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만난 사이인 공직자에게 밥을 사도 될까, 사도 된다면, 얼마까지가 법적 허용 금액일까? 경조사비는? 축의금 및 조의금을 대신하는 화환은 상한액이 있을까, 있다면 얼마일까? 일상과 밀접한 이 질문엔 두 가지 법령이 담겨있다.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
모두 청렴과 관련된 법이다. 최근 청렴을 대하는 춘천시의 보법이 남다르다.
기존의 관행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과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봤다.
*청탁금지법 제8조 제3항 제2호에 의거, 공직자에게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은 5만 원까지 가능하다(화환은 부조금과 합쳐서 1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단, 공직자와의 직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가액 범위 내라 하더라도 일체의 선물 등을 줄 수 없다.
화면에 문제가 나오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든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정답은 1번 5만 원. 정답을 맞힌 이들은 환호와 함께 다음 문제로, 틀린 이들은 탄식과 함께 탈락했다.
지난 9월 11일, 시청 직원을 대상으로 열린 청렴콘서트 현장이다.
퀴즈의 정답을 맞히는 서바이벌 방식의 ‘도전! 청렴 골든벨’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시작 전부터 신나는 노래가 대회의실에 쿵쿵 울렸다. 강의가 아닌 음악 콘서트에 온 것 같았다.
사회자의 재치 있는 진행과 퀴즈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는 퀴즈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50여 개의 문제를 풀었을 즈음, 남은 사람이 열 명으로 추려졌다.
이들은 무대에 올라 텔레비전에서 보던 ‘KBS 도전, 골든벨’처럼 칠판을 하나씩 들고 주관식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열 문제쯤 풀고 나자, 최후의 1인이 정해졌다. 골든벨을 울린 자원순환과 박예은 주무관은 “저희 과장님이 감사담당관 출신이라 늘 청렴에 대해 강조해 주셨다”며 “일상에서 청렴 관련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MBTI는 아는데, CBTI는 뭐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콘서트처럼 진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청렴·반부패 시책을 추진해 온 감사실은 ‘어렵고 무거운 개념의 법과 인식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고 재밌게 전달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갖고 있었다. 기존의 평범한 교육 방식으로는 직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기 힘들었다. 이에 ‘공직사회에서 청렴은 왜 중요할까’라는 본질적인 질문부터 고민하기 시작했고, 청렴은 공무원의 전문성과 직결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공무원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을 해야 시민 만족도가 올라가고 양질의 서비스도 가능해집니다. 또 공무원이 본인의 업무와 조직생활에 만족하면 청렴은 당연히 뒤따라온다고 봤습니다”
한원준 청렴조사팀장은 이런 관점에서 시민들에게 얼마만큼 신뢰와 만족도를 줄 것인지를 고민해 올해 청렴 시책의 방향성을 정했다고 밝혔다.
우선, 조직의 구성원들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사업을 만들기 위해, 특허받은 기술인 CBTI를 도입했다. CBTI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성격유형검사 MBTI에서 착안해 교육 전문 회사가 개발한 청렴체감지수다. 20분 넘게 70개의 문항에 답해야 하는 데도 1천1백 명이 참여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MBTI처럼 16개의 유형으로 결과가 나왔고, 감사실은 이 결과를 다방면으로 분석했다. 직무만족도는 고위직이 높게, 7·8급이 가장 낮게 나왔다. 역할 스트레스가 높은 부서는 복지국과 건설국으로 나왔다.
CBTI 16가지 유형
이 밖에도 업무 투명성, 청렴친화적문화, 재량권 등의 요소들을 평가해 청렴 인식을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직원들의 청렴 취약 분야를 찾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21가지 시책을 세워 시행 중이다.
공직사회, 바뀔 수 있어! 청렴, 재밌을 수 있어!
기존 청렴·반부패 시책들은 주로 감사실에서 정해 각 부서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교육과 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청렴 네 컷 만화다.
CBTI 분석 결과 청렴 인식이 낮은 주제를 만화로 만들어 학습을 유도했다. 짧지만 임팩트 있게 핵심 내용을 담아 정보를 전달했다.
‘이런 교육이 훨씬 이해도 빠르고 쉬워서 좋네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쉽게 설명해 줘서 이해가 잘 됩니다’ 등과 같은 댓글이 천 개가 넘게 달렸다. 보통 교육 게시물에는 댓글이 거의 없는데, 교육 방식을 바꾸니 소통이 자연스레 이뤄졌다.
또 전문 강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던 방식을 버리고, 교육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영화관 컨셉, 콘서트 컨셉으로 꾸미기도 했다. 지난 7월 열렸던 ‘영화가 좋다, 청렴한 춘천이 좋다’ 교육에서는 영화를 매개로 청렴 교육을 진행했는데 팝콘과 음료를 준비해 영화관에 온것 같은 분위기 속에 교육이 이뤄졌고, 9월에는 ‘청렴콘서트’를 골든벨 형식과 음악공연으로 구성해 참여도와 재미를 높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각 부서들의 자발적인 참여다. 부서마다 머리를 맞대 기획한 활동으로 ‘청렴·소통의 날’을 달마다 운영하게 된 것.
동료들에게 청렴맨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후평3동의 황장섭 팀장은 직접 청렴 캐릭터 를 만들어 홍보물이나 문서에 활용하고 있다. “청렴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때 더 잘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캐릭터뿐만 아니라 동사무소 건물 계단에 청렴 관련 문구를 적어놓아 계단을 오르내리며 문구를 읽기도 하고 회의 시작 전에 한 줄 다짐을 적으면서 청렴은 거창한 것이 아닌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습관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맑고 깨끗한 물결처럼 투명하고 정직한 성품을 가진 수호 정령. 후평3동의 인공폭포에서 태어난 수호 캐릭터로 마을의 청렴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존재. 정의롭고 조용하며, 부패와 거짓을 감지하면 맑은 물방울을 날려 정화함.
또 신동면은 최근 ‘민생회복쿠폰 찾아가는 신청 접수’나 반찬 봉사를 하면서 시민과 대면할 일이 많아 ‘청렴 한 스푼도 함께 담았습니다’와 ‘반찬엔 정성, 마음엔 청렴’ 문구를 적어 청렴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효진 주무관은 “면사무소는 마을주민과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자주 만나는 행정기관인 만큼 작은 태도 하나, 짧은 말 한마디가 행정 전체의 신뢰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며 “청렴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풀어냈을 때 반응이 좋았다”고 밝혔다.
신동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8월 반찬 나눔 봉사
함께 걸어 나가는 청렴 도시 춘천
청렴한 춘천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시민도 함께 만들어간다. 각 읍·면·동 마다 한 명씩 있는 총 25명의 시민감사관이 오래전부터 생활 속 불편을 찾아 제보하고, 감사실이 이를 확인·개선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속과 처분 중심의 사후 감사에서 벗어나 예방 차원의 사전 감사 방식이다. 시민감사관은 단순한 제보자 역할을 넘어 정기 간담회와 교육에도 참여하며 공직사회와 함께 청렴 정책을 고민하는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시민의 시각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행정이 이를 반영하면서 신뢰가 쌓여가는 구조다.
이들은 춘천시의 종합 감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은 5급 사무관으로 임용된 신임 공무원 대상 특강에서 “공직자는 청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 사무관 대상 대통령 특강은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이다.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청렴’을 강조한 데에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춘천시도 이 모든 노력을 바탕으로 청렴이 일상 속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확산시켜 나갈 예정이다. 청렴은 일상 속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 공직자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작은 변화를 이어가며, 오늘보다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내일의 춘천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