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국에서 연달아 일어난 대형 산불은 큰 상처를 남겼다. 새까맣게 타버린 야산을 보며 시민들의 가슴에도 멍이 들었다.하지만 산불 말고도 푸른 숲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나무재선충병’이다.상대적으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피해의 규모와 지속성을 고려했을 때 재선충은 중대한 산림 재해로‘보이지 않는 산불’이나 다름이 없다.
![]() | ‘소나무재선충병’이란? |
소나무재선충은 1㎜ 크기의 실 같은 벌레로,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몸 안에 서식하다가 나무에 침입하는 산림 병해충이다. 재선충이 소나무류를 숙주로 빠르게 증식해 수분과 양분의 이동을 막으면 잎이 붉게 변하고 단기간에 나무가 시들어버린다. 소나무, 해송, 잣나무, 섬잣나무 등이 재선충에 감염되는데, 치료 방법이 없어 한 번 감염되면 100% 고사한다.
민족의 기상’ 푸른 숲이 스러진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애국가에 등장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는 자연물이다. 소나무는 한때 주변에서 가장 보기 쉬운 나무였지만, 기후변화로 나무를 괴롭히는 병해충이 확산하면서 숲의 경관도 달라지고 있다.
구한말 의병 운동의 중심지였던 남면 가정리는 을미의병을 이끌었던 류인석 선생, 최초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와 연이 깊은 ‘충의(忠義)의 고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꼿꼿함을 닮아 사시사철 푸르러야 할 가정리 주변 산림은 최근 재선충에 감염된 고사목으로 붉게 변해버렸다.
꽁꽁 언 홍천강 위로 한겨울 칼바람이 불었던 1월 7일 오후, 의암류인석기념관에서 바라본 야산에선 푸른 소나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소나무재선충병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고사한 나무가 수두룩했다. 가을 단풍 든 것 같이 온 산이 탁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일부 야산은 재선충 방제를 위한 벌목으로 민낯을 드러내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백두대간 최후의 보루’를 지켜라
춘천은 전국에서도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경기도에서 점차 동쪽으로 재선충이 확산하면서 춘천이 백두대간의 방어선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전체 면적의 82%, 사실상 전 지역이 소나무류 반출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나무를 베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제 작업을 해야 하며 함부로 나무를 이동해서도 안된다.
춘천시는 ‘최후의 청정지’를 지키는 동시에 화천·양구·인제 방향으로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방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북면, 신북읍 등 선단지(확산 위험이 큰 구역)를 중심으로 헬기·드론·지상 등 삼중 예찰을 가동 중이다. 유일한 청정 구역인 북산면 마저 노출되면 재선충이 동진하며 백두대간을 해칠 수 있다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특히 교통량이 많은 고속도로 주변으로 재선충이 확산하는 추세를 보여 앞으로는 고속도로 인근 산림을 중심으로도 방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9월 촬영. 감염되지 않은 오른쪽 산은 초록빛을 보이지만, 소나무재선충병이 번진 왼쪽 산은 소나무가 연달아 고사하며 탁한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춘천시는 유휴 부지를 확보해 방제를 위한 파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임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전국 154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재선충병이 발생했는데, 이중 피해 정도가 가장 큰 ‘극심’(5만그루 이상) 6곳, ‘심’(3만~5만 그루) 4곳, 춘천이 포함된 ‘중’(1만~3만 그루)은 19곳이다. 춘천에서 처음 재선충이 발병 한 건 2007년 동산면 원창리에서였다. 2013년 재확산이 시작된 이후, 동산면, 남면, 남산면, 서면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감염이 나타났다.
지역 특성상 전체 면적의 70%가 산으로 둘러싸여 숲이 많고, 소나무(7,064㏊), 잣나무(1만6,706㏊) 등 재선충병 감염 위험이 있는 수종이 산림의 30%를 차지해 재선충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잣나무는 재선충병 잠복기가 길어 방제의 어려움이 더욱 크다.
