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검색 닫기

VOL.422

2026-03
#누군가의춘천 #봄내를품다
효자동 병아리
글 서현숙. 1972년생 작가. 『소년을 읽다』, 『변두리의 마음』, 『난처한 마음』 등을 썼다. 그림 공혜진. 자연물이나 일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다.




열한 살의 봄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춘천초등학교 후문으로 나오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삐약삐약삐약” 담벼락 아래에 어떤 아주머니가 열어 놓은 종이박스 안에 노랗고 뽀송한 솜뭉치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병아리였다. 조그맣고 귀여운 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한참 보다가 가방에 꿍쳐놓은 비상금을 꺼내 두 마리를 사버리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종이 봉지에 병아리 두 마리를 넣고 내가 들고 있던 실내화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어주셨다. 실내화 주머니를 품에 안고 집(효자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가 움직이자 병아리들이 쉴 새 없이 삐약거렸다. “삐약삐약삐약~” 버스 안의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이게 무슨 소리야?” 했다. “제 병아리들이에요!” 자랑하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는 행복하고도 민망하여 얼굴에서 열만 훅훅 났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집을 향해 냅다 뛰어가고 싶었지만 내 병아리들이 어지러울까봐 실내화 주머니를 품에 살포시 안고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조심조심 걸었다. ‘엄마가 좋아하겠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엄마, 나 병아리 사왔어!” 크게 말했는데, 엄마의 표정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아휴, 이딴 걸 왜 사왔어?”

“예쁘잖아.

“몸 약한 병아리들만 골라 와서 애들한테 파는 거야. 오래 못 살고 금세 죽을 텐데.”

병아리들은 집에 오자마자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마치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같아서 울상이 되었다.

병아리들은 엄마가 마련해 준 집(라면 박스 같은 종이 상자)에 서 효자동 생활을 시작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아리들이어서 그런지 애틋하고 가엾게 여겨졌다. 엄마의 선고와는 달리 병아리 들은 금세 죽지는 않았다. 종이 상자 안에서 모이와 물을 열심히 쪼아 먹고 최선을 다해 삐약거렸다. 식구들이 “아휴, 시끄러워.”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 병아리들이 이상해! 몸에 이상한 게 났어!” 엄마가 와서 보더니 “닭이 되려나보네.”라고 말했다. 나는 한 번 더 소스라쳤다. 열한 살 어린이는 병아리의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다. 병아리는 마냥 병아리일 줄 알았다.


병아리는 하루가 다르게 외양이 망측해져갔다. 꽁지에 하얀 닭 털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온몸에 병아리 털과 닭털이 혼재하는 과도기적 존재가 되어갔다. 병아리는 닭이 되었다.

병아리 아니 닭들은 더 이상 종이 박스 안에 살 수 없는 거물이 되어 거실이 아닌 마당에서 살게 되었다. 더 이상 삐약거리지 않았고, 꾸꾸꾸~ 이런 소리를 내면서 마당을 마구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똥을 쌌다.



여름 방학에 외삼촌의 딸 나영이가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마당 장독대 계단으로 뛰어올라가더니, 장독대에서 담장 밖으로 펄쩍 뛰어내렸다. 그때, 멀쩡한 대문을 놔두고 담장을 이용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나영이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닭들이었다.


바로 그 다음날 아침, 닭 두 마리가 사라졌다. 대문은 잠겨있었는데 말이다. 동네를 샅샅이 뒤지며 닭을 찾다가 강둑(지금의 석사천변)에 이르니 꾸꾸 소리가 들렸다. 닭들은 남의 밭에 들어가서 푸성귀들을 쪼아 먹으면서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양몰이 소녀처럼 닭을 몰아 집으로 귀환하였다.


이후 닭 실종 사건은 매일 아침 일어났다. 드디어 목격자가 나타났다. 아빠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보니 닭들이 장독대로 올라 가서 담장 밖으로 뛰어내리더라.” 닭들은 나영이의 행동을 보고 배운 거다. ‘닭대가리’라는 말은 틀렸다. 닭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지녔다.


서리가 내리도록, 하루도 빠짐없는 나의 거룩한 일과가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리나케 강변으로 나가 닭들을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였다. 닭 두 마리는 첫 눈이 내리도록 우리와 함께 살았다. ‘우리닭’이 되었다.

한번은 엄마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휴, 닭들을 언제까지 키워야 하나.” 사실 닭 모이를 주고 마당에 흩어진 닭똥을 치우는 건 늘 엄마의 몫이었고, 닭을 반려동물처럼 마냥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당에 닭들이 없었다. 강변에도 없었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숙아, 닭을 마냥 키울 수는 없잖아. 아빠가 오늘 동네 닭집에 닭들을 그냥 주고 오려고 갔는데, 닭 종자 자체가 몸집이 작아서 살도 없는데다가 닭치고는 엄청 늙어서 맛없을 거라고 하면서 안 받더래. 그래서 아빠가 그 집에서 파는 닭을 한 마리 사고, 우리 닭 들을 맡기고 왔대.”


부엌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닭이 ‘우리 닭’은 아니었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 언니와 오빠는 안방 밥상에 모여 앉아 닭고기를 먹었고, 나는 내 방에서 울었다.


병아리는 그저 병아리로 내 곁에 마냥 있을 줄 알았다. 병아리의 최후는 동네 닭집이었지만 내 마음은 기억하고 있다. 실내화 주머니에 담겨 삐약거리던 귀엽고 약한 생명체에 대해 품었던 애틋함을, 새벽마다 석사천변으로 달려가 남의 밭에서 아침 식사와 산책을 즐기던 닭을 몰아 돌아오는 일과에 느꼈던 대단한 사명감을, 그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춘천 효자동에 아로새겨진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