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소가 말을 걸다
레고랜드 초입인 춘천대교 바로 옆, 한동안 멈춰 있던 네 동의 붉은 벽돌 건물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이름은 ‘화동2571’. ‘화동(花洞)’은 지역명인 근화동을 의미하는 동음이의어이자, 번지수 ‘2571’을 더한 이름이다. 텅 비어 있던 이 건물은 이제 청년 셰프들의 주방이자 시민들의 일상 속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춘천의 청년, 행정, 지역 농가가 함께 만든 로컬 푸드 플랫폼이자 창업 생태계다.
‘청년창업 실습교육장’과 ‘레스토랑’, ‘야외정원’이 함께 엮인 먹거리복합문화공간.
춘천의 새로운 도시 실험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02.
여섯 개의 주방, 여섯 개의 언어 ‘KITCHEN 2571’
호수와 잔디밭, 붉은 벽돌이 어우러진 2만㎡ 부지. 그 한가운데
‘KITCHEN 2571’이라는 커다란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는 여섯 명의 청년 창업가가 실전을 배우는 청년들의 실험주방 ‘키친2571’이 있다. 민트색 타일로 꾸민 인테리어는 공간 전체에 젊고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5평 남짓한 여섯 개의 주방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테이블에서 청년 셰프들은 당근을 다듬고, 파스타면을 삶으며 분주하게 손님맞을 준비를 한다. 무쇠판 위에서는 한돈 패티와 계란프라이가 지글거리고, 또띠아 위에는 특제 소스와 토마토, 양파가 올라간다.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타코, ‘또구’의 완성이다.


‘또구뽀구’의 청년 창업가 신현철 씨는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레시피가 시민의 피드백과 컨설팅을 거쳐 하나의 메뉴로 완성되는 과정이 신기하다”며“혼자였다면 금세 지쳤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웃었다.
‘키친2571’은 외식 창업의 높은 벽에 막힌 청년 셰프들에게 실전 경험을 제공하는 창업 인큐베이팅 플랫폼이다. YN컬쳐앤스페이스 소속 심민성 화동2571 센터장은 “창업의 가장 큰 벽은 초기 비용과 경험 부족입니다. 공간, 집기, 주문시스템 같은 인프라는 물론 메뉴 개발부터 고객 관리까지 실전 교육을 제공해, 청년들이 레시피 하나로 도전할 수 있게 했습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신현철(또구뽀구), 김세훈(메메밀), 고영훈(놀밥), 박솔우(미솔랭), 이민아(미트고로케), 이윤주(포코타코)

03.
춘천의 맛을 세계의 방식으로 풀어낸 ‘라토피아’

‘화동 2571’의 또 다른 주인공은 퓨전 레스토랑 ‘라토피아(Latopia)’다. 이름에는 로컬(Local)과 유토피아(Utopia)를 합친 뜻이 담겼다. 지역에서 난 재료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겠다는 셰프의 철학이 녹아 있다. 라토피아의 철학은 명확하다. “외국의 레스토랑은 지역 농산물과 전통을 당당히 내세운다.” 그런 로컬의 자부심을 춘천에서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라토피아의 주방에서는 매일 아침 춘천 농가에서 직접 들여온 닭고기, 감자, 토마토, 복숭아 같은 로컬 재료들이 셰프의 손끝에서 고급 요리로 변신한다. 대표 메뉴인 ‘닭갈비 플레이트’와 ‘춘천식 간장 수육 플레이트’는 춘천의 상징인 닭갈비와 간장수육을 프랑스식 랩 요리로 재해석한 시그니처다.
여기에 춘천 전통주와 제철 식재료로 만든 브런치는 비주얼과 맛은 물론 ‘로컬의 가치’까지 한 접시에 담았다. 라토피아의 테이블은 춘천의 재료를 글로벌 감각으로 해석한 미식 실험실을 방불케했다.

메인 셰프 박상덕 씨는 “라토피아가 추구하는 가치는 명확하다. 농부, 셰프, 손님이 한 식탁 위에서 만난다는 철학으로 요리한다”며
“춘천의 맛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시민들과 함께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04.
화동 2571을 먹거리 기반 휴식·문화의 랜드마크로
시민들은 청년들이 만든 도시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시는 개장 전부터 시민 사전체험단을 운영하며 메뉴 시식, 플리마켓, 야외 도서관 등의 행사를 함께 준비했다. 공간의 문이 열리기 전부터 이미 시민이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 김미경(56, 효자1동) 씨는 “의암호를 바라보며 로컬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으니 여기가 진짜 춘천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화동2571’의 낮이 호수 빛을 머금는다면, 밤에는 야외정원에 켜진 조명이 시민의 산책길을 밝힌다. 앞으로 로컬푸드 페스티벌과 관광 연계 프로그램이 잇따라 열릴 예정이어서, 화동2571은 춘천의 미식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야외정원에서는 주말마다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는 강원지방중소벤처기업청이 주관하는 ‘2025 춘천화동장터(부제: 맛있게 놀자)’가 개최될 예정이다. 지역 소상공인들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강원도의 다양한 먹거리와 특산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오상일 춘천시 푸드테크산업과장은 “화동2571은 춘천 최초의 먹거리 기반 도시문화 플랫폼으로 성장중”이라며 “청년 미식 창업의 랜드마크이자, 자연과 어우러진 휴식 문화 공간으로 키워가겠다”라고 말했다.
의암호의 윤슬, 붉은 벽돌, 청년들의 열정, 그리고 로컬 미식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춘천은 다시 한 번 ‘사람이 도시를 바꾸는 힘’ 을 보여주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