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423

2026-04
#누군가의춘천
춘천이 품은 삶과 사람 이야기
산유화, 당신
글 서현숙. 1972년생 작가. 『소년을 읽다』, 『변두리의 마음』, 『난처한 마음』 등을 썼다.
그림 공혜진. 자연물이나 일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다.



강대 병원(강원대학교 병원) 앞을 일부러 피해 다니던 시기가 몇 년 있었다. 춘천에서 어린이, 청소년, 성인 시절을 모두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특정 병원 앞을 지나면서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고, 몸이 아파 잠시 입원했던 이를 기억하기도 하고, 또 저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이를 아프게 떠올리기도 하는 그런 일. 강대 병원 이 눈에 보이면 감정이 요동쳐서 되도록 그 앞을 지나다니지 않으려고 애썼다. 


몇 년의 시간이 족히 지나 간신히 강대 병원 앞을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병원 앞의 해장국집이 여전히 있는지 늘 확인하면서 지나갔다. 몇 달 전에 보니, 그 해장국집 자리에 다른 영업 매장이 생겼다. 하긴 그 음식점에서 콩나물국밥을 앞에 두고 먹지 못하던 새벽이 10년도 더 지난 일이 아니던가. 나는 국밥을 앞에 둔 채 연실 눈물을 닦아내느라 바빴고, 그런 나를 보고 이모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숙아, 그만 울어. 너무 울면 너희 엄마 편하게 못 떠난다.” 


엄마는 오랜 기간을 아프지도 못했다. 병 진단을 받고 반년도 채 못 앓았다. 엄마가 조금씩 아프면서 자식들의 따뜻한 돌봄도 받고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병 투정도 부렸더라면, 차라리 엄마가 오래 병치레를 해서 내가 지겨운 마음이라도 들 틈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철없는 마음인 줄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엄마는 벼락같이 병 진단을 받고 벼락같이 앓다가 내 곁을 떠났다.


그 새벽은 내 엄마가 강대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시간이 었다. 그날 밤은 몹시 길었고 무척 고통스러웠다. 전날,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가족에게 말씀해 주셨고 우리 가족은 모임이 있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병실에 모였다. 하지만 나는 시어머니가 보온 도시락에 정성스럽게 담아주신 흰 미음을 병원에 가지고 갔다. 아마 의사 선생님의 말이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엄마가 흰 미음을 몇 숟가락 드시고 기운을 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결국 그 밤은, 지금도 무덤덤한 마음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밤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엄마는 그 밤이 다 지나가기 전에, 새벽이 다가오기 직전에 숨을 놓았다.


마지막으로 매만진 엄마의 손, 그 모습과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생 일하던 엄마 손은 곱다기보다 마디가 굵었다. 살집이 없어서 손등의 뼈가 그대로 만져졌고 손등 위로 핏줄이 툭툭 튀어나 온 손이었다. “엄마, 엄마”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르겠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불렀다. 이제 엄마라는 실체를 내 앞에 두고 부를수 없다는 것을 예감한 사람처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컷 불러야 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많이 불렀다. “엄마, 엄마” 사랑한다는 말도 나를 기억하라는 말도 다시 만나자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 엄마”만 불렀고 새벽이 다가올 무렵 우리는 결국 작별했다.






이모가 우리 형제를 데리고 병원 앞에 자리한 24시간 운영하는 해장국집에 갔다. 장례식장이 차려지기까지 시간과 절차가 필요했을 거다. 그보다 이모는 엄마 잃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독여주고 싶었으리라. 동생을 잃은 이모도 많이 슬펐을텐데 말이다. “뜨신 국물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 그래야 덜 추워.” 삼월 말 이었지만 새벽이 다가오는 깊은 밤은 추웠다. 마음은 더 추워서 이가 덜덜 떨렸다.


장례식장이 준비되고 우리 가족은 검은 상복을 입었다.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오빠의 작은 딸이 장례식장에 와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할머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슬픔을 아는 걸까. 엉엉 우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더 슬퍼 다들 또 눈물을 닦았다.


언니와 오빠는 장례식 준비로 분주했지만 막내인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집의 막내는 원래 그런 존재다. 식구들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 구석에 가만히 있거나 딴 짓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존재. 조문객을 맞는 곳 안쪽에 작은 방이 있었다. 방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창문 이 있길래 별 생각 없이 일어나 창을 드르륵 열었다. 깜짝 놀랐다. 창문을 여니 샛노란 세상이었다. 바로 코앞에 노란 산유화가 가득 피어 있었다. 엄마 없는 깜깜한 세상에 등불을 밝힌 듯한 산유화 라니…….


봄이 오면, 노란 산유화를 보면 이제 나는 단 한 사람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