금은 최고조(Kojo Choi)로 살아간다. ‘고조’는 가나어로 월요일에 태어난 남자아이라는 의미다. 최씨 성이 더해져 한국에선 ‘최고조(最高潮)’의 의미도 갖게 됐다.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992년 가나로 이주했고, 현지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가나인으로 성장했다. 가나국립대학교 재학 시절엔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기계를 들여와 디지털 실사 프린팅 업체를 차렸다. 이후 통신 업체 ‘나나텔레콤’을 창업하고, 2015년 가나로 귀화한 후에는 핀테크 기업 ‘페이스위치’를 설립해 디지털 결제 플랫폼을 보급했다. 가나 경제계에 이름을 알리자,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이 그를 주한 대사로 임명했다.

최고조 대사는 유봉여고를 찾아 학생들과 진솔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최 대사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진솔하게 전하며,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현지에서 적응하기 위해 힘썼던 시절을 언급하며 자신이 가나에서 삶의 전환점을 만났듯이 “인생을 바꿀 자신의 ‘가나’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탁구 경기 승리를 계기로 현지 친구들의 인정을 받았던 사연을 소개하면서는 “사소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성실히 해낼 때 기회가 온다”고 강조했다.
이번 특강은 춘천시 ‘공공외교 아카데미’를 통해 성사됐다. 주한 외국 공관 대사를 초빙해 지역 청소년이 국제적 감각을 갖고, 세계로 시야를 확장하도록 돕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지난해는 에밀리아 가토(Emilia Gatto) 주한이탈리아대사가 춘천을 찾아 ‘한국과 이탈리아의 관계’에 대해 강의했다.
최고조 대사의 강연을 들은 황류아(19·유봉여고 3학년) 학생은 “내가 좋아하는 진로를 택할지, 다른 사람들이 권하는 걸 고를지 고민이 많았는데, 강연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가나’를 꼭 찾겠다”고 눈을 빛냈다.

가나산 면직물 ‘켄테’로 만든 화려한 나비넥타이는 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가나 한국인’인 그를 설명할 때 켄테(Kente)로 만든 나비넥타이를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나비넥타이는 한국인의 얼굴을 가지고 가나를 대표해야 하는 최 대사가 ‘패션 외교’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켄테는 아프리카의 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내는 면직물이다. 거미줄의 복잡한 디자인에서 따와 다양한 패턴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나인들은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 켄테로 만든 옷을 입는다.
인종은 바꿀 수 없기에, 한국에서 가나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과 가나를 잇는 그의 행보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양국이 함께 미래를 꿈꾸는 날갯짓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최 대사는 “독특한 무늬로 존재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양국을 잇는 나비의 날갯짓을 상징하는 의미로 나비넥타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은 기업가로 활약하던 그를 주한대사로 발탁했다.
최 대사는 가나를 대표해 외교 협상에 나선다.
2027년은 대한민국과 가나가 수교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한국과 가나를 잇는 상징성을 가진 최 대사의 행보에 더 무게감이 실리는 이유다. 산업 구조 전환 속 두 국가의 협업이 더 중요해졌다. 한국에선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을 ‘원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지만, 가나는 팽창하는 인구와 도시화를 바탕으로 한 성장 동력을 가진 나라다. 서아프리카의 강국으로 제도적 안정에서 오는 정책 추진력도 갖췄다.
최 대사는 “새로운 산업 환경에서 한국과 가나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며 “가나는 정부 주도로 코딩 전문 인력 100만 명 육성에 나섰다”고 밝혔다. 가나는 중위 연령이 19세인 데다, 20세 미만이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젊은 나라’다. 덕분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빠르게 혁신을 끌어낼 역량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글로벌 공급사슬과 자유 무역 시장에서 선전했던 대한민국의 수출 주도 경제가 AI의 발달과 저출산, 고령화, 인건비 부담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한민국 산업이 마주한 대내외 환경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가나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창 시절, 최 대사가 아프리카 지도에서 가나를 가리키고 있다. ‘가나 한국인’으로 성장한 그는 한국에서 가나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활약 중이다.
‘춘천의 아들’ 최 대사는 춘천과 가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길 꿈꾼다. 지역 단위 협력 방안으로 그는 춘천과 호호에(Hohoe) 시의 자매결연을 제안했다. 호호에는 가나에서도 관광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생태 관광지가 많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관광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인 볼타호(Lake Volta)가 인접해 호반의 도시인 춘천과 닮았다.
최고조 대사는 “비슷한 환경을 가진 두 도시가 협력한다면 자연, 관광, 사람을 통해 유의미한 협력을 꾀할 수 있다”며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연결고리가 춘천과 호호에, 한국과 가나를 잇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