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물이 움트는 봄이 왔다.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채소를 맛볼 시간이다. 주인공은 4월에 제철인 아스파라거스. 계절의 순리대로 성실하게 매일 5cm씩 쑥쑥 자라는 중이다.
아스파라거스는 "채소의 왕"으로 불린다. 유럽에선 2000년 전부터 약으로 썼다. 아미노산 중 하나인 아스파라간산 함량이 높아 특유의 시원한 맛이 난다. 숙취 해소에 좋으며 이뇨작용으로 요산 배출을 촉진한다. 대륙의 동쪽 끝으로 건너온 채소는 이제 춘천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자리 잡았다.
수확한 지 오래되면 아삭한 맛이 사라지고 쓴맛이 난다. 유통 과정이 짧은 국산, 그중에서도 가까운 지역에서 수확한 식재료를 맛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춘천에선 2012년 서면 일대 농가에서 재배를 시작했다. 15년 가까이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다년생 작물이어서 수익성이 좋다.
아스파라거스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겨울마다 강추위가 찾아오는 춘천에서 키우기에 적합하다. 지금은 재배하는 농가만 32곳, 재배면적은 16.6ha에 달한다. 특히 서면은 토질 특성상 수분 함량이 많은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기 좋다.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수명이 짧아지는데, 물 빠짐이 좋은 토양이 과습 피해를 방지한다. 큰 일교차 속에서 아스파라거스는 더 굵어지고 단맛은 강해진다.
아스파라거스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콩나물과 비슷한 향이 나 채소를 활용하는 그 어떤 요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대중적으로는 볶아서 스테이크와 곁들여 먹는다. 카스텔라, 에그타르트를 만들 때 베이킹 재료로도 사용한다.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카레나 짜장밥을 만들 때도 쓴다. 특유의 아삭한 식감 덕에 제육볶음과도 잘 어울린다.

춘천산 아스파라거스는 일본과 홍콩 가정의 식탁에도 오른다. 춘천아스파라거스연구회가 수출을 주도한다. 동남아시아에선 아열대 기후 특성상 가느다란 아스파라거스만 난다. 덕분에 현지에선 굵고 당도 높은 춘천산이 인기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아삭하고 포만감을 준다.
관세청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춘천시 아스파라거스 수출 규모는 6192kg, 4만1000 달러(한화 약 6000만원)로 양구·화천에 이어 전국 3위에 올랐다. 국내 아스파라거스 수출의 24%를 차지한다. 시범으로 나가던 물량이 2024년부터 3배 가까이 늘어났다. 해외 시장에서 가치가 오르며 농가들이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 수출 단가는 2023년 kg당 7000원에서 지난해 9400원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홍종용(71) 응달농장 대표는 "수출 시장을 점검하러 말레이시아 현지 마트로 답사를 갔더니, 4~5호 크기의 얇은 태국산 제품만 있더라"며 "크기가 크고 굵은 춘천산 농산물이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농가에선 신규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기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그린 아스파라거스와 다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재배를 시작했다. 햇빛을 차단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길러 맛이 부드럽고 향이 좋다. 봄철 전국적으로 그린 아스파라거스 물량이 쏟아지는 시기에,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로 차별화하려는 시도다.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는 화이트가 그린에 비해 3~4배 높은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귀한 취급을 받는다.


홍종용 응달농장 대표는 올해부터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재배에 나섰다. 40년 넘게 서면 신매리 밭을 일궈온 베테랑 농사꾼의 새로운 도전이다. 홍 대표는 2010년대 초반, 생소했던 아스파라거스를 춘천에서 처음 심은 선도 농가 중 하나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방식으로 재배한다.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현재는 전량 수출을 목적으로 시도하고 있지만, 추후 대량 재배에 성공하면 몇 년 뒤 춘천의 밥상에서도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자주 만나게 될 수 있다.
응달농장은 전국에서 가장 빨리 아스파라거스를 출하하는 농장이다. 2월부터 수확을 시작해, 다른 주산지에 비해 2개월가량 빠르다. 다른 지역에서 본격 출하가 시작되는 3월 말 전까지, 응달농장의 아스파라거스는 '귀한 몸' 대접을 받는다.
조기 출하가 가능한 것은 홍 대표의 기술력과 성실함 덕분이다. 그에겐 겨울 농한기가 없다. 이듬해 2월 출하를 위해 수확이 끝난 10월부터 다음을 준비한다. 지난해 12월부터 덩굴을 걷어내고 내부를 정돈한 다음, 1월부터 '터널'을 만든다. 터널 재배는 작물 바로 위에 비닐과 에어캡으로 3중 보호막을 만들어 한겨울에도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홍종용(71) 응달농장 대표
홍 대표는 1300평(약 4300㎡) 규모의 하우스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한다. 수확 시기에도 다른 손을 빌리지 않고 아내 이정희(66) 씨와 단둘이 작업한다. 성장이 가장 활발한 때엔 하루 60~100kg씩 수확량이 쏟아진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농촌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서면을 통합하는 작목반을 만들었다. 지금도 신매2리 이장을 맡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성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홍 대표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완전히 빛을 차단한 채로 재배해야 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해외 시장에서 춘천산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자리를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