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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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1

2026-02
#도란도란 #봄내를꿈꾸다
시민기자가 취재하는 춘천시민 이야기
춘천을 달리는 ‘기부 러너들’
달리기는 이웃과 함께 숨 쉬는 방식






 춘천러닝크루



겨울의 초입, 소양강 처녀상 앞을 지나는 러너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터져 나온다. 단순히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신발 끈을 묶는 시대는 지났다. 춘천의 도로 위에는 숨 가쁨을 누군가의 따뜻함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춘천 최대 러닝 동호회인 ‘춘천러닝크루(CRC)’와 교사들이 모인 ‘HD러닝크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에게 달리기는 고독한 혼자만의 운동이 아니라, 이웃에게 정을 나누는 따뜻한 매개체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키는 108명의 ‘산타’, 춘천러닝크루

춘천러닝크루(CRC)는 7년간 600회가 넘는 정기 러닝을 이어 온 춘천의 대표적인 청년 동호회다. 이들은 연말을 앞두고 ‘꾸런 꾸런 챌린지’를 기획했다. 지난해 5월과 9월, 108명의 회원이 참여해 각자가 달린 날짜만큼 기부금을 적립했다. 한 달 중 15일을 달린 사람은 1만5,000원, 25일을 달린 이는 2만5,000원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모은 250만 원을 강원가정위탁지원센터에 전달했고, 이 성금은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변신했다. 이번 기부는 러너들의 일상품이지만, 어려운 아이들은 갖기 힘든 ‘운동화’의 필요성에서 시작됐다. 러너들은 용도별로 여러 켤레의 전문 운동화를 구비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위탁가정 아이들은 발에 맞지 않거나 낡은 신발을 신는 경우가 많다. 혹은 유명 브랜드 운동화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CRC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신발’을 매개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고자 했다. 특히 기부처인 강원가정위탁지원센터는 강원도에서 최초 시범사업으로 가정위탁제도를 시작했다는 점이 크루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정위탁’이 춘천에서 시작해 자리 잡은 제도인 만큼, 춘천 청년들이 그 결실을 지탱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믿었다. 





손정희(31) 크루장은 “최근 달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화제성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680만 원, 올해 초 산불 성금으로 300만 원을 각각 기부하며 ‘꾸준함’의 가치를 증명해왔다. CRC는 춘천의 청년 유출과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자발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러닝 크루 활동으로 만나 결혼한 부부만 10쌍이 넘는다. ‘춘천의 내일을 지키는 뿌리’로서 건강한 활동을 계기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들의 모습은 생생한 지역 활성화의 표본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근화동 일대에서 1,200장의 연탄 봉사도 진행하며 지역 사회와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HD러닝크루


  


나눔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스승의 레이스’, HD러닝크루


춘천러닝크루가 대규모 인원의 결집력을 보여준다면, 강원지 역 초·중등 교사 11명으로 구성된 ‘HD러닝크루’는 교육자의 진심을 담아 길 위를 달린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꾸런(꾸준히 달리기)’ 활동을 펼쳤다. 수업 준비와 학생 지도라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틈틈이 운동장과 산책로를 달렸다. 이 기록을 모아 약 20만 원의 기부금을 마련해 춘천연탄은행에 전달했다. 



현대(41) HD러닝크루 대표는 말로만 ‘남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교사가 직접 땀 흘려 얻은 수확으로 연탄을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자들에게 훨씬 의미 있는 교육이 되리라 믿었다. 교육 활동 외에도 지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실천을 고민하던 이들에게 달리기는 최적의 소통 수단이다. 이들이 전달한 기부금은 난방 취약계층을 위한 연탄 공급과 무료 급식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큰 액수는 아닐지라도, 스승의 마음이 담긴 기부금은 이번 겨울, 에너지 빈곤 가정의 방구석을 데우는 가장 뜨거운 연료가 됐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춘천연탄은행에 교사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지역 사회 전체에 나눔의 선순환을 촉구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달리기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연대

두 러닝크루의 활동은 팍팍한 현실과 경기 불황, 청년 실업 등 어두운 뉴스 속에서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각자의 운동화 바닥이 닳아가는 과정을 통해 ‘기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누군가는 신발을 선물해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누군가는 연탄을 후원해 어르신들의 겨울을 지켜낸다. 춘천의 길 위에서 만난 러너들에게 달리기는 개인의 취미를 넘어 ‘이웃과 함께 숨 쉬는 방식’이다. 혼자보다 함께 달릴 때 어려움이 줄듯이, 이들이 나누는 온기는 춘천이라는 도시의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고 있다. 춘천러닝크루와 HD러닝크루의 발걸음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건강한 땀방울과 함께,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향기가 남는다. 올해 춘천의 겨울은 이들 덕분에 그리 춥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