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문어처럼 해볼까?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거야. 하나, 둘, 셋.” 호반어린이집 아이들은 화가 났을 때, 교사와 함께 이렇게 행동한다. 감정 조절 사회정서 프로그램 ‘문어와 멈추고 생각해요(이하 ‘문어진정법’)’ 덕분이다.

양현주 호반어린이집 원장은 이 프로그램으로 춘천시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진행한 ‘2025 원장 대상 우리 어린이집 특색 보육프로그램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남주 춘천시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선정 이유에 대해 “의사소통과 자기 진정 능력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는 접근법이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적합하다고 봤다”며 “특히 영유아가 직접 디자인한 문어 캐릭터로 그림책을 제작한 점이 돋보였다”고 평했다.

국공립 호반어린이집은 비장애 영유아와 장애 영유아를 함께 보육하는 장애아통합어린이집이다. 66명의 아이가 함께 생활하며 이 중 9명이 장애를 갖고 있다. 양현주 원장은 “영유아기는 감정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를 건강하게 표현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장애 여부를 떠나 다 같이 어울려 사는 요즘 사회에 더욱 필요한 능력”이라며 ‘문어진정법’을 개발한 이유를 설명했다.
‘문어진정법’은 3단계로 이뤄져 있다. ‘소리 지르는 걸 멈추고 손을 몸에 붙인다’, ‘심호흡을 세 번 하며 진정한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한다’ 순이다. 프로그램 개발 초기, 호반어린이집에서 7년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손혜민 보육교사가 한 아이의 문어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반 아이들이 문어 놀잇감을 자주 가지고 놀고 문어 그림을 그리는 것에 착안해 친근한 문어 캐릭터로 표현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문어진정법’을 쉽게 이해하도록 그림책과 동영상을 제작했다. 특히 10쪽으로 구성된 그림책은 아이들이 직접 그린 문어 그림과 교사들의 글귀를 담아 눈길을 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아이들을 차분하게 이끌고, 스스로 숨 고르기를 하도록 돕는 건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손 교사는 서두르기보다 아이들을 믿고 같은 방법을 꾸준히 반복해 교육했다. 덕분에 서서히 ‘문어진정법’을 실천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울음, 소리 지름, 짜증 등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교사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심호흡하거나 문어 인형을 활용하는 등 자발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소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5세 아이의 변화는 놀라웠다. 하루에 서너 번씩 감정을 폭발했지만 그 빈도가 주 2~3회로 줄었다. 힘들면 벌러덩 누워 떼를 쓰거나 꿈적도 하지 않았던 3세 아이는 스스로 문어 인형을 끌어안고 엎드려 마음을 다스린다.

이런 작은 변화는 교사에게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손혜민 교사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며 “이럴 때 보육교사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환하게 웃었다.

학부모들의 응원과 적극적인 실천도 큰 힘이 됐다.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문어진정법’을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양 원장 역시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교사는 물론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함께 잘 협조해 준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양현주 원장은 “‘문어진정법’은 특별하지 않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일상에 일어난 작은 변화가 정말 기적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적으로 ‘문어진정법’을 전파하는 것은 물론, 장애아동의 특성을 반영해 이들의 시선으로 프로그램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