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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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2

2026-03
#최돈선의 발견 #봄내를품다
최돈선의 발견
그 집은 녹두란 말이 없어도 녹두꽃 내음이 난다
시인 최돈선이 바라본 마을 그리고 사람 이야기



- 그 집으로 가는 길 

그제 눈이 내린 후, 나는 그 집으로 간다.

기와지붕에도 주위 마당에도 아직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뒤쪽으로 나지막한 동산이 있는데, 키 큰 잎갈나무 사이 사이 파란 하늘이 들어차 있다. 나란히 도열한 잎갈나무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만 같다. 집 앞으론 소나무 숲이 살짝 그 집을 가려서 어떤 비밀이 간직된 집인 듯 여겨진다.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상황은 반전된다. 그 집 한쪽에 걸린 간판이 그 정체를 드러내니까. 

삼계탕. 

그러나 그 집에 닿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 지만 그 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숨겨진 터널을 지나야 한다.길은 동네 사람들만이 통행하는 길인 모양이다. 정말 잘도 숨겨져 있다. 그러니까 초행인 사람이 내비게이션 없이 가기엔 아주 곤란한 길이다. 춘천 시내에서 팔미리 교차로에 닿으면 정면으로 삼계탕집이 보인다. 왼쪽 순환대로 쪽으로 90도 회전한 다음 1분여 쯤 서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칫하면 지나칠 수도 있으니까. 단 1분이다. 명심하시라. 오른쪽으로 급히 360도 비잉 회전 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곧 뜨게 된다. 


수문장인 듯한 커다란 느티나무 저쪽 고요한 집. 당신 앞에 불쑥 해자垓子 같은 도랑이 눈에 띌 것이다. 그 도랑을 건너야 비로소 그 집 마당에 닿게 된다.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는 온통 훈민정음체의 석보상절로 도배되어 있다. 손님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은 거실을 포함해 세 군데뿐이다. 거실과 면한 주방에서 삼계탕이 만들어진다. 전형적인 가정집이다. 주인 김영희 씨는 혼자서 음식과 상차림을 한다. 메뉴는 단출하다. 삼계탕과 백숙과 닭볶음탕이 전부 다. 하지만 백숙과 닭볶음탕은 사전 예약만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오직 삼계탕뿐이다. 그것도 녹두!가 들어간 녹두삼계탕.


두 개의 방엔 가족인 듯한 손님들이 조용히 식사 중이다. 나는 삼계탕을 시켜놓고 거실 식탁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이 집 간판에도 메뉴에도 녹두란 글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집의 주메뉴는 녹두삼계탕이다. 달리 무슨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이 집에선 ‘으레 녹두가 들어 가야 삼계탕 아닌가?’ 하는 것만 같다. 녹두는 녹색의 콩이다. 몸의 독성을 해독하고 불편한 속을 편케 해주는 효능이 있다. 그런 정도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시루 같은 용기에 녹두를 담아 물을 주어보라. 그러면 콩나물 대가리처럼 숙주 싹이 쏙쏙 머리를 내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변비에 아주 좋은 나물이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의미의 녹두를 떠올린다.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이 연상작용이 거실 벽으로 눈길을 주자 섬광처럼 눈에 들어오는 세 글자.


김경달 초상(후손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재현한 그림)



- 김경달

1895년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었다. 10월 8일 새벽 4시 거사명은 ‘여우사냥’이었다. 국모가 살해된 이 사건으로 왜적에 대한 분노가 전국적으로 들끓었다. 그해 11 월 15일 윤홍집 친일내각은 성인 남성 모두에게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을 내렸다. 국모 시해와 유교적 전통을 말살하려는 이 단발령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춘천과 제천에서 첫 깃발을 든 의병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그 중심에 남면 가정리 출신 유인석이 있었다. 가정 리 출신의 김경달도 춘천의 의병장 이소응이 지휘하는 의진 義鎭에 참여하여 포수로 활동했다. 포수는 총을 잘 쏘고 게릴라전에 능한 정예병을 말하는데, 당시 왜군이나 경군(친일정부군)이 제일 두려워했다고 한다. 김경달은 경기도 양평 잠강 전투에서 경군에 의해 사로잡혔다. 그는 경군의 회유를 뿌리치고 의연한 자세로 맞서 총살당하였다. 그의 나이 47세였고, 1896년 음2월 8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30년 전 일이다.  


- 녹두삼계탕 

나는 삼계탕을 가져온 주인에게 물었다. 

“김경달 이분이 주인과 어떤 관계예요?” 

“제 할아버지세요.” 

“아! 의병의 후손이군요. 아버지께서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셨네요?” 

“네. 지금 호국원에 안장되어 계세요.” 

담담하나, 그 표정에서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녹두삼계탕. 

전봉준의 녹두꽃 동요가 퍼뜩 떠올랐다. 



거실에 걸려있는 할아버지 ‘김경달’의 훈장증(건국훈장 애국장)과 공로장, 아버지 ‘김은복’이 받은 참전용사증서 



고모네삼계탕 주인 김영희 씨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거운 녹두삼계탕에 숟갈을 담가 한술 떴다. 입김을 호호 불어 입에 넣었다.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육질이 쫄깃했다. 열심히 먹었다. 닭 속엔 인삼 하나가 유일했다. 대추도 밤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녹두만이 찹쌀과 어울려 진득이 내 혀에 감겼다.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요란하지 않은 이 녹두가 주는 삼계탕 맛은 아는 사람만 알아서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럴 거 같았다. 반찬도 단순했다. 총각무 한 보시기, 양파, 간장에 절인 고추, 갓김치가 전부였건만 맛있고 흡족했다. 고향의 푸근한 정이 느껴졌다. 모두 주인이 텃밭에서 기른 것들이었다. 게다가 나는 덤으로 김경달의 의로운 선열의 정신과 녹두꽃 내음도 맡았다. 녹두장군 전봉준과 춘천의병 김경달이 달처럼 떠올랐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전봉준보다 여섯 살 위인 김경달은 포수로 열심히 싸우다 의롭게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고 한다. 

“나는 나라의 대의를 위해 싸웠다. 어서 죽여다오.” 김경달이 죽은 지 일 년 뒤에 전봉준이 사형을 당한다. 어떤 사람이 전봉준에게, 일본공사에게 목숨을 살려달라는 요청을 해보라 권했다고 한다.  



가정리 의병 김경달 묘와 비석 




그러자 전봉준은 

“나는 죽음을 기다린 지 오래다.죽음을 구걸하다니!” 

두 분의 기개가 아직도 우리의 심장을 쩌릿하게 관통하고 있는 듯싶다.



고모네 삼계탕 주메뉴 ‘녹두삼계탕’과 밑반찬들 



- 손녀의 시

그런데 문간에 걸린 액자 하나가 내 눈에 발견되었다. 

시화였다. 제목은 ‘독립운동가 김경달’인데 긴 시였다. 

이름이 김영순으로 되어 있었다. 

주인이 곁에서 말했다. 

“제 언니예요.” 

“시인인가요?” 

“네. 멋진 분이죠.” 

“지금 여기 사세요?”

“아뇨? 서울 사세요.” 

할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할아버지 장군에 대한 존경과 우러름이 깃든 시였다. 

나중에 나는 김영순 시인(김주은으로 필명을 바꿨다고 했다)과 통화했다. 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마음속에 꼭꼭 담아둔 시인의 목소리는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이 집은 녹두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녹두꽃 향이 난다. 녹두꽃이 떨어져도 녹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녹색으로 풋풋이 살아서 숨 쉰다.

이것이 바로 이 집 <고모네삼계탕>이 간직한 거룩한 신비로움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