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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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1

2026-02
#누군가의춘천 #봄내를품다
중앙시장 만두회동
글 서현숙. 1972년생 작가. 『소년을 읽다』, 『변두리의 마음』, 『난처한 마음』 등을 썼다.
그림 공혜진 자연물이나 일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다.








춘천으로 이사를 나온 지 두 달 정도 지났지만, 열 살 어린이의 세계는 무척 작았다. 집에서 춘천 초등학교 후문까지, 걸어 오가는 5분의 시간에 펼쳐진 길이 내 세계의 전부였다. 한번은 친구를 따라 작은 일탈을 감행했다. 학교 후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야 집 방향인데 왼쪽으로 향했다. 오순절 보육원을 지나니 담벼락 아래에 뽑기(달고나) 노점이 있었다.


달고나 노점 아저씨는 작은 국자에 설탕을 담고 젓가락으로 살살 저어 녹인 뒤 소다를 콕 찍어 넣고 휘젓는다. 그러면 설탕이 마술처럼 부풀어 오른다. 최고로 부풀어 오른 순간을 일 초의 착오도 없이 판별해 쇠로 만든 넓은 판에 국자를 탁 뒤집어 쏟고, 넙적 한 쇠주걱으로 얇게 편다. 거기에 쇠로 만든 별이나 하트와 같은 다양한 모양틀을 찍는다. 가장자리를 잘 떼어내 틀 모양만 남겨 아저씨에게 보여주면 설탕을 녹여 만든 넙적하고 큰 사탕을 받았다.


모양대로 달고나를 떼어내는 것은 될 듯하면서도 되지 않았다. 가장자리를 뚝뚝 분질러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조금씩 떼어내기도 하고, 손톱으로 살살 두들기며 모양을 살리려 무진장 애를 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 귀퉁이가 부서지고 만다.


아,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달고나의 세계에 완벽하게 빠졌다. 그때 나는 우리 집 저금통 동전을 모두 달고나에 갖다 바쳤다. 이 사실을 가족은 지금까지도 모른다. 가산(?)을 탕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일탈은 가속 페달을 밟고 달려 나갔다. 달고나의 세계를 넘어 친구를 따라 오순절 보육원 고개를 넘었다. 친구와 떠들며 걷던 순간, 내 눈앞에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가다 다른 세계로 뚝 떨어진, 딱 그 느낌이었다. 사람의 밀도, 소리의 밀도, 냄새의 밀도가 완전히 달랐다.





거기는 중앙시장 입구였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춘천 중앙시장에 간 날이었다. 사람도, 움직임도, 노점상도 많았다. 극장도 있었다. 중앙극장.


그중 가장 압도적인 것은 어느 가게 앞에 내놓은 솥이었다. 솥 안에서는 기름이 끓고 있었고, 주인 아저씨가 채로 건져 솥 가장 자리에 채를 탁탁 치자 동그랗고 노르스름한 만두들이 탱탱한 자태를 드러냈다. 만두의 당당하고 귀여운 자태와 진동하는 기름 냄새에 친구와 나는 주머니를 털었다. 만두는 포크가 잘 안 들어갈 만큼 빠삭했고, 뜨거웠고, 고소했다. 만두피는 조금 도톰했고 속에는 당면과 야채가 적게 들어 있었다.

그 뒤로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만두를 사 먹으러 종종 중앙시장에 갔다. ‘만두 회동’이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는 학생의 주머니 사정이야 뻔했지만, 요즘 학생들이 주기적으로 고기나 마라탕이 땡기듯 그때의 우리는 주기적으로 중앙시장 만두가 땡겼다. 주머니 사정상 양껏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것이 유일한 문제였다.


네 명이 가서 만두 2인분과 떡볶이 2인분을 주문했다. 친구보다 만두를 하나라도 더 먹고 싶은 야망에 서둘러 젓가락질을 하다가, 탱탱한 만두가 내 쇠젓가락 사이를 튕겨 나가 식당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만두가 바닥에 떨어져 한 바퀴 구른 순간, 네 명의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 고민이 가득한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섞을까?” 나머지 세 명이 외쳤다. 


“그래, 섞자!” 한 명이 소중한 만두를 집었다. 만두에 묻었을지도 모를 먼지를 털고 매만져 닦은 뒤, 만두들 틈에 깨끗해진 만두를 넣고 뒤섞었다. 그 만두가 누구 입에 들어가는지 알 수 없어야 하니까. 고등학생들의 주머니 사정과 왕성한 식욕, 철없음이 합해져 벌인 일이었다.

튀긴 만두 속은 뜨거웠다. 만두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가는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친구보다 만두를 하나라도 더 먹고는 싶은데 뜨거워서 빨리 먹을 수는 없고, 이 절박한 필요는 ‘비법’을 탄생시켰다. 일단 만두의 양쪽 끝을 조금씩 베어 물어 양 끝에 작은 구멍을 낸다. 한쪽 구멍에 입술을 대고 후, 입김을 내뿜는다. 그러면 만두의 뜨거운 김이 다른 쪽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친구보다 1.5개는 더 먹을 수 있다. 






지금도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중앙시장에 만두를 먹으러 가곤 한다. 이제는 땅에 떨어진 만두를 보며 번뇌할 일도 없고, 만두 양쪽에 구멍을 내 후후 입김을 불 일도 없다. 심지어 만두 몇 개를 남긴 채 음식점을 나오기도 한다.

얼마 전 스물세 살이 된 딸과 중앙시장에 만두를 먹으러 갔다. 문득 내가 개발했던 ‘비법’을 딸에게 전수하고 싶어졌다.

“서연아, 엄마가 만두 빨리 많이 먹는 방법 알려줄까.” 그리고 내가 개발한 비법을 직접 차근차근 보여줬다. 딸이 “하하” 웃더니 말했다.

“엄마, 꼭 담배 피우는 것 같아. 만두 담배. 근데 뭘 그렇게까지 빨리 먹으려 해? 천천히 식히면서 먹으면 되지.”

비법이 필요했던 엄마와 비법이 없어도 되는 딸이 마주 앉아, 여전히 피가 도톰하고 자태는 동글동글하며 세상에서 가장 빠삭빠삭한 만두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