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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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0

2026-01
#최돈선의둘레마을이야기 #봄내를품다
최돈선의 둘레마을 이야기 37
거북이를 발견하다
학교 안의 작은 학교 소스쿨
전인고등학교
시인 최돈선이 바라본 마을 그리고 사람 이야기


전인고등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춘천 시민이라면 이 고등학교에 대해 아는 이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 학교가 원창고개 넘어 새술막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전인고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점 두 가지가 발견된다.

하나는 별칭이다.

학생도 교사도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뭘까. 별칭은 자신의 행동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성을 나타낼 수도 있고, 삶의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 별칭은 본인이 짓거나 친구가 지어주거나 어른이나 선생님이 지어줄 수도 있다.

이 학교에서의 별칭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롱과 악의로 상대방을 찌르는, 인격적인 모욕의 별명이 이 학교엔 없다.


그래그래 좋아. 빛, 얼쑤, 그래그래 좋아, 너울너울, 윤슬… 얼마나 친근하고 따뜻한가.

놀랍게도 이 학교의 별칭도 있다.

이르름

학생들이 지었다는데, ‘이름’을 악보처럼 소리한 것이란다. 마치 현이 이르르음 스릉~ 하고 소리를 낼 것만 같다. 게다가 여기엔 전인고등학교 학생들만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어떤 곳에 이르다, 다다르다’라는 그 간절한 소망이 대체 무얼까. 이름만 들어도 누구든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또 하나는, 담임 1인당 학생 12명 이내로 운영되는 소스쿨이다. 1, 2, 3학년 학생이 한데 모여 소스쿨 학급이 편성된다. 그리고 3년간 수시를 대비하여 학생 개개인의 포트폴리오를 축적한다. 가령 ‘교육국제 소스쿨’을 일례로 들자면, 학생은 3년 동안 담임 책임하에 생활, 학습, 진로를 꾸준히 관리받게 된다는 뜻이다.


소스쿨은 11개의 학급으로 나눈다. 복지심리, 생활경제, 역사사회, 문학, 교육국제, 자연과학, 미래공학, 건축수학, 체육, 미술, 음악미디어 들이다. 이 학급에서 다시 두 개, 세 개의 동아리로 세분되기도 한다. 그것은 그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그 깊이와 폭을 심화하기 위해서이다.


민일홍 전인고 교장


나는 오전 수업 현장을 참관하였다. 조용히 교장 선생님과 입실하여 찬찬히 수업을 지켜보았다. 학생들은 우리의 등장에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학생들 앞쪽으로 네댓 명의 학생들이 나와 주어진 문제에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참가 학생들은 때때로 웃었고, 약간 떨어져 있던 선생님도 가까이 다가오더니 문제와 토의에 대해 조언하다가 이따금 가볍게 웃었다. 학생들도 따라 웃었다. 무엇이 재미있다는 것일까. 난데없이 불쑥 들어온 나는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수업은 매우 진지하고 흥미로워 보였다. 학생들은 그냥 코미디처럼 웃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고 즐기는 수업인 듯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장도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그만 나도 덩달아 빙그레 웃고는 교실 문을 살며시 열고 나왔다.



민일홍 교장이 나를 도서관으로 안내했다. 교육학 박사인 민교장은 도서관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었다.

학습과 관련된 교양, 철학, 심리, 과학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교장은 광장 같은 온돌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토론의 장입니다. 2024년 저흰 미국 명문대인 세인트존스 대학과 MOU를 맺었습니다. 그 학교의 독서와 토론 학습법을 가져와 학생들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도 선생님이 늘 조언하고 계십니다.”민일홍 교장이 쓴 저서 ‘지구촌과 함께하는 세계시민’은 이 토론수업에도 녹아 있다고 했다. 이 저서는 현재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다섯 군데 교육청에서 학습 교재로 채택되어 수업 중이다.



전인고 학생수는 현재 108명. 남녀 학생비가 5:5다. 쌍둥이 자매도 있고 형 동생도 있고 같은 중학교 출신 학우도 여럿 된다. 춘천 학생과 외지 학생 대비도 반반이다. 기숙사 생활이 원칙이지만 춘천 집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18명이다. 이 학생들은 각자 계약한 택시를 불러 타고 원창고개 넘어 학교로 등교한다. 1천 원만 내면 된다. 나머지는 춘천시에서 내준다. 수업을 마치고 오후엔 학교 앞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기숙사 생활은 한 방에 둘 아니면 셋이 쓴다. 남학생 기숙사 47명, 여학생 기숙사 43명으로 모두 90명이다. 내부는 넓고 밝고 아늑하다. 세면대, 세탁기, 샤워실과 운동실 등이 편리하게 정돈되어 있다. 휴식 공간도 학생들 요구대로 만들어졌다. 사감 선생님은 학교 수업이 종료되면 기숙사 관리를 맡는다. 학생들의 건강이나 교우관계, 불편 사항은 없는지, 공동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등을 세심하게 살핀다.


전인고등학교 기숙사 내부


학생들은 전인고에서 선생님과의 소통을 제일로 꼽는다.

이 이야기는 졸업 후 치의예과에 진학한 졸업생이 학교에 보내온 수기에서 발견되었다. 이 글을 나는 비유법을 써서 여기에 요약 기록한다.


선생님의 따스한 한마디 말씀은 생명수나 다름없다. 선생님들은 성장하는 나무에 물을 주는 정원사이다. 늘 따뜻한 시선으로 학생들을 비추신다. 그 햇살 덕분에 저흰 꿈을 키울 수 있었고, 푸르른 나무로 자라 가슴을 힘껏 펼 수 있었다.


전인고는 학생 개개인의 인성 계발에 특히 정성을 기울인다. 명상을 생활화하고 자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

탄소중립 시범학교, 유네스코 학교 지정, 참 좋은 학교 선정 등으로 전인고는 기후환경과 평화 인권에 대한 활동이 대내외적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텃밭 일도 즐겨한다. 직접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열매를 따면서 땀의 귀함을 깨닫는 일도 소중한 체험이다.

고전을 읽고 읽은 소감을 나누는 일, 친구와 함께 춘천시립교향악단의 모차르트 교향곡을 듣는 일, 숲 체험을 통해 나무의 이름을 외며 자연과 친화하는 일, 길에서 지나는 동네 어른께 인사하며 이야기 나누는 일 등등. 그저 모든 것이 자유롭고 정겹고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가 아닌가. 일상이 아름다워지는 일은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가.


2024년엔 졸업생 28명 중 한 명만 대학에 가지 않고 모두 진학했다.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여 3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이다.



점심시간이어서 식당에 갔다. 학생들이 줄을 서서 배식을 받는데 오늘은 마라탕이다. 수요일은 특식이 제공된다고 한다. 메뉴판을 보니 요일별로 다양한 메뉴가 적혀 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식사하며 조용히 담소하는 모습이 가족 같은 분위기다.



교장 선생님은 이 학생들을 거북이라 부른다.

클 거(巨), 책 북(book), 이로울 리(利)

사람들에게 크고 이로운 책이 되라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