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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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0

2026-01
#춘천은지금 #봄내를만나다
붉은 말의 해 특집
붉은 말, 춘천을 달리다


춘천, 말과 함께 성장한 도시

춘천은 오래전부터 말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역사 속에서 말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행정과 상업, 군사 활동을 잇는 핵심 인프라였다. 이런 흔적은 오늘날에도 춘천 곳곳의 지명과 지형에 남아있다.


서면 당림리와 안보리 일대는 조선시대 역참이 자리했던 곳이다. 말을 이용한 교통과 통신의 거점이었으며, 당림리의 옛 이름인 ‘마당골’은 말을 위한 사당, 즉 마당(馬堂)에서 비롯되었다. 마을 숲 안에는 말의 안녕을 기원하는 공간이 있었고, 이는 공동체의 삶 속에 말이 얼마나 깊이 스며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기차가 오가는 곳을 역(驛)이라고 부르지만 기차 발명 이전의 역은 말을 관리하며 공무 수행을 지원하던 공간이었다. 후평동 보안길과 부안이라는 지명 역시 보안역(保安驛)을 중심으로 형성된 말길, 즉 역로(驛路)에서 유래했다. 춘천의 도시 골격은 이렇게 말이 오가던 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서면 당림리(塘林里)에는 효성이 깊은 역마(驛馬)에 대한 설화가 전해진다. 이 역마가 숲을 지날 때마다 사람과 짐을 내려놓고, 숲 안에 있는 무덤(어미 말의 무덤으로 추정)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복해 말을 위한 사당을 세웠다. 마당(馬堂)이 있던 숲이라 해서 지금도 ‘당숲’이라 부른다.




말의 흔적은 자연 지형에도 남아있다. 동면의 마적산(馬跡山)은 산봉우리가 말 발자국처럼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동내면의 안마산(鞍馬山)은 산의 모양이 말 등에 얹는 안장과 같다는 데서 그 이름을 얻었다. 교동 향교 앞 고개는 말을 탄 채로 지날 수 없었다고 해서 ‘말탄개미’, 또는 마현(馬峴)이라 불렀다. 이는 말이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도시의 질서와 예법 속에 자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춘천의 말 관련 지명과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말길을 따라 형성된 공간 구조는 오늘날의 춘천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지도이자, 도시 정체성의 뿌리다.


호수 조망 승마장, 시민의 활력으로 뛰다

한낮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지난 9일 오후. 춘천시 송암동에 있는 춘천공공승마장을 찾았다. 시내에서 차로 10분 남짓. 삼악산과 의암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전국에서도 드문 ‘호수 조망 승마장’이다.



송암스포츠타운 뒤편 향로봉 하늘정원 일대 2만㎡ 부지에 조성된 승마장은 실내·외 마장과 훈련장, 마사를 고루 갖추고 있다. 겨울 추위 속에서도 말과 사람의 움직임으로 공간은 활기로 가득했다.


춘천공공승마장은 춘천도시공사가 운영하며, 현재 행정 1명, 교관 2명, 관리사 2명 등 5명의 직원이 10마리의 말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주말이면 서울·경기 등 수도권 관광객까지 찾아와 빙상장, 사격장과 함께 가족 단위 레포츠 체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승마장의 가장 큰 특징은 ‘접근성’이다. 춘천시 조례에 따라 요금이 책정돼 성인 기준으로 체험 프로그램은 2만 원, 1:1 중·상급 과정도 4만 원으로 전국 최저 수준을 유지한다. 멀리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시민이 일상에서 말을 만날 수 있는 공공시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오후 수업을 앞두고 마사에는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말을 타기 전, 말을 빗질하고 안장 등 장비를 채우는 ‘말 짓는 시간(장안, 裝鞍)’이 필수다. 원완희 말 관리사는 이를 “사람으로 치면 외출 전 세수하고 매무새를 갖추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단장을 마친 말은 날렵한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며 교관의 리드에 따라 원형 승마장을 달리고 몸을 풀었다.



훈련을 마친 말들의 거친 숨소리, 교관의 구령, 그리고 마구간의 건초 향기 속에서 추위마저 잊게 하는 따뜻한 교감의 정서가 느껴졌다. 춘천공공승마장은 시민이 생명과 눈을 맞추며 소통하는, 도심 속 가장 가까운 치유의 공간이다.



말과 함께하는 힐링, 시민의 목소리 

공공 승마장의 가장 큰 수혜자는 춘천 시민이다. 저렴한 비용 덕분에 승마는 이제 일부의 취미가 아닌, 생활 속 힐링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오후 4시 수업을 기다리던 최안나(63·온의동) 씨는 승마 경력 5년 차다. 그는 승마에 대해 “강아지 대신 말을 키우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말의 눈이 예쁘잖아요. 수업이 끝나고 내가 탄 말을 바라보는 시간 자체가 힐링이죠. 저렴한 체험비는 시민들에게 큰 혜택이에요. 



최 씨는 승마가 나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전신운동이라며 주변에 적극적으로 권한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승마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운동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대기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삼악산과 의암호의 풍경은 춘천공공승마장이 가진 또 다른 경쟁력이다.


“미리 와서 복장 갖춰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요. 춘천에서 이런 경치가 없습니다. 장소 자체가 힐링”이라며 입지적 장점도 높이 평가했다.



실제 수업을 따라가 보니, 승마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선 가치가 있었다. 말의 리듬을 느끼고, 허벅지로 신호를 보내며, 때로는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말과 사람이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승마의 핵심이다.


수업을 마친 뒤 이용객들은 준비해 온 당근과 사과, 각설탕을 말에게 건네며 교감을 나눈다. 이 짧은 시간이 시민들에게는 하루의 균형을 되찾는 쉼표가 된다.






말 산업 대중화의 미래, 춘천시의 역할

춘천공공승마장은 여가 공간을 넘어 말 산업 대중화와 인재 육성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춘천시는 시민 체험 확대와 함께 교육적·사회적 가치에 주목한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학생 승마 체험 지원사업’이다. 참가비의 약 70%를 지원해 유소년들이 말과 교감하며 정서적 안정과 체력 향상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돕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춘천승마장, 송곡승마교육원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김근형 축산과장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말과 교감하며 자신감을 키우는 교육의 장”이라며 “춘천이 제공하는 중요한 공공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지역 내 말 산업 생태계 구축도 진행 중이다. 송곡대학교 송곡승마교육원에서는 한국마사회와 협력해 기승능력인증제도(KHIS)를 운영 중이다. 또한 승마지도사, 승마힐링사 등 전문 인력을 양성해 공공 승마장의 지속 가능한 운영 기반으로 연결하고 있다.


윤병근 춘천시 승마협회장은 “공공 승마장은 수익보다 시민의 건강과 교육적 가치를 우선하기에,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승마가 대중화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춘천이 선도할 말 산업 문화 도시의 비전을 제시했다.

     


병오년, 붉은 말의 기운이 춘천으로

역참의 중심지로 말과 함께 도시 기틀을 닦아 온 춘천.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기운은 공공 승마장을 통해 시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과거의 말길 위에 세워진 도시는 이제 새로운 문화와 산업으로 도약하며, 시민과 함께 달리는 춘천의 내일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