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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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3

2026-04
#오래오래 가게
변하지 않아서 더 반가운 춘천의 노포들
40년 요선동 골목 지켜온 ‘평창이모집’
변하지 않아서 더 반가운 춘천의 노포들

 



요선동 뒷골목을 걷다 보면 반짝이는 간판들 사이, 소담히 자리 잡은 ‘평창이모집’을 만날 수 있다.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빛줄기에 이끌려 조심스레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너 평 남짓한 공간에 탁자 두 개와 의자가 빼곡히 놓여있다. 저녁이 되면 삼삼오오 손님들의 온기로 금세 가득찬다. 서로 익숙한 얼굴의 단골들부터, 여기저기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여행자들까지 좁은 자리에 어깨와 등을 맞대고 앉아 잔을 부딪친다. 요리조리 넉살좋은 이모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덧 옆자리 손님과도 자연스레 몇 마디를 나누게 되는 분위기가 요즘답지 않게 정겹다.


1970년대 말, 평창에서 결혼해 춘천으로 온 유영희(74) 씨는 야식 장사를 하며 살림을 꾸렸다. ‘먹고사는 일’이 곧 ‘먹여 살리는 일’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요선 시장 골목에 자리를 잡으며 지금의 평창이모집이 됐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골목의 구실은 점점 바뀌어갔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은 여전한 듯하다. 늦은 밤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마침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음 날을 버틸 힘이 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평창이모집  🎯위치 춘천시 서부대성로 44번길 5-3  전화 255-6329 / 010-8798-6329)



녹두빈대떡, 칼국수, 동태찌개 말고도 간판에 쓰인 ‘안주 일체’ 의미는 제법 넉넉하다. ‘이민수 씨(임연수어 구이)’는 메뉴판엔 없어도 단골들 사이에서는 “오늘 이민수 씨 돼요?” 하고 먼저 묻는 인기 메뉴다. 고소한 들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두부구이는 시원한 막걸리와 최고의 조합을 이룬다. 안주가 떨어져 갈 즈음 따끈한 보리밥에 밑반찬으로 나왔던 묵은지와 무생채, 콩나물을 올리고 이모표 ‘빠글장’ 한 큰술 을 더하면 더할 나위 없는 밥도둑이 완성된다.





계절이 바뀌면 부엌도 제철이 된다. 봄이면 향긋한 두릅이나 달래같은 나물이 밑 반찬을 채우고,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땐 미나리를 곁들이기도 한다. 겨울이면 연탄 난로 위 커다란 주전자로 끓인 파뿌리차로 속을 데우고, 알이 가득 찬 도루묵찌개를 뜨끈하게 맛볼 수도 있다. 십수 년을 함께한 무쇠 철판과 수만 번의 칼질로 깊게 패 인 나무 도마, “이모 외에는 열 수 없다”는 만능 냉장고만 있으면 이모의 부엌에서는 무엇이든 뚝딱 완성된다. “저희도 그거 주세요!” 힐끔 옆 테이블에서 풍겨오는 냄새 와 손님들의 감탄에 어느새 새로운 안주를 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선동 골목을 40여 년 지켜온 ‘평창이모’ 유영희 씨

 



시인, 화가, 음악가, 배우들까지 춘천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다는 가게 곳곳에는 그들의 애정 어린 흔적이 역력하다. 가게를 향한 헌정의 시와 그림, 벽에 달린 거울에 빼곡히 꽂힌 명함들이 이곳을 아끼는 단골들의 든든한 마음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최근에는 한 손님으로부터 ‘평창이모집’ 이야기를 AI로 만든 노래가 담긴 라디오를 선물 받기도 했단다.


나에게도 이 가게는 춘천에서의 고향 같은 곳이다. 2020년 요선동에 처음 자리 잡았던 춘천 새내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집의 최연소 단골이다. 종종 타지에 서 바쁜 일정을 마치고 춘천에 돌아와 이모의 손맛으로 뱃속을 가득 채우면 괜스레 헛헛했던 마음까지 풀리곤 했다. 잠시 뜸했더라도 다시 찾는 날에는 서로 “보고 싶었어!” 외치는 반가운 마음이 오간다.


단골이 된다는 것은 오랜 호흡으로 기꺼이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는 일이라는 걸 이 골목에서 배운다. 요선(要仙), 신선을 부른다는 동네 이름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평창이모집은 배와 마음이 고픈 이들을 불러 모은다. 오늘 밤도 요선동 골목 에서 40여 년의 시간을 지켜낸 ‘평창이모’와 함께 이곳을 찾은 온갖 사람들의 이야 기가 켜켜이 쌓여갈 것이다.



박선정    영화제는 본업, 디자인은 생업인 문어발 노동자. 2023년부터 춘천영화제 홍보마케팅실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