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6일 오전 10시,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 대룡산 활공장.
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할퀸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산비탈에는 눈과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얼어붙은 땅을 디딜 때마다 바짝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불은 없다. 연기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무전기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1조 출발합니다.”
빨간 방염복을 입은 대원들이 호스를 어깨에 걸치고 경사를 오른다.
앞선 대원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속도를 조절하고,
뒤에서는 여럿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호스를 정리해 올린다.
다른 한 조는 등짐펌프와 갈퀴를 챙겨 뒤따른다.
헬기 진화 이후 남을 잔불을 정리하고,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방화선 을 만드는 역할이다.
불은 없지만, 상황은 실제와 다르지 않다.
* 방화선 : 불이 더 번지지 않도록, 미리 잡목과 낙엽을 제거해 만들어 두는 경계선
불이 없는데도 훈련을 멈추지 않는 이유
이날은 춘천시 산림과에서 운영하는 산림재난대응단의 정기 산불 진화 훈련 날이었다. 대룡산에 모인 대원은 모두 24명. 방염모와 방화복, 안전화를 갖춰 입은 이들은 12명씩 두 개 조로 나누어 미리 짠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였다. 동선도, 역할도 실제 산불현장과 다르지 않았다.
잠시 훈련이 멈춘 사이, 조장 정상호(64) 씨가 대원들 앞에 섰다. 18년째 산을 오르내린 그는 거친 숨을 고르며 말했다. “건조할 땐 하루에 네 번씩 출동한 적도 있어요. 초동 진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알게 됐죠.”
산불은 초반 30분이 승부다. 불길이 능선을 넘기기 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불이 없을 때도 같은 훈련을 반복한다. 영하의 날씨에도 호스를 메고 산을 오르는 이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신강철 산림과 주무관이 훈련일지를 적고 있었다. 어느 지점까지 진입했는지, 교신은 원활한지, 장비 이상은 없는지, 훈련 과정은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았다. 김수영 산림방재팀장은 현장을 오가며 전체 흐름을 점검했다. 뛰는 사람과, 그 움직임을 조율하는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톱니처럼 맞물려 움직였다.


[산비탈에서 호스가 나무에 걸리지 않도록 도르래로 물길을 확보하는 훈련]

[훼손된 현수막을 바로 잡는 대원들]

[신강철 주무관이 진화 훈련과정을 점검,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훈련만을 위해 모이지 않는다. 산불조심기간인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예방순찰과 캠페인에도 투입된다. 겨울 산에 올라 바짝 마른 낙엽과 나뭇가지 사이에 발화 물질이 없는지 살피고, 하루 두 차례 산과 인접한 마을을 돌며 불법 소각 행위를 단속한다. 훼손된 현수막을 다시 거는 일도 대원들의 몫이다. 대원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이지만, 매년 체력 검증을 통과한 베테랑들이다. 평균 경력은 7년에서 15년 사이.
16년 차 지재빈(62) 대원은 말했다. “예전엔 쓰레기 태우지 말라고 막으면 화내는 분도 많았죠. 그런데 큰 산불 한 번 겪고 나니, 태우기 전에 먼저 확인하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김수영 팀장은 “산불은 한 번 나면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불이 없을 때 가장 많은 준비가 이뤄진다. 같은 훈련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다.


산림재난대응단
춘천시 산불진화대는 총 74명.
실제 산불 발생 시간대와 비슷한 주말(금·토) 집중 훈련을 한다.
산불 발생시 초기 진화 작업이나 잔불 확인도 이들 몫이다.
산 아래에서, 불씨를 지우다
“우리 동네는 이제 쓰레기 막 태우는 집 하나도 없어요.”
한 어르신이 손에 쥔 종이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춘천시 산림과 직원들이 나눠준 산불 예방 리플렛이었다.
같은 날 오후, 신북읍 유포1리 마을회관. 대룡산에서의 진화 훈련이 끝나자, 현장은 산 아래 마을로 옮겨졌다.
이날 유포1리에서는 산불 예방 캠페인이 열렸다. 마을회관 안에서는 산불 발생 원인과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안내가 이어졌다. 김수영 팀장은 영농부산물 소각 자제를 당부하고, 공동 파쇄 일정을 안내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논·밭두렁 태우기가 왜 위험한지, 생활 쓰레기 소각, 화목보일러 사용 시 주의사항도 차분히 설명했다. 산불의 대부분이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어서 준비한 등산 스틱과 장바구니 같은 홍보물을 배부했다. 모두 어르신들의 생활과 밀접한 물건이었다. 뒷산에 오를 때, 마트에 갈 때마다, 일상속에서 늘 산불을 떠올릴 수 있도록 기획한 홍보물이다.
설명이 끝난 뒤에는 유명현 유포1리 이장과 함께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를 직접 찾았다. 굴뚝의 형태와 설치 상태, 주변에 쌓인 장작과 정리 상태를 살폈다. 불씨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재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유포1리 마을회관에서 진행된 산불예방캠페인]

[화목보일러 사용가구를 직접 찾아 점검하고 안전수칙을 설명하고 있다.]

겨울철이면 산림방재팀의 일정에 또 하나가 추가된다. 저수지가 얼어붙지 않도록 담수결빙 방지 장치를 점검하고, 유지관리 상태를 살핀다. 겉으로 보기엔 고요한 수면이지만, 이 곳이 얼 어붙으면 인근 산에 불이 났을 때 헬기와 펌프차가 쓸 물이 사라진다.
영동 지역의 큰 산불이 더 거세게 번진 이유를 설명할 때, 사람들은 바람과 건조한 날씨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주변에 마음 껏 끌어쓸 수 있는 물이 부족했다는 점도 빠지지 않는다. 바다가 가까워도 안심할 수는 없다. 염분을 머금은 바닷물은 산림과 토양, 시설물에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산불 진화에 활용할 수 없다.

[산불 진화 헬기가 소양강댐 하류에서 물을 담고 있다.]
춘천의 호수와 저수지는 그래서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산불에 대비해 사계절 관리하는, 거대한 ‘비상 소화전’이다.

2월 6일 춘천시 산림과, 강원도산불방지센터 영서분소 공무원들이 신북읍 유포1리에서 산불예방캠페인을 펼쳤다.
유포1리에서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는 많지 않다. 이날 방문한 윤태봉(74) 씨의 집은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모범 사례’로 꼽혔다. 재는 전용 용기에 담아 불씨가 완전히 꺼질 때까지 기다린 뒤 버렸고, 굴뚝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괜히 불냈다가 큰일 나면 안 되잖아요.” 화목보일러의 연통도 지침대로 T자형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계도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방문이었다.
이날 캠페인에는 강원도산불방지센터 영서분소 직원들도 함께했다. 현장에서 예방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주민들에게 산불 예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리기 위해서다. 산림과는 이런 캠페인을 특정 기간에만 몰아서 하지 않는다. 마을을 돌며 반복해서 설명하고, 직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위험 요소를 조금씩 줄여 나간다.
산 위에서는 산불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 이어지고, 산 아래에서는 불이 나지 않도록 하는 점검이 반복된다. 같은 사람들, 다른 현장. 춘천의 산불 예방은 이렇게 이어진다.
불길이 치솟는 장면은 뉴스가 되지만, 불이 나지 않도록 지키는 시간은 기록되지 않는다. 춘천의 숲이 오늘도 고요하다면, 그 기록되지 않는 시간들이 쌓인 결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