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의 한가운데, 시간조차 멈춰 있던 땅. 그 이름은 바로 ‘캠프페이지’였다. 지난 1951년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 세워진 이 기지는 반세기 넘게 지역사회와 단절된 채 남아 있었다.
2005년, 미군이 철수하자 시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이후 부지는 수년간 개발 방향을 두고 논의만 이어졌다. 그러던 지난 9월, 도시재생혁신지구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침내 100년 미래를 여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번 호에서는 시민과 함께해온 춘천 캠프페이지의 역사를 되짚고, 공원과 문화시설, 시민광장 그리고 미래 먹거리로 떠오를 첨단산업까지 도시재생이 그려낼 새로운 춘천의 모습을 함께 상상해 본다.


[사진 출처 : 강원일보]
1951년 한국전쟁의 불길이 한반도를 휩쓸던 시기. 춘천의 도심 한복판에 미군기지 '캠프페이지(Camp Page)'가 들어 섰다. 이곳을 중동부전선의 미군 요충지로 만들기에는 제격이 어서 6·25전쟁 당시 미군의 제4미사일사령부와 주한미군 군 사고문단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길쭉한 고구마처럼 생긴 소양근화동 56만m2의 면적에 철조망 을 치고 수백 채의 천막 막사가 들어섰다. 세월이 지나 활주로를 닦고 비행장이 들어서고 막사는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다. 부대 이름은 장진호 전투의 영웅, 명예훈장 수훈자인 '존 U.D. 페이지' 대령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이곳은 군수물자와 병력을 지원하는 항공기지로, 춘천의 발전과는 별개의 섬처럼 존재했다. 아이들은 철조망 밖에서 전투기 이륙 소리를 들으 며 자랐고, 시민들은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그 땅을 오랫동안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만 기억했다.

[사진 출처 : Michael Monahan]
캠프페이지의 주요 임무는 미 육군 제2사단에 대한 항공지원으로 영내에는 우체국, 이발소, 편의점, 양복점, 버거바, 항 공매표소, 피자배달, 원격 대학 과정과 통신 프로그램 제공, 피부과, 헬스 클리닉, 도서관, 레크리에이션 센터, 수영장, 테 니스코트, 공예품 가게, 커뮤니티 클럽, 테니스장, 농구장, 볼링센터 등 시내에서 볼 수 없었던 문화·복지·교육· 위락시설이 있었다.

[사진 출처 : 강원일보]

[사진 출처 : Michael Monahan]
2005년 캠프페이지에서 미군 이 철수할 때까지 소양동과 근화동, 명동 일원은 미 군을 상대로 한 상권 이 형성됐다. 부대 어귀에는 군장점 과 잡화상이 즐 비했고, 미군 들이 즐겨 찾으며 성황을 이뤘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과 술, 담배 같은 기호식품이 싼 값에 흘러나와 중앙시장 한복판에 미제물건을 파는 양키시장(일명 깡통시장)이 생겨났다. 당시 일상에서 즐길 수 없는 양주와 양담배를 만날 수 있었고, 외국 화장품과 커피, 열대 과일, 초콜릿, 껌 등을 접할 수 있었던 유별난
장소였다. 미군과 고등학생이 나란히 줄을 섰던 햄버거 가게 ‘진아의집’은 현재까지 춘천 명소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캠프페이지는 도심에 위치해 춘천역으로 가려면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과 비행장 소음은 근화동과 소양로 주민에게 막대한 물적 정신적 피해를 주기도 했다.

반세기가 흐른 뒤, 2005년 3월, 미군이 철수하고 ‘성조기’가 내려졌다. 시민들은 “이제야 춘천이 완성됐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도시는 오랜 시간 멈춰섰다. 공원 조성, 복합문화지구, 상업 개발 등 여러 안이 논의됐지만, 매번 경제성·환경성·공공성 사이에서 갈등이 반복됐다. 정체된 부지를 시민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부터였다.
시민공원 캠프페이지 프로젝트, 예술인 마켓, 음악페스티벌, 유채꽃 코스모스밭 조성 등 다양한 임시 프로그램을 통해 공간 실험을 이어갔다. 이 시기는 행정의 공회전 속에서도 시민들이 도시 중심부의 공간을 되찾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한 과정이었다고 평가된다.