문제는 재선충병 감염이 갈수록 집단적이고 반복적인 피해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춘천시에서 최근 3년간 4만332그루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방제 작업을 펼쳤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감염된 나무를 그대로 두면 재선충이 봄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매개충을 통해 주변으로 확산하고 다른 나무를 감염시킨다. 가지가 맞닿아 있는 나무라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이미 감염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고사한 나무가 숲에 방치되면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우려가 있다. 또 뿌리 지지력이 약해 바람에 쓰러져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선충으로 산림이 망가진다면 춘천 경제를 지탱하는 관광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춘천 관광의 가장 큰 경쟁력인 푸른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자연 경관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산림을 위한 수종 다양화
기존에는 매개충을 제거하는 방식의 방제가 이뤄졌지만, 최근 재선충의 확산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춘천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베어내고 재선충에 감염되지 않는 활엽수 중심으로 새로운 묘목을 심는 수종 전환 중심 방제를 추진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이상고온으로 소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변하면서 현재와 같은 수종을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재선충병을 옮기는 매개충들의 활동을 막을 수가 없어서다.
이에 호응한 일부 산주(山主)들은 춘천시 산림과의 연계로 민간원목생산업자와 계약을 맺고 기존의 나무를 모두 베어낸 뒤 자작나무, 낙엽송 등 다른 수종의 묘목을 대신 심는 ‘수종 전환 방제’에 나섰다.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나무에 대해서도 미리 대응한 사례다.

한국임업진흥원 제공

국립생물자원관 제공(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건강한 산림을 위해선 소나무류를 중심으로 이뤄진 수종을 다양하게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나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민족의 정신이 깃든 나무이지만,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나무들이 ‘기후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사하는 사례도 관찰된다. 예년과 다른 따뜻한 기온이나 잦은 비로 인해 생태적 균형을 잃어버린 결과다. 소나무가 건강할 때는 송진을 배출해 벌레의 유입을 막을 수 있지만, 이상 기후 등으로 수세(樹勢)가 약해져 각종 병해충 노출에 더 취약해졌다.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서 자라기 적합한 수종으로 전체적인 산림의 구성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숲을 지키기 위한 춘천시의 노력
춘천시의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정상적인 나무들에 대해선 예방 주사를 통해 일차적으로 나무 건강을 확보하고, 감염목과 가지가 닿아 추가 감염 우려가 있는 인접 나무를 제거해 선제적으로 확산을 막는 방식이다.
춘천시가 적극적으로 재선충병 방제에 나서고 있지만, 시민들의 관심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푸른 숲을 지켜내기엔 역부족이다. 전국적으로 재선충병 확산이 이미 방제 속도를 뛰어넘었고, 재원과 인력의 한계로 전면적인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본질적으로는 확산 방지 차원에서 산주들의 적극적인 수종 전환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감염이 발생한 뒤에는 방제 명령과 후속조치가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시내권에는 재선충으로 인한 경관 훼손과 나무 쓰러짐 사고 등을 막기 위해 더 적극적인 수종 전환이 요구된다.
지금까지는 지자체가 방제를 위해 동의를 요청해도 회신이 저조해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춘천시는 맞춤형 방제 전략을 세워 대응하고 있다. 먼저 산주동의 확보 체계를 개선해 방제를 위한 동의 유효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했다. 또 QR코드를 활용해 비대면 회신 시스템을 도입하며 절차를 간소화했다. 기존에는 동의 회신이 저조해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방제가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또 군부대 및 교육청과 협의를 바탕으로 폐부대와 폐교 등 유휴 부지를 활용한 파쇄장 확보에 힘쓰고 있다. 고사목이 매개충의 산란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에서 최대한 끌어내고, 방제 시기인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현장에서 바로 파쇄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파쇄한 톱밥은 화력발전소 등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춘천시 산림과 관계자는 “소나무재선충병은 우리 주변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며 “수종 전환은 산림 생태계를 건강하게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병해충에 강한 숲을 조성하기 위한 방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수종 전환 시 대체 수목 조림(造林) 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니, 소나무재선충병에 관심을 가지고 방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