[사진 출처 : 춘천디지털기록관]
한때 폐쇄된 공간은 이제 시민 실험의 무대로 변했다. 2013년 열린 반환 미군기지 시민 개방행사에서는 30 여 미터 남은 담장을 시민 500여 명이 힘을 합쳐 밧줄로 당겨 금단의 땅이던 캠프페이지를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놨다. 옛 캠프페이지 부지에는 봄내체육관, 꿈자람물정원, 꿈자람어린이공원, 육아종합지원센터가 들어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2019년에는 ‘캠프페이지 시민포럼’이 결성돼, 공공성과 생태, 문화 중심의 개발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 춘천디지털기록관]
이러한 시민의 움직임은 행정의 인식도 바꾸었다. 춘천시는 공원과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한 공공개발로 방향을 선회했고, 수년간의 환경 정화와 토양 복원 작업을 거쳐 도시재생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5년 9월 캠프페이지 부지가 국토교통부 도시재생혁신지구 공모사업에 최종선정되면서, 춘천은 마침내 20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도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 시작은 VFX(Visual Effect, 특수영상.시각효과) 산업을 중심으로 한 첨단영상산업의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 캠프페이지 전체 부지 약 56만m2 중 일부인 12만 7000m2에 K-콘텐츠(첨단 영상스튜디오 등) 산업시설, 컨벤션 센터, 어울림 마당 등이 들어선다. 총 사업비는 3,568억 원 규모로 이번 공모에 선정되면서 국비 250억 원의 재정 지원을 확보했다. 사업시행자는 주택도시기금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출자하는 리츠(부동산투자회사)로 지정해 안정적 재원조달을 보장하고 있다.
시는 2023년, 도시재생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됐지만, 2024년 최종 선정에 도전해 고배를 맛봤다. 이후 도시재생혁신지구에 선정 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해왔다. 관련분야 기업, 관내 대학과 혁신지구 성공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어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민 공청 화사업 설명회·여론 조사 등을 거쳐 폭넓은 의견을 수렴, 합리적인 조정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올해 제37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심의를 통해 2025년 상반기 도시재생혁신지구'로 춘천 근화동이 선정됐다.

이 사업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청년에게는 일자리를, 도심에는 활력을, 시민에게는 자부심을 주는 국가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선, 시는 사업 추진을 위해 강원대학교와 손을 잡고 VFX 관련 학과를 신설해 청년 인재를 육성할 계획이다. 또 기업·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국내외 영상 제작사를 유치해 VFX와 AI가 결합된 K-콘텐츠 산업을 선도해 나갈 예정이다. 혁신지구는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로 새로운 일자리와 도시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될 것이다. 시는 이번 도시재생혁신지구 선정을 계기로 ‘50년의 기다림’을 넘어 ‘미래 100년 도시 춘천’의 청사진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사진 출처 : 춘천디지털기록관]

[사진 출처 : 춘천디지털기록관]

[사진 출처 : 춘천디지털기록관]




드디어, 우리 춘천시가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 모든 것은 춘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아낌없는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신 시민 모두의 성과입니다.
캠프페이지는 춘천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입니 다. 이제 캠프페이지는 더 이상 멈춰있는 땅이 아니라, 춘천의 미래를 열어가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저는 이곳을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남겨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생각합니다. 시민공원의 기본 형태는 지키되, 춘천의 성장과 청년의 희망을 품는 거점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도시재생 혁신지구는 쇠퇴한 도심에 산업·상업·복지 기능을 모아, 새로운 성장거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존의 시민공원 조성계획은 지키면서도 첨단영상산업, 복합스튜디오, 컨벤션센터를 품은미래산업의 거점으로 캠프페이지를 탈바꿈시키고자 합니다.
혁신지구는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로, 새로운 일자리와 도시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미래 춘천을 그려가는 큰 그림입니다. 첨단 영상산업의 새로운 거점이자, 미래 문화산업을 선도하는 도시로 확실히 도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